회상 (5.성(性)중독자)
무방비상태의 싱윈에게 다가온 그녀의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진한 솔냄새 짙은 그녀의
머리카락 향기에 아찔한 현기증마저 찾아온다.대뇌의 명령을 받기전에 싱윈의 두 손은 이미
그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
미늘에 걸린 작은 붕어의 떨림이 낚시대를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다.낚은것인가 낚인것인가..
뜨겁게 파고드는 그녀의 혀는 싱윈의 몸을 마비시켜 버렸으며 그순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도 이성도 이미 싱윈에게는 남아있질 못했다.똑바로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가 너무 깊어
속내를 보일까봐 두눈을 감는 일만이 싱윈이 그 순간에 할 수있는 유일한 일 이었다.
모든 세포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의 깊은 입맛춤을 나눈 그날 그후부터는 싱윈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며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말았다.
5월1일 노동절 휴식기간 동안은 무석에 있는 태호(太湖:타이후)의 고급 호텔로 4박5일의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간동안은 싱윈과 그녀는 한쌍의 남녀일 뿐이었다.그녀를 처음본 후 9개월 만의 일이다.
사찰을 찾아 향불을 피우며 서로의 소망도 빌어보았다.그녀는 무엇을 빌었을까?
그녀와 팔짱을 끼고 남경로(南京路:난징루)를 활보하며 다녀도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관계의 두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질 않는다.아마도 그이유는 싱윈이 워낙 동안(童顔)이라서 그런가보다.
싱윈은 나이보다 너무 어리게 보여 남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 위로라면 위로였다.
(지금도 싱윈을 삼십대초로 본다.사업적으론 상당한 핸디캡이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 보다는 젊고 예쁜 여자와 같이 있다는 달콤함의 유혹이 더 컸다.
나누는 수많은 대화를 알아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욱더 그녀와의 대화농도를 짙게 만든다.
그녀는 좁혀진 시야 안에 있는 단 한사람으로만 계속 싱윈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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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을 함에 있어 가장 곤란을 겪는 것이 상반된 성격을 가진 한국인과 중국인 때문이다.
빨리 빨리의 한국인과 만만디의 중국인이 충돌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일…공사는 계획과는 달리
자꾸만 그 공기가 늘어지고만 있다.선배의 신경질 적인 고함소리를 하루라도 듣지않는 날이 없다.
애초에 계약할 때 공기의 늘어짐에 대한 페널티 조항을 넣기는 넣었으나 그것은 한장의 종이에 불과하며
그것으로 그들을 통제하기엔 이땅에서는 무리였다.
사무실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냉냉해져만 가는데도 싱윈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때문에 그런 와중에서도
싱윈에게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직원중 현장반장 요원으로 투입된 사람은 나이가 오십둘이었다.그는 나이와는 달리 같이 운동을 하다보면
그의 근육은 돌처럼 단단하였으며 군살하나없는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였다.
젊은 시절 꽤나 유명한 프로권투선수였으며 은퇴후 목욕탕을 운영하는 제법 재산도 많은 사람이었다.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독방을 쓰는 분이었는데 이분이 Sex 중독자였다는 것을 안것은 같이 생활한 시간이
근 10여개월이 지났을때 알게 된다.우리는 그를 강철인간이라고 불렀다.
숙소와 사무실은 차로 약 10분거리에 있었으며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하는 꼴이었는데 하루는
싱윈이 물건을 두고 나온것이 있어 낮에 숙소를 찾아가게되었다.
그런데 주방아주머니(조선족:이혼녀)께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있는것이 아닌가.
왜 울고 계시냐고 물으니 3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비밀을 지켜주면 말하겠다고 하였다.
워낙 이사람 저사람 싱윈에게 비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고 한번 들으면 거의 입밖에 내지않으니
안심하라고 하니 그 사연을 말해준다.
내용은 이렇다.반장이 사용하는 이불엔 항상 성행위의 뒷처리가 되지않은 흔적이 나왔다고 했다.
이불이란것이 하루에 세탁해서 하루에 말리기가 어려운데 적잖이 짜증이난 아주머니께서 따졌다고한다.
(상해의 여름은 습도가 높고 또 햇빛이 나오는 날이 드물어 빨래가 잘 마르질 않는다)
그랬더니 그 반장이 온갖트집을 잡고 반찬투정서 부터 성희롱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같이 자자고 까지 한다는 소릴 들으니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날 저녁 싱윈은 반장을 불러 커피한잔 하자고 하였다.이사람은 술을 절대로 입에도 되질않는사람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술도 마시질 않기에 그나이에 젊은이와 다름없는 몸매를 지킬수 있었을것이다.
그는 커피를 마시고 싱윈은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업무에 관련된 이야길 나누다가 본론을 말했다.
[반장님! 숙소로 아가씨를 불러오면 어떻게 합니까? 연세도 가장 많으신 분이..그리고 혼자만 사는곳이
아니질않습니까?]
[……………]
젊은시절의 훈장인 듯 부어오른 눈덩이 밑의 독사같은 눈을 치켜 뜨는 모습이 영 불쾌하게
싱윈의 이야기를 받아드린다는 느낌이다.대화로 해결될 지 걱정이 된다.
[부탁입니다.정 참기 힘드시면 나가서 해결하시면 되질 않습니까?]싱윈 처럼요 란 말이 나올뻔했다.
눈동자가 왔다같다 하는것이 싱윈의 어디 한군데를 노리는 폼새다.
[이 자식이…대장백믿고 그런소리 나에게 하는거냐? 시건방진 새끼가..]사태가 심각해진다.
[어른 대접받기를 싫어하시는 건가요? 욕하지 마세요.욕들을 나이는 지난것 같으니..]
가슴을 내밀며 어깨를 뒤로 제치는 것이 곧 주먹이 날아올 참이다.침착하자 싱윈아
[그래서..그래서 어쩌자는거야..내가 왜 니놈말을 들어야 하지..이자식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먹이 날라왔다.예상은 했지만 설마 폭력을 행사 하겠느냔 생각은 오해였다.
운동을 한 사람과 시비가 붙게되면 항상 안전거리를 지켜야 한다.특히 권투를 한 사람과는 물러나면
물러날 수록 위험하다.연속타를 맞을 확률이 크다.가장좋은 방법은 무조건 바짝붙어 주먹을 피하는 것 뿐이다.
재빨리 고개를 숙였는데 그의 주먹이 싱윈의 윗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골이 띵하다.주먹이 보통 매운게 아니다.
갑옷처럼 단단한 그의 가슴을 껴안으며 싱윈이 소리쳤다.[이러지 마세요.자꾸 이러면 저도 화가 납니다]
그리고 나서 그를 힘껏 밀쳤다.두어걸음 뒷걸음 치더니 다시 성난황소처럼 달겨든다.
[이자식아 함 화내봐 이런 쓰벌넘이…]아예 싱윈을 죽일 참이다.싱윈머리통 만한 주먹을 흔드는것을 보니
어차피 대화는 힘들게 되었다.이럴땐 한쪽이 제압되어야만 빨리 싸움이 끝나는 것이다.
돌덩이같은 그의 몸에 비해 연약한 싱윈이 데미지를 입힐 방법은 치사하지만 딱 한가지 밖에 없다.
남자가 평생을 달고 다녀야 할 약점인 그곳이다.(암만 화가나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니 참고하지마시길…)
두번째 주먹이 날라올 때 싱윈은 몸을 뒤로 제치면서 오른발 낭심차기를 해버렸다.
[퍽!]호두알이 깨질 정도의 충격이 발끝에 전해오면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반장은 앞으로 무너졌다.
싱윈은 혹시 몰라 운동화를 신지않고 신발 앞창속에 철판이 들어있는 안전화를 신고 나왔던것이다.
우스광 스런 모습으로 꼬꾸러진 그를 보니 이거 고자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났다.
[오늘은 대화가 틀린듯하니 다음에 맨정신으로 이야기 합시다.]침착하게 말했지만 나오는 소리는 떨렸다.
엎어져서 끙끙거리는 그를 뒤로하고 술집을 나서는데 교포직원이 모두 모여 이 광경을 보고있었다.
아마도 주방아주머니께서 걱정이 되어 교포직원에게 이야기 하고 싱윈을 도와주라고 한 모양이다.
[반장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소장과 관리과장에게는 이 사건을 비밀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대답을 듣고 구경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빙 둘러싸인 인간테두리를 뚫고 나올때 싱윈의 다리는 휘청거렸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심장이 너무뛰어서 숨을 쉬기가 힘들정도였다.언제적에 이런 싸움 해보았던가…
이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반장은 슬슬 싱윈을 피해 다녔다.다행이 고자는 되지않은모양이다.
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니…그가 보복으로 나오면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한 것은 기우였다.
하지만 계속 이러다간 업무에 지장이 있을것 같고 이유야 어찌되었던 나이먹은 사람에게 폭행을 한지라
사과를 할 겸 날을 잡아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그가 몇번을 고사했지만 결국은 따라왔다)
이때 그 반장의 입에서 나온소리가 자기는 환자라는 것이었다.
하루라도 그짓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싱윈은 이런병이 있는줄 처음 알았다.
그는 쉽게 말해서 Sex중독자라는 것이다.그러한 내용은 싱윈만 몰랐을 뿐 다른 직원들 모두 알고있다고했다.
싱윈은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다.싱윈은 여자가 없던가..아니질 않는가 그것도 자기 나이의 반밖에
되질않는 어린아이와 깊은 불륜관계를 하고 있지않는가..
결국은 x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 꼴이 되어 버린것이다.아…정말 창피스럽고 곤혹스럽다.
모두가 알면서 묵인하는 그의 생활은 매일저녁 여자를 데리고 와 아침일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싱윈의 이중생활도 반장과 마찬가지로 깨질듯한 살얼음판 위를 밟고 지나가는 일상들이었다.
저녁에 산보하는척 나와서 새벽일찍 집으로 돌아올때 반장의 여자를 보면 무언의 눈인사를 나누곤한다.
우빈이 제공한 별채의 방은 싱윈과 향숙의 비밀의 방이 되었으며 이 사실을 아는것은 젊은기사 하나뿐이었다.
도덕심이란것이 원래는 네모였지만 한두번 구르다 보니 모서리가 마모되어 시간이 지나면 원형과
같아진다.뻔뻔한 싱윈의 이중생활로 도덕심은 닳을때로 닳아 이미 동그라미였다.
한번도 오질않던 집으로부터의 국제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향숙과의 깊은관계가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아빠! 내가 꿈을 꾸었는데…자기 중국에 애인있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서둘러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전혀 그런일이 없다고…
여자의 직감이란 것이 이다지도 무서운줄 몰랐다.관계를 청산해야지 하면서도 다가오는 그녀를 뿌리치기엔
싱윈은 너무나 깊게 그녀에게 빠진 모습이다.처음 다가옴은 그녀였지만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 되어있었다.
사업실패로 인한 가슴앓이며 생이별로 그 아픔을 주기만한 싱윈이 이제는 여자문제까지 걱정하게 만든것이다.
하루에 한번씩 오는 국제전화..그리고 그 전화를 받는 모습을 보며 자리를 피하는 조그만 어깨의 그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싱윈의 우유부단함이 스스로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대담성은 극장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택시안에서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싱윈의 입술로 쳐들어왔다.싱윈은 대가가 너무나도 큰 이브의 사과를 입에 문 꼴이 되어가고있다.
여자는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다 남자를 다스릴 줄 아는 DNA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