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상하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처음 왔을때 바닥이 뚫린 택시를 타고 놀랐던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고급스런 중소형차로 모두 바뀌고 있었으며 차가 없어 한산하던 거리마다 자동차로 메워졌다.
포서의 외곽 포동은 대표적인 개발지로 그 면모가 나날이 바뀌고 있었다.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고 어제의 좁았던 도로가 오늘은 8차선의 대로로 변해가고있다.말그대로 상전벽해였다.
황포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외탄(外灘:와이탄)이라하며 마약전쟁 패전이후 열강들의 조계지로 있었기에
건축물 또한 각나라의 특징을 가지고 서있었다.영국과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늦은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환상의 모습을 연출한다.그리고 황포강 동쪽이 포동인데 동방명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건축물의
전시장이 되어가고 있다.강을 따라 길게 단장된 강변로는 싱윈과 그녀에게 더없이 좋은 데이트 코스였다.
본래 2년의 공사계획을 가지고 시작하였던 일이 이제는 그 두배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값싼 인건비 만큼 그들의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한국과 중국의 법률 및 규범이 너무달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한 결과였다.
상하이 지역으로 한국인들이 자꾸 늘어가고 그중엔 보따리장사를 하려 중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기업의 퇴직자 중소기업의 퇴직자들은 마지막 끈을 한창 불고있는 중국붐에서 붙잡으려 했었다.
수많은 보따리장사 광고모집을 보고 새로운 삶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재산을 가지고 중국을 찾는사람들…
그들은 너무나도 나약하였고 너무나도 중국을 쉽게 생각하였다.그들이 피눈물을 뿌리고 돌아간 자리에는
더러운 웃음을 짓는 무리들이 있었다.온갖 감언이설로 그들을 꼬득여 배를 채운 하이에나 같은 무리들은
아직도 허술한 한국인을 표적으로 열심히 눈을 굴리며 주변에서 어슬렁그린다.
공사진행이 늦어짐에 목표방향을 수정 하였을때 싱윈의 담당통역이 바뀌게 된다.
향숙은 관리과장의 업무를 도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류경(가명)이라는 조선족이 싱윈의 전담통역이 되었다.
자재 및 장비를 구매하거나 자료를 얻으려 다닐때 이제는 향숙이 아니고 류경이 동행을 했다.
교포들은 싱윈을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싱윈의 회사뿐만이 아니라 타회사의 조선족교포들도 싱윈에게 형님대접을
깍듯하게 해주었었다.류경역시 싱윈에게 그러하였었다.
싱윈의 업무스타일은 상명하복식 일방적 지시가 아니고 그일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주는 타입이다.
자재를 구매한다해도 교포직원의 능력껏 살 수있는 금액의 한계를 정해주고나서 모든권한을 넘겨주는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으며 회사의 공금을 낭비한 결과가 되었음을 알게될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류경은 결론적으로 싱윈이 한국으로 휴가나온 틈새를 이용한 선배의 칼날에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통역이 부실하고 사람이 가볍다는 것이 선배의 해고이유였다.(후에 선배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
류경은 해고당한지 두어달 지난후 상하이 포서에 한국식 식당을 개업하게되고 싱윈을 초대했다.
개업식날 꽃다발과 벽시계를 준비하고 찾아가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빌어주었다.하지만 돌아오는길에
싱윈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는가에 대해서 향숙에게 그 자세한 내용을 듣게된다.
백만불 가까운 압력용기 구매가가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던 원인은 그업체에서 류경에게 주어야 할
리베이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며,현지에서 구매한 모든 자재,장비의 업체들도 돈을 주었다고 한다.
싱윈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완벽하게 찍힌것이다.찍힌 곳은 발등이지만 아픈곳은 가슴이었다.
작년 베이징에 오기전 류경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하이 구베이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은 규모가 꽤 크며
부부가 같이 무역회사를 꾸미는 중이라 한다.그의 성공을 박수치기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업무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기에 선배의 신경질은 극에 달하고 선배와 관리과장의 관계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와도 같았다.어느 한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싱윈은 선배나 관리과장에게 모두 미운살이 박혔다.
그때 선배의 기를 살려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관리과장의 비리가 들통난 것이다.
당시 달러로 사용경비를 조달받았던 관리과장은 그것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환전을 하지않고
암달러를 이용해 환전한 차액을 온갖 술집,아가씨에게 퍼주었던 것인데 이런 내용을 아는 관리과장의
통역담당인 양광(가명:조선족)이 선배에게 고해바친것이다.
어이없게도 일러바친 이유가 같이 나누어 쓰지않는다는 것에 대한 화풀이였다하니 참으로 우스운 꼴이였다.
기획관리실에서 파견된 관리과장의 비리는 본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비리가 들통난지 일주일도 지나지않아
관리과장은 해고된다.그가 돌아가는날 그의 단물을 빨아먹던 한족여자는 아파트까지 찾아와 떳떳한 배웅을 한다.
(그후 관리과장은 이혼을 당하였으며 몇번 상하이를 다녀갔다는 풍문이 있었다.)
관리과장이 가고난 후 선배는 하루가 다르게 젊어져 가는 모습을 보인다.중국말을 배운답시고 젊은 여자를
가정교사로 채용하여 중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처음의 후줄그레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심하던 잔소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하루하루가 즐거운듯 늘 미소진 얼굴을 하고있다.
영역싸움에서 승리한 자의 여유가 묻어 나오는 생활이었다.사람이나 짐승이나 위에서 군림하기를 좋아함은
마찬가지 인것같다.
관리과장을 대신할 새로운 직원이 한국에서 파견되어왔다.그는 지금도 상하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싱윈의 직원중
최초로 한족여자와 결혼한 사람이다.
먼저번 관리과장과는 달리 엄청 싹싹한 그는 나쁘게 보면 간사스럽게 까지 보이는 사람이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싱윈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따라다니는 것이 살가와 싫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웨이황이란 업체로 부터 초청을 받아 나이트클럽을 가게 된다.여기서 이친구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사연이 만화같다.
싱윈은 춤도 추지 못하고(심한 몸치)그저 자리에 앉아 술만 마시고 있는데 이친구가 눈을 반짝뜨면서 싱윈에게
말한다.[형님! 제가 여지껏 본적이 없는 사람을 봤어요 와 이거 운명이네..운명..]
이미 술이 취해서 혀 꼬부러진 소리를 내며 쳐다보는 곳을 보니 남자 둘 여자둘이 입구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봐 잘 봐 여자의 동행이 있잖니? 소란피우고 싶냐?겨울 롱코트를 입은 생머리 여자가 멋지게 보이긴 보였다.
[걱정마세요 제가 알아서 해볼께요…제가 가서 데리고 올께요]
이친구는 중국에 온지 일주일도 되지않는 완전 초짜였으며 중국말은 워 아이 니(너를 사랑해)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일행이 있는 여자애를 그것도 남자친구인 듯한 사람과 같이온 여자를 데리고 온단 말인가?
말썽나는 모습이 보기싫어 딴곳을 쳐다보고 있는데 잠시후 정말로 여자를 데리고 왔다.
[형님 보세요 얼마나 예뻐요..정말 천생연분이다.히히히]싱윈이 암만봐도 이쁜줄은 모르겠다.제 눈에 안경이지..
어떻게 데리고 왔냐고 물어보니 그냥가서 손목을 잡고 왔다고 한다.여자는 다소곳이 권하는 의자에 앉는다.
서로에 대해서 향숙은 통역을 해주는데 같이온 남자애들은 신경을 쓰질 않는다.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날 그녀는 남자를 따라 호텔로 갔다.(이시기부터는 4성급이상 호텔에서는 공안 단속이 없어졌다)
다음날 한족처녀를 안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그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용감한 것인지…
이곳의 성 풍속도가 그러함은 익히 알고 있었고 직접 목격을 했어도 실감이 도통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1년도 되지않아 결혼을 하고 지금도 잘 살고있으니 정말 거짓말 같다.
이미 그는 아이의 아버지이며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 삼십대 후반의 한가정의 가장이 되어있다.
(요즘도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묻는다.그녀의 한국어가 너무 유창해 가끔은 한국사람으로 오해도 한다.)
이런 저런 사연들을 만들어가며 싱윈이 상하이에 자리잡은지 2년이 되어갔다.싱윈은 2년계약을 하였기에
2년이 지나면 다시 재계약을 하여야했다.달러로 계약한 덕에 IMF로 인해 연봉이 두배로 뛰었다.
간신히 적자를 면할 공사금액이 두배로 오른 달러덕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어 회사도 부도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싱윈은 아내의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만 가고 커가는 아이들이 보고싶어 연장계약을 포기했다.
닭대가리만 하다보니 용꼬리는 체질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온통 여자문제와 금전문제가 있는곳에 더 이상 있기가
싫어졌기때문이었다.
귀국을 결정하고 향숙과 우빈을 불러 조촐한 식사자리를 마련했는데 너무나 섧게 우는 우빈에 비해 아무표정도
없이 앉아있는 향숙이 더욱더 걱정스러웠다.젊은기사역시 바람막이를 해주던 싱윈을 보내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싱윈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일은 아직도 남아있는 자재구매업체와 장비업체에
그녀에게 연결시켜 주는 일 뿐이었다.
모든 결재권한을 줌으로써 적지않은 리베이트를 받으리라 생각했었다.참으로 뻔뻔한 방법의 보상이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젊음에 흠집을 낸 싱윈이 해 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이제는 두번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직원들의 환송식에도 그녀는 참석하질 않았다.처음온 그날도 술에 빠졌고 가는날도 술에 빠진다.
짧지않은 2년동안의 일들이 삼류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그러한 일로만 느껴진다.
우빈과 젊은기사의 배웅을 받으며 홍차오 공항을 떠날때 기둥뒤에 숨어있는 그녀를 보게되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이제는 돌아올 수없는 길을 가는 싱윈과 아직도 싱윈의 흔적이 남아있는곳에서 일을
하며 지내야 할 사람이 서있다.두번다시는 나올 것같지 않은 눈물인줄 알았는데..싱윈의 두뺨을 타고 내린다.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손길은 가로막은 유리로 하여금 느낄수가 없었다.깊었던 그녀의 눈동자는
바람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99년 6월 어느날이었다.
[1부 끝]
후기: 이 수기의 배경이 되는 99년말 한국 MBC의 PD수첩에서 이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였습니다.재중 한국인중 70%는 현지처를 가지고 있으며 몰래카메라를 이용하여 50대 말의 중늙은이가 어린여자에게 동거를 요구하는 모습을 방영했었지요.
대다수 선량한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이혼도 많이 당하고...
싱윈과 같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직접 준것과 다름없지요.본래 이수기의 목적은 설마그럴리야..하시는 분들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고 시작이 이렇고 끝이 이러하다란 허무한 결말을 보고 주고 싶었던 것이였지요.
시간이 좀더 지나후 나머지 못다한 이야기를 올릴까 합니다.그동안 많은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