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몇 해전 항주관광을 마치고 상해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열차표를 사려하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제시간에 가는 차표를
제때 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항주고속터미널에서 오후2시에 출발한다는 버스에 몸을 싣고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헌데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빈자리가 네댓 개 남았을 뿐 대부분의 승객들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싱윈이 안내소에 가서 물어보니 곧 출발한다고 한다.
곧 가겠지 하고 또 기다리는데 오후 4시가 되도록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싱윈말고는 안내소에 가서 따지는 사람도 없다.편안하게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고들 있을
뿐이다.오후5시가 되어도 떠나질 않는다.자리는 한두 곳 밖에 비워있질 않다.
결국 오후 6시가 되니 마저 빈자리가 채워지고 그때서야 출발을 한다.
그래도 불평 없이 출발할 때만을 기다리는 그들을 보고나니 그 인내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항주에서 상해까지는 2시간이면 넉넉하게 도착하는 거리이다.그런데 4시면 도착할 상해를
오후 8시에 도착했다.
무석에서 상해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려 무석역에 도착해서 보니 사람이 꽤 많아 보였다.
그래도 한 줄로 서 있길래 그 줄의 무리에 들어가 표를 살 준비를 한다.
하지만 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3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줄은 그대로이다.
앞쪽을 보니 쉴 새 없이 새치기를 한다.그런데 뒤에 있는 중국인 어느누구하나 새치기를 하는
사람에게 항의를 하지 않는다.새치기 하는 이들은 역전에서 암표를 파는 불량배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타고자 한 열차가 무석을 떠날 때까지 싱윈은 표를 구매하지 못하였다.
7위안짜리 완행열차를 타고 상해에 돌아오던 날 머리도 같이 돌아버렸다.
다음부터는 아예 역전에 가서 암표를 사고 만다.열차가 떠나기 10분전에 팔리지 않은 암표는
싼값에 살수가 있기 때문이다.중국에서의 생활은 비상식을 상식으로 승화시킨다.
수도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왕징"가자 하면 택시기사 열이면 열 모두 험상궂게 인상을 찌푸린다.
택시기사는 무려 4시간을 기다려 손님을 받았는데 공항에서 왕징까지는 40위안(약5200원)
거리 밖에 되지 않으니 기다린 보람이 없다며 인상을 쓰는 것이다.
싱윈이 처음 수도공항에서 왕징까지 145위안의 바가지를 쓴 적이 있다.북경초행길이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 온 동네 한 바퀴 뺑뺑 돌고 왕징에 싱윈을 내려준 것이다.
얼마 후에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었다.무려 4시간동안 기다리며 초행손님을
받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닌가 싶다.확률도 높지 않은 일에 대한 기다림이 차라리 무섭다.
택시를 타고 일을 보러 나갔다.북경도심의 협소한 2차선 도로에서 진행방향의 앞차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길게 늘어서 있는 차량을 보더니 반대차선으로 진입을 한다.간섭하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다.그런데 왠걸 불과 100여 미터도 못 가 꽉 막혀있다.반대차선으로 들어온 차들과
진행방향의 차들이 마주보고 서있는 것이다.양보가 없으니 코를 서로 붙이고 있다.그리고 그때부터
기다린다.길이 풀릴 때까지…평상시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두 시간 만에 그것도 공안이 온후
한시간이상 기다려 움직일 수 있었다.차라리 진행방향에서 기다렸으면 이런 일도 없을 텐데…
답답해 하는 싱윈에게 던진 택시기사의 한마다 "중국은 사람이 많아서 그래"
북경주변의 주택들의 미분양이 위험수위에 다 달았다.북경시 통주에 소재한 천지별장은
2년전에 완공되었지만 대부분 미분양이다.미분양 아파트의 가격은 거의가 5,000위안이
넘는다.한평방미터당 5,000위안이니 한국식 한 평은 16,500위안(214만원정도)된다.
중국의 수준으로 볼 땐 정말 비싼 가격이다.건물가격수준은 천정이고 주민소득수준은
바닥이니 유효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개발업자들은 분양을 꺼리고 있다.왜냐 가격이 더 올라가길 바라니깐…
그렇지만 구매자들도 기다린다.집값이 적정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정말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가격이 오르길 기다리는 사람 가격이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 이것이야 말로 동상이몽,기다림의 극치다.
어제 공상은행에 전기를 사기 위해 서둘러 갔다.오전 9시15분에 은행에 도착을 하였다.
(전기카드에 충전을 해서 계량기에 찔러넣어야 단전을 면한다.물론 선불제이다)
번호표를 뽑아보니 34번.기다리는 사람들은 열명 정도…별로 많은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늦어도 20분이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도저히 번호가 줄어들질 않는다.
왜 그런가 하고 창구를 돌아보았다.7곳의 창구 중에 업무를 보는 곳이 두 곳밖에 되질 않는다.
그 중 한곳은 기업업무만 보는 창구였다.일반업무를 보는 곳은 한곳뿐이란 이야기다.
그래도 사람이 많지 않으니 곧 되겠지 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24번을 호출한 후 부 터는 아예 번호를 부르질 않는다.왜 그런가 보았더니 일반업무 창구에서는
골드카드소유자 특혜란 글이 보이고 카드소유자들은 번호표 없이 바로 창구에서 일을 보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의 계산대에서는 군인우선혜택이라고 되어있다)
두세 사람 그렇게 먼저 일을 보는데 한 사람당 보통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도 번호는 줄어들질 않는다.참다못해 창구로 가서 따져보았다.
왜 7곳중 2곳만 업무를 보는 것이냐고? 대답인즉 회의 중이란다.기다리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아무런 미동도 없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항상 그러하다는 듯이…
기다린다.다시 갔다가 돌아 오기가 귀찮으니 기다린다.시간은 흐른다.그래도 기다린다.
무려 한 시간 반 만에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구걸하러 갔다가 쪽박 깨져 돌아오는 거지의
발걸음이다.역시 중국이 그렇지 뭐…속절없는 마음속 투덜거림만이 남는다.
기다린다는 것,인내가 있다는 것..참으로 좋은 습관임에는 분명한데 왜 중국에서의 기다림은
항상 짜증을 동반하게 만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