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 양씨의 고민
올해 58세의 양씨는 고민에 빠져있다.결혼 후 6년만에 얻은 단 하나뿐인 금지옥엽 같은 딸아이의 결혼생활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공산당원이며 국영건축업체의 간부인 현 남편과 23세의 나이에 결혼하였던 양씨.벌써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6년이 다되도록 아이가 없더니만 스물아홉 나이에 딸 하나를 보게 되었다.
남편은 술만 마시고 들어오면 폭행하기 일쑤였고 성격이 난폭하여 결혼생활 내내 고통의 나날들이었던
양씨였었다.하지만 늦게 낳은 딸 하나만 보고 참으며 참으며 오늘까지 왔는데 이제는 장성한 딸 때문에
양씨는 속이 썩이려하고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 하게 생각해 보아도 양씨는 스스로 그 문제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유학을 준비 중 남편의 지병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음에 따라 딸아이의
유학은 물 건너가 버렸다.그리고 3년이 흐른 후 느닷없이 딸아이가 다시 한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해서
고민 고민하다가 보내주었었다.살점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으면서 양씨는 울면서 딸을 보내준 것이다.
한국의 S대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간 딸아이가 학교는 등교하질 않고 중국어교사 짓을 하다가 추방당했을 때
양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본래 딸이 이재에 밝음은 알았으나 공부하러 가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그런데 한국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딸의 나이가 이미 28세나 되기에 남자가 없음을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한편으로 반가 왔지만 그 대상이
한국인이라니..양씨는 어이가 없었다.
남자는 아주 성격이 차분하고 정말로 딸아이를 아껴주느것같아 저이 마음은 놓였었다.
그렇지만 딸을 달라고 할 때 남편은 심한 반대를 하였다.그 첫째 이유가 한국남자는 가부장적이라 여자를
하인 취급하는듯한 드라마도 많이 보았고 또 그 남자가 중국의 문화를 이해해 줄 수 있을 지가 걱정이었기
때문이라 했다.맞으며 결혼생활을 해왔던 양씨는 아픈 기억이 있어 차라리 딸아이가 결혼하지 말고
엄마와 같이 평생 살아주기만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은 한낱 꿈일 뿐이었다.
양씨는 한국남자에게 여러 가지 조건을 걸었다.첫째 딸아이는 여태껏 한번도 가사일을 해보질 않았으니
이해하여야만 하고 둘째 딸이 원하면 직장생활도 계속하게 해줘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남자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곧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양씨는 남편을 설득하게 되었다.한국남자는 결혼수속준비를 하였고 얼마지나지않아
북경왕징에 아파트를 하나 분양을 받았다.물론 딸의 명의로 구매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둘이 결혼을 하였고 양씨는 두 아이가 아무 탈없이 잘 살아주기만을 기원하였다.
결혼 후 4개월이 지나 딸아이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양씨는 드디어 자신이 할 일을 찾은 것 같았다.
부랴부랴 딸아이가 있는 북경을 찾아갔다.대략 북경에서 금주까지의 거리는 약 600km 가 된다.
그 동안 딸아이 집을 찾아갈 명분이 없어 보고 싶어도 참아 왔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강의를 나가던 대학은 휴직을 하였다.아무래도 한동안은 딸아이의 수발을 들어줘야 할것같아서였다.
딸아이는 임신한 몸으로 계속 직장을 다녔다.한국회사인데 대우도 좋았으며,급여 또한 높아서 쉽사리
그만둘 그런 회사가 아니었다.딸아이가 퇴근하고 나면 양씨는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었다.
침대에 누워서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를 받아먹는 딸아이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는 양씨였는데 딸아이의
남편은 이런 것을 영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듯했다.하루는 사위가 딸아이를 나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위는 어떻게 그렇게 나이 먹고 어머니를 하인부리듯 하냐고 딸에게 핀잔을 주는 것 같다.
양씨는 그러한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가 뭐래도 상관없었다.
양씨는 나이 58세에 드디어 손자를 보게 된다.아주 건강한 사내아이다. 딸아이는 두달전부터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 집인 이곳 진주에 와 있었다.사위는 2주에 한번씩 찾아와 토요일,일요일을 같이 지내고 갔다.
그 동안 둘의 결혼을 못마땅해 하던 남편도 손자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수술 후 은퇴하고 나서
소일거리도 없어 항상 집안에만 있었는데,이제는 손자의 귀 저기도 갈아주고 한시도 손자에게서
눈길을 때지 않는다.딸아이는 산후건강을 빨리 되찾았다.배를 갈라서 아이를 낳아서인지 회복이 빨랐다.
사위가 와서 딸과 손자가 이제는 아빠 곁으로 와야 되지 않느냐고 했을 때 양씨는 소중한 무엇인가를 빼앗기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손자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양씨는 딸 아기가 신혼 집인 북경으로 돌아올 때 따라서 왔다.남편이야 혼자 살던 말던 상관이 없었다.
양씨가 북경으로 오 고난 뒤 거의 한달 이 되어갈 무렵 사위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양씨는 그런 사위가 너무나 괘씸했다.도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외박을 하는 것이지 이유를 몰랐다.
하루는 딸아이가 오빠가 이혼하자고 한다며 대성통곡을 했다.이게 또 무슨 개풀띁어먹는소리란 말인가?
사위가 말하길 장모는 이제 제발 집으로 돌아가시고 둘만 살게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양씨는 어이가 없었다.
집안청소며 빨래며 아기 돌보기며 다해주고 있는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돌아가 달라니…
사위와 담판을 짓고 싶은 양씨였다.
담담하게 양씨에게 한국인사위가 말했다.이제 3개월밖에 되지 않는 아일 두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아이에
대한 불만이며 결혼 후 둘이서만 지낸 시간이 너무도 짧았고 나이가 30세가 다되어가도록 장모에게 응석을
부리는 딸아이버릇 또한 고치기 위해서는 장모는 꼭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한다.
장모만 계시질 않으면 그러한 버릇이 없어질 것이며 한 아이의 엄마로서도 성숙될 것이라 했다.
직장생활 하는 것은 좋으나 모유만 먹고 있는 아이의 젖먹일 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위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직장생활도 그만두라고 한다.직장은 언제든 다시 다닐 수 있으니…
양씨는 한마디로 거절했다.내 딸아이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의사지 사위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분명하게 결혼 전 내 딸은 가정 일을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 것을 주지시켜주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사위는 그날 나가서 아직도 돌아오질 않고 있다.
그리고 나서 어제 사위는 아이의 여권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길 들었다.양씨는 겁이 덜컥 났다.
사위는 이러한 결혼생활에 아무런 미련이 없으며 아이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양씨는 계속 고민을 하였다.어떻게 해야 할지 금방 대책이 떠오르질 않는다.
아직도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이 일을 알고 나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아이 둘이 잘살게 가지 말라던 남편이었다.
딸아이를 시켜 시댁에 전화를 해서 사위의 행동을 막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사돈은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사위는 아직도 돌아오질 않고 있다.
이제는 딸아이도 양씨를 원망하는 기세이다.남편이 돌아왔을 때 자기는 그를 잡고 잘못했다고 하고 싶었는데
엄마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엄마 말만 듣고 남편이 원하는 것을 하나도 들어주질 않았으니 어쩌면
조냐고 운다.양씨는 가슴이 아팠다.집을 나가기 전 사위가 한말이 자꾸 귀에 떠오르는 양씨다.
"장모님 한국에서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결혼한 딸은 시댁 집 식구가 되는 겁니다.이게 한국과 중국의 차이지요.
그리고 한번 보세요.장모님과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우리 아이는 한마디 한국말을 못할 겁니다.앞으로 제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이 아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아버지 나라의 말을 배우려면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이지요.저와 애 엄마 말입니다"
양씨는 왜 처음부터 그들의 결혼을 말리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이제 딸을 위해서는 양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렇지만 전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도,딸과 헤어져 살고 싶지도 않은 양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