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묵으면서 아침은 주로 근처 시장에 가서 먹거나 아는 시골 아주머니에게서 산 누룽지로 때웠다.
시장은 아침 6시 정도면 문을 열었고 구석에서 여러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토장국을 비롯해 소탕,개탕,
냉면, 비빔밥,간장에 찍어 먹는 연변식 순대,떡,팥죽, 10여가지 정도 반찬이 있는 3원짜리 부페등 대부분
3원이면 먹을 수 있었다.
토장국이나 소탕등은 기본이 3원이고 고기를 더 넣어서 5원을 받는데 처음 1주일은 모르고 5원짜리만
먹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3원짜리를 먹고 3원짜리도 밥과 국은 그냥 더 줘서 그 이후론
주로 3원짜리를 먹었다.
입에 맞는 건 토장국, 소탕 그리고 비빔밥 정도인데 특히 배추를 넣고 끓인 토장국이 좋았다.
한국에선 무청을 넣고 끓인다고 하니 이곳에선 무청은 버리고 배추만 넣는다고 한다.
겨울에는 시장안에서 배추를 삶아 썰어서 어른 주먹만하게 얼려서 개당 50전에 팔고 있었다.
누룽지는 아는 아주머니가 기차로 1시간 거리의 변두리에 살고 있었는데 그 곳에선 밥을 무쇠 가마솥에
해서 얇은 누룽지가 맛있어서 근으로 재서 50원치 정도 사서 그냥 먹기도 하고 아침마다 호텔에서
더운물을 마후병에 담아 주는데 그릇에 누룽지 넣고 더운물을 넣어서 먹곤했었다.
더운물에 누룽지를 불러 먹는건 이 연변에선 자주 해 먹는 것 같았다. 심지어 딸이 일본으로 유학간 집이
있었는데 누룽지를 소포로 보낼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호텔 카운터에서 일하는 한족 여자도 이 누룽지를 그냥 먹는 걸 좋아해서 밤에 시도 때도 없이 내방에
전화를 해서 누룽지 가지고 내려 오라고 하면 나는 포대에서 한 주먹 누룽지를 쥐고서 1층으로 튀어
내려가곤 했었는데 지금 기억으로 누룽지를 가마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 호텔에서 지내면서 화장실만 같이 쓴 다는 것 이외는 그리 큰 불편함 없이 지냈다.
근처에 시장과 목욕탕등이 있었고 뒤쪽에선 저녁에 길가 시장이 서는데 채소등 가격이 저렴했는데
하루는 물건 파는 한족이 비닐 봉지를 하나씩 나눠 주어서 무언가 보았더니 각자 비닐 봉지에 가지를
가득 담아서 1원씩 주고 사가지고 가는 모습이었다.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사는 누룽지 파는 아주머니 마을도 구경할겸 기차 타는 걸 좋아해서 아주머니가 일찍
퇴근하는 날 같이 기차 타고 갔는데 마을은 한족이 조선족 보다 좀 더 많고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기차로 1시간 거리의 변두리라 그런지 방값도 한 달에 50원 정도로 저렴했다.
시내에는 싼 방도 월 100원은 줘야 하는데 시설과 크기는 오히려 이 50원짜리 방이 더 괜찮았다.
이런 곳에서는 한 달에 500원 정도면 구질구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물론 시내 월 100원짜리에서
방에서도 서민들은 월 500원 정도로 지내고 있었다.
이 연변에서는 어디 가서 일하면 보통 500원 전후 받는데 나는 화룡에 사는 조선족 할머니에게서
연봉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스카웃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용정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가 나에게로 와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내가 왜 가냐고 물으니 그 할머니는 담배 농사를 하는데 같이 가서 농사를 짓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의 구질구질한 모습과 꾀죄죄한 옷차림을 보고 위대한 조국에서 온 탈북자로 본 것이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이런 할머니에게 아무리 난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해도 통하지 않으므로
또 본의 아니게 짝퉁 탈북자가 되고 말았다.
자기 집에 가면 마을에 유지들도 다 알아서 안전하고 술과 담배도 주고 재워주고 1달씩 월급이 아니라
1년 뒤에 연봉으로 1000원을 준다는 파격적인 제의였다.
섭섭하게 자전거가 포함은 안됬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연봉으로 제의 받기는 처음이었다.
난 오늘 버스표도 미리 샀고 집으로 가야 한다니 집엔 다음에 가고 자기집으로 가자고 계속 권유했다.
약속이 있어서 오늘 꼭 가야 한다니 아쉬웠던지 화룡 어느 시골 마을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면서
꼭 찾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구질구질하게 떠돌아 다니기만 한 내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란걸 예전엔 미쳐 몰랐다.
나는 이 조선족 할머니를 보면서 연변 농촌에서는 위대한 조국에서 온 탈북자들을 월 100원도 안되는
돈으로 사람을 쓰는구나 라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고 만약 한국 농촌에서 위대한 길러준 조국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 20만원도 아닌 연봉 200만원을 준다고 하면 과연 조선족들의
표정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는 조선족 아주머니와 얘기중에 조선족들은 한국에 가서 벌어서 물가가 싼 중국에서 쓰고
한국 사람들은 물가가 비싼 한국에서 사용해야 하니 좀 덜 받아도 괜찮지 않냐고 하니 이 아주머니는
자기네들은 7만원의 수속비를 내서 가기 때문에 한국 사람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 농촌에서 일하는 많은 조선족들은 먹고 자고 월 100만원 정도는 받고 일하는 걸로 아는데
아마 연변 농촌에서 일하는 탈북자들이 조선족들의 월급인 500원 전후 받고 일하는 경우는
이 화룡 할머니의 경우를 보더라도 안 봐도 비디오였다.
연변에서 월 500원 정도 받는 조선족에게 한국에서 숙식 제공하고 월 30만원만 줘도 올 사람들
천지일 것이다. 연변에서는 그 나마 잘 나가는 공장이 담배와 맥주공장 정도였는데 연변에 있는 동안
만난 사람중에 월 700원 이상 받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가깝게 지낸 호텔 1층 카운터 한족 여자가 10년 가까이 일했는데 월급이 올라서 내가 있을 때 550원
받는다고 들었었다. 10원짜리 위폐가 있을 정도였다.
이 할머니가 준 주소와 전화번호는 지금도 내 수첩에 적혀 있는데 화룡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할머니
집을 찾아 가면 얼마나 반가워 하실까....
집도 절도 없이 구질구질하게 돌아다니는 이 나그네에게 밥과 술 그리고 잠자리까지 포함이 되고
고맙게도 월급이 아닌 1000원의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한 이 조선족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