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파워, 남북관계 진전때마다 '제동'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하루 앞둔 24일 시험운행을 전격 취소한 배경에는 북한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4일 남측에 보낸 전통문에서 시험운행 연기 배경과 관련, 남북 군사당국 사이의 군사적 보장 조치와 함께 남측의 친미 극우보수 세력이 6.15진보세력을 공격하고 정세를 험악한 대결과 전쟁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측 보수세력과 정세 불안정을 운운한 것은 구실에 불과하고, 군사적 보장 조치를 강조한 대목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군부가 철도시험 운행에 합의한 내각과 대남담당 부서에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군부는 경협을 위해 개성을 비워주고 철로를 연결하는 등 남북관계 전체를 볼 때 필요한 사안에는 협조하지만 급속한 긴장완화는 환영하지 않는다"며 "남한의 좌우대립이나 보수세력 득세에 대한 불만은 부차적인 구실"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국가전략으로 내세우면서 북한 군부의 위상이 높아지고 군부가 남북관계와 핵문제는 물론 내부 경제개혁 등 주요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군부의 힘이 강화되고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 측근들을 누구보다 신임하자 노동당 고위급들마저도 군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2년 4월 방북한 임동원 당시 김대중 대통령 특사가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조속히 해야 한다고 거듭 설득하자 리명수 군 작전국장을 직접 불러 지시를 주면서도 "군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김 위원장의 이 말은 군부의 눈치를 본다기보다는 군부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해 손을 들어준 것으로 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군부의 반대는 각종 정책 결정에서 실제로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북한 군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마다 제동을 걸곤 했다.
지난해 북한이 고(故)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사건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배경에도 군부 목소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북지원 단체의 한 관계자는 "북측 대남 실무자들은 우리에게 남북관계를 빨리 활성화하고 싶지만 탈북자 집단 입국과 김 주석 조문 사건 등으로 명분이 없게 됐다"며 군부 강경파의 제동을 우회적으로 전했다.
2002년 6월에는 서해교전을 유발해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긍정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고, 지난해에는 북한 해군사령부가 수차례에 걸쳐 남측 함정이 서해 북측 수역을 잇따라 침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남북관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군부의 입김은 핵문제와 경제개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북소식통들은 북한이 2004년 5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6자회담 무기 불참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도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와 국정연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상원 인사청문회 발언을 두고 "미국의 본심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는 군부에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2001년 클린턴 미 행정부 집권 말기에도 북.미간 미사일 회담에서 '금전적 요구'만을 내세워 대미 접근 기회를 잃었던 전해지고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 생산 및 수출을 포기하면 기술교류 등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입장을 제시했지만 북측 외무성 관계자들은 테이블에서는 수긍했다가도 다음 접촉에서는 또다시 기존 입장으로 되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이 7.1경제관리 개선 조치 일환으로 개인 투자에 의한 주택 건설을 허용하고 주택 일부를 개인에게 유상분양하는 등의 각종 개혁조치에 대해서도 북한 군부는 '사회주의를 말아먹는 방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제는 북한 군부의 이같은 제동이 오히려 미국과 갈등을 빚어가면서까지 북한을 도우려는 남측 정부의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몽골 울란바토르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해 '대담한 양보'와 합동군사연습과 같은 제도적 장애물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북한 군부의 이같은 강경 자세는 북측의 입장을 어렵게 할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chsy@yna.co.kr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5-26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