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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의 고민
이름 : 중국통
2005-07-18
글/ 김선생(2003.08.05) 80년대 중반에 대만에 갔는데 제대하고 시간이 많이 남길래 대만에 어학연수를 갔다. 아는 대만사람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신죽에 있는 청화대학 국어중심에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는 기초는 충분한지라 즐겁게 지냈다. 난 명색이 한국인이길레 양복에 넥타이 메고 학교를 갔는데 대학교수도 와이샤스만 입고 다니는 것이었다. 대만은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정말 환장할 정도였다. 대만학생들은 조리 비슷한 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한국에선 여름에 조리 신고 학교다니는 학생은 볼 수 없었는데 정말 괴상하게 보였다. 대만학생들이 반바지차림으로 등교를 하는것을 보고 저것들이 대학생인지 양아치새끼인지 구분이 안간다고 욕을 막했다. 한국유학생들하고 한국화교유학생들하고 주로 어울렸는데 모여서 술을 왕창 마시고 대만욕하고 대만여자들 못생겼다고 욕하면서 술안주로 삼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화교들은 대만을 한국인보다 더 욕을 하는 것이었다. 지들은 전부 대만국적이면서 대만인들은 우습게 아는 것이었다. 일단 대만대학생들하고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 대만대학생들은 술을 거의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남방계라 술을 못먹는 체질이고 대부분이고 단구에다가 생긴게 희안하게 생긴 놈들이 많아서 정이 안갈 정도였다. 그리고 신죽시는 타이베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인데 인구는 30만 정도인데 그 흔한 호프집 하나 없었다. 커피숍도 없었다. 야시장은 있어서 자주 갔지만 술사다가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몇번 대만에 갔지만 대만인 지인집에 잠깐 간 것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직장일로 대만에 있을때 타이베이는 낙후한 도시로 변했다. 인구 200만의 타이베이시는 인천보다 작은 규모로서 달라진것은 지하철이 생긴 것하고 도시는 20년전과 별 다름이 없었다. 우중충한 건물과 가게마다 세놓는다고 써놓은 방이 붙어 있을뿐 인구가 줄고 공장은 대륙으로 이전하고 남자들은 미인을 찾아 대륙을 너도나도 떠나고 대만여성들은 시집못가는 노처녀들로 전락하여 사회불안 요소로 대두되자 대만정부의 조치 대만인과 결혼한 대륙여성의 대만입국금지를 발표했다. 그러자 중국에선 대만동포의 영주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덕분에 대륙각지에 대만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해서 대만촌이 여기저기에 들어섰다. 상해에만 30만명이 살고 있다. 대만인의 한계가 더운 지방에만 자리를 잡는 경향이 강하다. 동북이나 북경에는 거의 안보인다. 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은 유학생과 상사주재원 그리고 개인사업가 소수지만 대만인과 결혼한 한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학생은 한국유학생이 외국유학생중 당근 1등이다. 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은 대부분이 벤츠를 끌고 다닌다. 상사맨들은 제외하고라고 개인사업가들조차도 벤츠280은 기본이다. 한국학교앞의 풍경은 등교하는 어린이를 태우고 온 한국엄마들이 타고온 벤츠나 BMW로 붐빈다. 한국문화는 대만에서 최고의 고급문화며 한국가수 탈렌트는 대만에 한번 다녀가면 몇천만원씩 벌어간다. 대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겨울연가는 대만땅을 뒤집어 놓은 드라마였다. 지금은 한국드라마 외에는 보지 않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잇다. 내가 본것만 호텔리어, 상도, 명성황후 등등 중국어더빙으로 본 한국드라마 참 많다. 한국노래는 대만인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쿵따리샤바라는 불후의 명작이다. 물론 원조는 장호철이다. 전남 광주에서 중문과를 졸업해서 취직이 안되 대만으로 유학을 간 장호철은 당시로서는 드문 라이브바에서 주인한테 부탁을 해서 재미로 한곡을 불렀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개떼처럼 흥분해서 발광을 하는 것이었다. 주인이 매일 불러달라고 그 자리에서 제안을 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인기가 하늘을 찔러서 TV에 출현을 하고 인기스타가 되었다. 결국 대만여성과 결혼하고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대만과 단교를 하자 그는 대만국적을 취득하고 대만 최고의 남자가수로 불변가수로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 취입한 노래는 <그때 그날로>가 있고 국위선양을 한 애국자로 작년에 정부로 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장호철이 원조한류이면 덕분에 대륙에서도 인기가 있다. 한국인들은 대만만 가면 너도 나도 잘살지만 고민도 많다. 대만은 정이 안간다. 너무 덥다. 지겹다. 밤문화가 너무 낙후되었다. 치안이 나쁘다 등이었다. 대만은 밤만 되면 경찰들이 방탄복을 입고 근무를 할정도로 밤이면 인적도 없고 여성들은 돌아다니지 않을 정도다. 대만의 한국인들은 돈벌어서 한국에 돌아가서 편히 살날 만을 고대할 뿐이다. 우리회사 근처시장에서 수재비장사하는 화교아줌마는 주5일일하고 오후 5시면 손님안받고 퇴근하길레 황당했다. 아줌마 왈 돈도 필요없다. 한국테레비 봐야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회사 사장왈 나보고 대만에서 계속근무하라고 하길레 대판싸우고 다음날 케세이항공편으로 귀국하고 직장 잘렸다. 한국이 얼마나 좋은지 여긴 이 무더위도 서울이라서 아름답다. 최소한 북경처럼 45도까지는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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