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임금때 洪純彦이란 역관이 사신을 따라 북경에 갔을때였다.
한잔할려고 술집에 가는데 어느술집입구에 이상한 글이 써있었다.
'하루밤 술값이 천냥임'
호기심에 그집에 들어가서 까닭을 물으니 그집에 임시로 머무르는 낭자가 모함으로 처형된 고관출신인 아버지의 장래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고향으로 모실비용이 없어 천냥에 자기를 바칠생각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딱함을 안 홍순언은 전대에서 천냥을 풀어서 주고 집을 나오자 낭자는 따라오면서 생명의 은인인데 돈을 그냥주고 가니 안된다고 성명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조선에서온 홍역관이라고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귀국하여 공금을 축낸죄로 홍순언은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홍순언은 사신들과 원군을 청하러 다시 명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북경근처에 이르자 말을 탄 명나라관리가 여기 조선사신중에 홍역관이 있냐고 하자 영문도 모르는 홍순언은 그를 따라 으리으리한 집 대문에 들어서서 귀부인방으로 안내되어 갔다.
저를 몰라 보시겠습니까? 10여년전 한 주막집에서 생긴일을 잊으셨는지요?
홍순언은 문득 그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소조께서!
네 그렇습니다 그때 대인께서 주신 돈으로 아버님을 고향땅에 장사지냈고 그후 아버님의 모함이 밝혀졌습니다 지금은 석숭의 아내입니다.
명나라 병부상서 石嵩의 아내였던 것이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연일 회의가 벌어졌다. 조선출병문제가 간단한 일이 아니고 명나라의국운이 걸린일이기 때문이다.
황제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조선으로 출병을 하면 만주족들이 그틈을 노려 세력을 확장하면 북경이 위험해 질 수있고 남방과의 문제까지 걸려있기 때문에 병부상서 석숭에게 조선출병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고자 했다.
그덕분에 명나라에서 조선에 원군을 청하는데 석숭이 부인의 말을 듣고 적극나서서 이여송이 군대를 끌고 조선으로출병하게 되었다.
조선사신이 명나라원군을 받는데 성공하고 북경을 떠나는데 그 부인은 손수 짠 비단몇상자에 報恩이라고 직접 수놓아보내주었다.
홍순언은 명나라 외교를 잘한 공로로 역관신분으로는 될 수없는 光國功臣이 되었고 唐綾 府院君으로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