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얀늑대
중국의 여느 지역이든 비교적 큰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에 가면 어김없이 한국의 유행음악이 흘러 나온다. 시치미를 떼고 근무자들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 본다. "왜 당신들은 한국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유행되는 문화, 보고 느낄 수 있는것 즉 패션, 드라마, 음악 등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한국인으로써 가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좋은 인상을 계속 줄 수 있어야 하는데..하는 걱정과 사명감이 앞서기도 한다.
얼마 전 산동성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인 '치루완바오'의 문화면 기사에는 다년간 한국에서 체류하며 한국학에 대한 연구 경험이 있는 산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중국에 한국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방송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한국의 드라마를 통해서 그들의 낙후한 의식과 문화를 '수보(修補)'(시우푸-즉 수선과 보충의 의미로 잘못된 것은 개선하고 모자란 것은 보충한다는 뜻)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매일 평균 2~3편의 한국 티브이드라마를 접할 수 있다. 물론 거의 10년이 다된 한국드라마인'사랑이 뭐길래"같은 것처럼 오랫동안 각 지역 방송국에서 돌려가며 방송해서 화면이 아주 불량한 드라마도 있고 '노란 손수건'이나 '굳세어라 금순아'같은 비교적 최신의 작품도 있다. 한국 드라마가 여느 외국드라마를 제치고 이처럼 봇물을 이루면서 중국인의 마음 깊숙히 파고들고 있는것은 선진드라마를 통한 진보적인 의식전환을 꾀하려는 중국 공산정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국가 선전부를 통하여 국가의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정부는 한국의 영상물을 통해서 50여년의 공산통치로 망가진 중국인의 낙후된 의식과 상식을 개선하여 보다 합리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글로벌 아시안 스탠다드에 근접하는 사고력을 배양하고 있다. 또한 집단중심이 아닌 가정중심의 효도, 우애등의 잃어버린 전통적 사고와 가치관의 회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대륙에서는 이미 사라진 유교적 전통예절의 고양, 일당독재의 오랜 군사화 및 병영화(兵營化) 통치로 굳어진 경직되고 획일화 된 인민들에게 사고방식의 유연함과 다양화를 학습(?)시키고 있다. 중국식 교육- 즉 칼마르크스 주의의 사회주의 교육방식으로는 선진인성화의 형성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의 좋은 작품들은 지금까지 조장해 온 반일정서상 수용하기 곤란하고 더구나 최근 불거진 영토분쟁으로 일본 드라마의 입지는 더욱 약화 되었다. 대안으로 대만이나 싱가폴 등 같은 화교권 국가의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으나 양과 질의 면에서 한국의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대신 인문사회과학의 부재(중국에는 심리학, 논리학, 윤리학, 철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학문연구가 외국의 초보수준단계다. 그러나 국방과 전쟁을 위한 방위산업관련의 자연과학과 물리,화학등 기초과학은 많이 앞서 있다.)를 메꾸기 위해 열심히 대만이나 홍콩등지의 작가의 작품들을 각색해서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한국 어느 작가의 말처럼 연변조선족 작가협회에서 발간한 서적들을 읽어보면 맞춤법이나 어법의 상이함을 감안 하더라도 한국의 중고등학교 문예동인반 학생들이 발간하는 교지나 동인지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족들의 문학성도 당연히 조선족중국인의 범주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의 중국인들끼리 떠도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다소 부정적이다. 첫째는 '호색적이다'라는 표현을 한다.사실 이것도 획일화된 사회주의 병영식 통치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의 단순한 의식에 기인된 편견이다. 중국인들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자들의 난잡한 외도는 오히려 더욱 목불인견이다. 기본적 인성이 부족하고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책임감의 결여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째째한 구두쇠'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이 역시 당에서 하사(?)한 집에 거주하고 좋든 싫든 배정해 주는 직장에 다니고 주는데로 받아 먹는 것에 길들여진 그들이 개혁개방으로 돈이 좀 모여지자 과거 "한국형 시골 졸부"같은 행태의 골빈당 들이 늘어 나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성장하면서 돈의 귀중함을 깊이 느끼고 '규모의 경제생활'에 익숙한 외국인들을 그들은 그들만의 잣대의 편견으로 몰아 세우고 있다. 셋째는 "한국인은 교활하다." 이 역시 그들만의 편견이다. 머슴이 보는 주인영감은 잔소리 많은 구두쇠 노인으로 비칠 것이며 주인의 입장에서 본 머슴은 무식하고 게으르고 한없이 아둔한 양식만 많이 축내는 바보로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좋은 인상도 많다.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예의가 바르며 외모도 단정깔끔하고 국수주의정신에 투철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단결력이 높다고 평한다. 같은 민족국가인 조선인민공화국과 비교해 볼 때 경제적인 면을 제외하더라도 한민족의 정통성이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의 유지와 보존, 국민들에 내재된 역사관,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이 당연히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보면 대만이나 홍콩 등지의 자유민주체제의 중국인들과 대륙의 공산중국인들과의 차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솔직히 우리와 언어가 통하는 조선족들은 한국인에 대해서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 역시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들은 한국문화를 즐기면서 기뻐하지만 아직은 한국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한국인과 내면의 깊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한국어에 능통한 중국인이나 반대로 중국인과 깊은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중국어에 능한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극소수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언어가 통하는 대만인들이 비교적 많은 복건성지역이나 홍콩인들이 많은 광동성 지역의 중국인들도 대만인이나 홍콩인에 대한 평가가 한국인에 대한 그것보다 더 부정적이 많은 것을 보면 아직은 대다수 중국인과 대다수 한국인이 같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언어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해야겠다.
0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