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아직도 한국전쟁의 진상을 모르고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전쟁을 ‘미국의 위협을 제거하는 북한을 원조하자’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으로 알고 있으며 북한이 중국 정부에 파병을 요청해 참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왜 전쟁이 시작됐는지, 전쟁 과정에 인민군의 실제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은 언급되지 않고 애국심을 고취할 만한 대목만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 중국인들은 한국전쟁이 미국과 결탁한 남한이 중국의 동맹국인 북한을 침공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공군의 참전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행이 최근 중국사회과학원 역사학자 선즈화(沈志華) 교수가 1990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개된 비밀문서를 대량 인용한 서적 ‘마오쩌둥,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발표해 중공이 몇 십년 동안 산포한 거짓말을 폭로했다.
사실 한국전쟁은 적화의 야심으로 가득 찬 김일성이 그 보다 더 큰 야심을 가지고 있는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부추김과 지지를 얻어 일어난 것이다.
선즈화 교수가 제시한 비밀문서에서는, 김일성이 1949년 3월 모스크바에 있는 스탈린을 찾아가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는 것을 협력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처음엔 거부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일성은 평양에 돌아 온 후에도 야망을 포기하지 않고 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대사와 군사고문 등 요원을 통해 소련을 끈질기게 설득, 남한을 ‘해방’시킬 결심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스탈린은 극동에서의 소련의 이익을 고려해 김일성의 군사행동 계획에 동의했다. 1950년 3월, 김일성은 방대한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모스크바에 2개월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소련 홍군과 함께 작전 계획을 짰다.
같은 해 4월 25일, 김일성은 큰 자신감을 얻은채 평양에 돌아왔고 6월 25일 새벽, 인민군을 동원해 남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과 인민군은 몇 시간만에 개성을 함락하고 3일 만에 서울을 공략, 승승장구로 계속 남하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튿날, 북한에서 소련으로 보낸 소련대사의 비밀전보 내용은 소련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것은,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때 한반도에 진입했던 미군은 1949년에 이미 철수하고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의 진상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첫 사람은 선즈화 교수가 아니라 중국사회과학원 양쿠이쑹(楊奎松) 박사다. 양쿠이쑹 박사는 1997년 중국 역사학 권위 잡지인 ‘백년조(百年潮)’ 창간호에 글을 발표해 북한의 남침 계획은 소련과 함께 작성한 것이며 중공의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글이 발표된 후 양쿠이쑹 박사는 북한의 항의를 받았다. 다행히 당시 사회과학원 원장이었던 후챠오무(胡喬木) 박사가 나서서 “한국전쟁을 누가 발동했는지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백년조’의 문장은 천진한 어린이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므로 놀랄 필요가 없다”고 사건을 무마해 양쿠이쑹 박사는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논문으로 옥스퍼드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쉬저룽(徐澤榮)은 2002년 5월 ‘국가기밀누설죄’로 비밀리에 13년 형을 언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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