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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醫生)에 관하여

편집부  |  200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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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덕부(李德孚) 


당나라 정관(貞觀) 원년인 627년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즉위한 후 질병 치료를 위한 학교를 설립했는데 ‘의생(醫生)’이란 명칭의 기원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의학을 배우는 사람을 가리켜 ‘의생’ 또는 ‘학생(學生)’이라 했으며 두 단어는 같은 의미로 쓰였다.


당 현종(玄宗) 때인 개원(開元) 27년에 이르러 전국에서 10만 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주(州)에는 20명의 의생을, 그 이하인 주(州)에는 12명의 의생을 배치해 각기 해당 지역을 순회하며 질병을 치료하도록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의생’은 더는 의학을 배우는 학생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의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 이후 의생이란 단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럼 여기서 잠시 의생이란 말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의(醫)’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회춘록(回春錄)』에 이르기를 “의(醫)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다.”라고 했다. 한편 ‘생(生)’이란 죽음과 반대되는 의미이다. 『만병회춘(萬病回春)』에서는 “의도(醫道)란 예전에는 선도(仙道)라 했는데 원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국 의생이란 말은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로 쓰이는데 등급이나 귀천의 구별이 없는 말이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의사 손사막(孫思邈)은 ‘정(精)’과 ‘성(誠)’ 두 글자를 중시했다. 그는 “의학을 배운 후에 반드시 널리 의학의 연원을 연구해야 하며 정밀하고 근면하되 나태해선 안 된다.”고 했다.


명대(明代)의 의학가 서춘보(徐春甫)는 “의학은 정밀함[精]을 귀하게 여기는데 정밀하지 못하면 사람을 해치는 것이 적지 않다.”라고 했다. 이들의 말의 의미는 의술이 정밀하지 못한 사람은 잘못하여 사람을 다치거나 죽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른바 “미미한 질병에도 생명을 잃을 수 있고, 병세가 위중해도 치유할 수 있는데, 정밀하고 미미함의 구별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의술이 부족하면 환자를 치료하다 죽일 수 있지만 ‘정밀(精)’하고 ‘성실(誠)’한 의사는 위험을 평탄하게 만들 수 있으며 위중한 병자를 구할 수도 있다.


선인들은 의술은 반드시 정밀해야 하고 또 반드시 안빈낙도(安貧樂道)해야 하며 명예나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했다. 대가를 바라거나 오직 이익만을 꾀하는 의사는 환자의 안위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히 “빈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치료의 차이는 없어야 한다.” 는 것이다.


명대(明代)의 저명한 소아과 의사인 만전(萬全)은 호원계(胡元溪)라 부르는 사람과 원수지간이었다. 그런데 호원계에게는 4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 사방으로 명의를 찾으며 온갖 치료를 했음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 호원계가 만전을 찾아오자 만전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 마음에 둘 뿐 오랜 원한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말한 후 곧바로 그의 집에 가서 아이를 진찰했다.


그는 진단을 끝낸 후 진실하고 간곡한 어조로 호원계에게 말했다. “이 병은 내가 치료할 수 있소. 한 달 정도만 말미를 주면 가능할 것이오.” 곧이어 처방을 내어 치료했는데 5첩을 먹은 후 기침이 70%정도 줄어들었고 코와 입으로 나오던 피도 멎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호원계는 아들의 병이 호전이 너무 더디다고 여겼고 늘 만전이 자신과의 원한 때문에 치료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의심했다. 이에 다른 의사를 부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만소(萬紹)라는 의사를 청해 아들을 치료하도록 했다.


이 경우 이치를 따지자면 치료를 거부당한 만전은 완전히 손을 떼고 수수방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에게 돌아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뿐이고 이 병은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잘 치료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떠나면 그는 더 이상 나를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하면 아이를 해치게 될 것이다. 비록 내가 이 아이를 죽인 것은 아닐지라도 역시 나의 허물이 된다. 그러므로 만소가 약을 쓰는 것을 보아 이치에 합당하면 떠날 것이고 이치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를 저지할 것이다. 만약 진실로 그를 저지할 수 없다면 그 때 가서 떠나도 늦지 않다.”


만소가 새로 쓴 처방을 본 후 만전은 약이 아이의 증상에 맞지 않아 복용하면 위험할 것이라고 보고 쓰지 말 것을 간곡히 권했다. “이 아이는 폐기(肺氣)가 상승하여 내려가지 못하는 까닭에 폐기가 흩어져 수렴되지 않는데 방풍(防風)이나 백부근(百部根)과 같은 약을 사용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만소는 그의 충고를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방풍과 백부근은 기침을 치료하는 신묘한 약입니다.”라고 강변했다.


호원계 역시 이에 동조하며 “그의 이 처방은 비방(秘方)이오.”라고 거들었다. 이에 만전은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이 아이가 염려될 뿐이지 질투하는 것이 아니오.”


그는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 호 씨의 집을 떠나려 했다. 떠나기 전에 다시 아이를 보러 가서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련하구나, 잠시 좋아지긴 했지만 만약 다시 질병이 재발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는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왔다.


그가 짐작했던 대로 아이는 만소의 약을 먹자마자 기침이 다시 발작해 숨이 가빠지면서 다시 처음처럼 피가 나왔다.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저는 만전 선생님의 약을 먹고 좋아졌는데 아버지가 이 사람을 불러 저를 독살하려 해요!”


아이의 상태는 이후 급속히 악화되었고 곧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호원계의 부인 역시 울면서 남편을 욕했다. 호원계 본인도 후회가 막급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허물을 무릅쓰고 다시 만전을 청했다.


만전은 이번에도 따지지 않았고 단지 정성스럽게 권고하며 “그대가 일찍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후회는 없었을 것이오. 만약 내게 치료를 맡기고 싶다면 반드시 의심하는 마음을 없애고 한 달 동안 전적으로 믿고 맡겨보시오.”라고 했다. 결국 만전이 치료한 지 17일 만에 아이는 완전히 치료되었다.


만전의 이 일화는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학계에선 이렇게 고상한 덕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만약 의술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지금의 의사들이 이 일화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자못 궁금하다.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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