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분구자(糞狗子)라 부르는 달공에게,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 왜 어줍잖게 한문을 쓰십니까? 분구자(糞狗子)라니 말 조심하세요. 나는 중국과 한국과 일본이 유럽연합국 처럼 한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권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수 있는 오늘날, 왜 너땅, 내땅을 구분하고 살아야 합니까? 도대체 무엇이 달공을 그토록 두렵게 만듭니까? 2백만 중국 동포가 오면 한국이 중국화가 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2백만명이 다 몰려오지도 않겠지만 설혹 다 온다 해도 중국화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달공은 말하길 "중국인이나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점을 나열하면.
(1)가게에서 상품을 문밖에 진열하고 주인은 TV보는것이 신기하다.
(2)한밤중에 텅빈 국도에서 신호등 보고 차를 멈추는 것을 이해 못한다.
(3)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진짠지 가짠지 확인 안하고 사는게 이해가 안간다.
(4)잔돈을 거슬러 받을때 잔돈 확인 안하고 대충 받아 넣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5)밤 늦도록 여자들이 술먹고 돌아다니는 것을 이해 못한다.
(6)데모가 일어나서 뉴스에 그렇게 떠들어도 도로 하나만 건너도 조용한게 신기하다" 하셨지요.
그러나 일본인인 내가 보기엔 한국인도 중국인이나 동남아 사람과 똑같습니다.
(1)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슈퍼마켓에 갔더니 곳곳에 배치된 종업원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장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떠드냐고 물어보니 가만히 있으면 일 안한다고 문책을 당한답니다. 또한 떠들어야 졸린것도 달아나고요. 종업원들이 슈퍼마켓 곳곳에 배치된 이유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랍니다. 장바구니도 장 볼때만 쓰게 하고, 그것을 갖고 나가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를 하였습니다. 웃긴 것은 봉지를 주면서 인색하게 돈을 받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안그러면 손님들이 봉지를 가져다 쓰레기 봉지로 쓴답니다. 일본이나 서양엔 아파트마다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어서 거기에다 쓰레기를 버리는데 한국은 쓰레기전용규격봉투에 담긴 쓰레기가 아니면 수거해가지도 않았습니다. 왜 지저분하게 길거리에 쓰레기 담긴 봉투들이 있는지... 봉투를 돈받고 팔아먹는 공급자나 소비자나 모두 인색하기 짝이 없더군요.
(2)차가 없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한국도 길에 걷는 사람이 없고 차들만 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 해도 차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몰려 옵니다. 길을 건너는 사람을 위해 멈추는 차들이 없습니다. 다들 속도내며 운전하는데 미친듯한 인간들 처럼 보입니다. 대학교 캠퍼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가 오는데 내가 길을 건너자 운전하는 학생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차가 먼저 지나간 뒤에 길을 건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북미 구라파와 달리 한국에선 길 건너는 사람 보다 차가 우선입니다. 남들은 다들 그것을 아는데 나만 그것을 모르고 길을 건너다 큰일날뻔 하였습니다. 차가 멈출 생각은 안하고 경적을 울리며 미친듯이 마구 돌진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속을 하는데 길에는 속도제한 표시판이나 검문하는 경찰이 없습니다. 시골길 일차선 도로에서도 차들이 속도를 내더군요. 옆으로 비키다 뱀에게 물릴뻔 하였습니다. 인도에다 주차를 해서 걷기가 불편합니다. 인도 또한 없는 곳이 많은데 인도가 없는 길에선 걷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버스 앞에 차를 세우고 버스 안에 들어와 운전사를 두드려 팹니다. 버스가 직진하는데 조그만 차들이 마구 차선을 바꾸고, 또 버스가 차선을 바꾸는데 조그만 차들이 마구 직진할만큼 사람들이 성급하고 무식합니다. 성급하고 무식하니 겁이 없는 것입니다.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불구하고 차들이 돌진합니다. 그러므로 사거리에서 다른 차들이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도 다치기가 쉽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를 배달하던 청년은 보행자와 함께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였습니다. 롯데마트 근처에서 일어난 사고였는데 사고를 일으킨 운전사는 도망을 가더군요.
(3)신발 가게에 갔더니 나의 발에 맞는 신발 사이즈, 11인치 (275mm)가 없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280 혹은 290mm라고 적힌 신발도 내 발에 맞지가 않았습니다. 쿠숀도 좋지가 않아 그런 신발을 신고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부르트기 십상이었습니다. 290mm 신발도 하루종일 시장을 돌아다니다 겨우 구한 것인데 기가 막혔습니다. 신발 가게에서 하는 말이 300mm 신발을 사려면 외국 운동화를 파는 백화점에 가라고 하였습니다. 할수 없이 나는 백화점에서 10만원 가까이 되는 외국 운동화 (나이키)를 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현장에서 노가다 일을 하니까 밑창이 떨어져 나가더군요. 말하자면 진짜 나이키 신발이 아니라 가짜였던 것입니다. 하루 노가다 하고 겨우 5만원 벌었는데 말입니다.
(4)한국에 와서 웬 고생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못사는 나라, 못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게 어떤건지 알고 싶었습니다. 잘사는 나라 (일본)에 있으면 부모님께서 대형마트를 여러개 하시기 때문에 고생을 안하지요. 부모님께선 절대로 한국인 종업원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인 몰래 돈을 챙기려고 계산할때 손님에게 영수증을 안주거나 돈을 적게 거슬러 주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이나 북미 구라파 사람은 잔돈을 거슬러 받을때 잔돈 확인 안하고 대충 받아 넣습니다. 한국인은 서양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 순한 곰퉁이라고 조롱을 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곰퉁이라면 서양이나 일본이 한국보다 잘살수 있겠습니까? 서양인이나 일본인은 돈을 적게 거슬러 받아도 싸우거나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그 가게에 찾아가지 않습니다.
(5)한국에서 여자들이 밤 늦도록 술먹고 돌아다녀도 안전하다고요? 그것은 술주정이지, 안전한 세상이 아닙니다. 진짜 안전한 세상은 여자 혼자서 산에 올라가 산책을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북미구라파에 가보세요. 산에다 산책로도 잘 깔아놓았지만 혼자서 뛰어다니는 여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일본, 서양의 집이나 가게는 담도 없고 문가리개도 없기 때문에 조세형 같은 도둑이 일본에 가면 식은죽 먹기일 것입니다. (2006년 3월부터 비자 없이 일본에 갈수 있음.)
(6)한국인들이 데모를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LA폭동을 일으킨 흑인들 처럼 폭동이지, 평화로운 데모 시위가 아닙니다. 어떤 영어 강사 (안현필)가 쓴 책에 보면 그가 일본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교에서 하는 말이 한국 학생들은 데모 잘하는 골치거리라고 했답니다. 419의거도 그랬고, 79년 부마항쟁이나 87년 6월 민주항쟁도 모두 데모가 아니라 폭동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를 종식 시켰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명분도 없이 데모를 합니다. 그것을 볼때, 오늘날의 데모나 옛날의 데모나 모두 비난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들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지, 무슨 명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인인 내가 보기엔 한국인도 중국인이나 동남아 사람처럼 성격이 거칠고 다혈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