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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해쳐 동정(童貞)을 지킨 의광선사

편집부  |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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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다음은 중국 소설집 ‘태평광기(太平廣記) 권 94에 나온 이야기 중 하나다.

 

장안(長安) 청룡사(靑龍寺)의 의광선사(議光禪師)는 본래 당(唐) 황실의 황족이었다. 그의 아버지 낭야왕(瑯琊王)과 월왕(越王)이 병사를 일으켜 측천황후(則天皇后)를 토벌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이에 측천황후가 그의 전 일족을 단 한명도 빠짐없이 주멸하라고 명하자, 당시 유모가 선사를 강보에 싸 안고 도망을 쳤다.


몇 년 후 측천황후는 낭야왕의 아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체포 명령을 내렸다. 유모는 그를 데리고 기주(岐州)지역에 도착해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당시 선사는 8살이 되었는데, 타고난 성품이 영명했고 용모 또한 출중했다. 유모는 그의 용모가 매우 뛰어나 발각될까 염려되어 그에게 새 옷가지와 2백전을 주고 그를 황량한 야외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그간의 진실을 알려주었다. 유모는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저는 왕자님을 8년 동안 기르면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측천황후가 또 다시 명령을 내려 왕자님을 잡는다는 소식이 있으니, 우리의 사정이 누설되면 저와 왕자님이 모두 죽어야 합니다. 왕자님은 총명하니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행방을 감출 것입니다." 유모와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이별을 고했다.


유모와 헤어진 선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발길 닿는대로 한 객점에 도착해 아이들과 함께 놀기 시작했다.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 객점에서 쉬고 있던 한 군수 부인은 선사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다가 그의 용모가 비범한 것을 보고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부인은 그를 면전에 불러 말했다, "너의 집은 어디냐? 무슨 일로 혼자서 이곳에 왔느냐? "선사는 거짓말로 대답했다, "우리 마을은 이곳에서 매우 가까워서 자주 이곳에 와서 놉니다" 부인은 그에게 먹을 것과 5백전을 주었다. 선사는 비록 나이는 어리나 매우 견식이 있어 다른 사람이 그의 돈을 가져갈까 두려워 옷을 풀어 모두 허리춤에 넣었다.


날이 저물자 그는 길을 따라 가며 투숙할 마을을 찾으려 했다. 한참을 가다가 길에서 한 노승을 만났다. 노승은 선사를 부르며 말했다. "얘야, 너는 이미 홀홀단신으로 집은 이미 파멸되었는데 어디로 가려 하니?" 선사는 놀라 우두커니 서있었다. 노승은 또 말했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면 여유자재하고, 아무런 근심과 두려움이 없단다. 얘야 너는 출가를 하고 싶니?" 선사는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심원(心愿)입니다." 노승은 바로 그의 손을 잡고 한 뽕나무 아래에 도착해 그에게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께 예를 올리라고 한 후, 그의 머리를 밀었다. 노승이 또한 자신의 옷 보따리를 풀어 가사 하나를 꺼내 그에게 입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가 능숙하게 가사를 입자 노승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는 너의 전생의 습성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노승은 동북방향을 가르키며, "여기서 몇 리 떨어진 곳에 한 절이 있으니, 너는 직접 그곳에 가 주지를 만나 내가 그의 제자로 들어가라고 말했다고 하거라." 말을 마친 노승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선사는 절에 도착해 주지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하자, 주지는 듣고 매우 놀라 그를 거뒀다. 선사는 10년도 되지 않아 이미 불교의 경전에 통달하였으며 선적(禪寂)에 들 수 있었다.


측천황후가 물러앉고 이(李)씨의 당 황실이 중흥한 후 도처에서 낭야의 후대를 찾자, 선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선사가 절을 떠나 기주(岐州)의 태수 이사군(李使君)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태수는 선사의 삼촌뻘 되는 사람이었다. 태수는 그를 보고 희비가 교차했다. 그를 자신의 집안에 들이기 위해 태수는 그의 상황을 황상에게 아뢰려고 했으나, 선사는 완강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태수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선사와 나이가 같았다. 그 딸은 선사를 본 후, 매우 그를 좋아하게 되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으나 선사는 반응이 없었다.


한달 후 태수 부인이 외출한 틈을 타 그의 딸이 곱게 단장한 후, 수많은 사람을 보내 선사를 핍박했다. 선사는 온갖 것을 사양해 시종 긍정하지 않았다. 후에 그는 몸이 더럽다고 핑계를 대어 목욕을 다하고 다시 명을 따르겠다고 말하였다. 딸은 그의 거짓말에 동의하여 그가 목욕을 하게했다. 선사는 딸이 방에서 나가기를 기다린 후 방문을 잠궜다. 딸이 돌아와 문을 밀자 문이 밀리지 않아 들어오지 못했다. 창문으로 엿보니 선사가 손에 머리깎는 칼을 들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 이 화근이 음욕을 초래했으니 이 화근을 제거하겠소." 딸은 매우 두려웠으나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선사는 그 화근을 잘라내 땅에 던지고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 그의 행동에 당황한 그녀는 선사가 있는 방의 문을 열려고 애썼으나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 태수부인이 돌아오자 딸은 어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태수는 사람을 구하려 방문을 부쉈고 선사는 이미 깨어나 있었다. 태수는 유명한 의원을 불렀다. 의원은 불로 땅을 붉게 태우고 쓴 술을 뿌려 선사를 타오르는 땅 위에 앉게 한 후에 그에게 고약을 발라주었다. 몇 달 후 완쾌되자, 태수는 황상에게 선사가 낭야왕의 아들이라고 보고했다. 황상은 칙명을 내려 선사를 수도로 불러 상을 내리고 후한 대우를 해주었으며 또한 그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


선사는 말했다, "부모님이 비명횡사하고, 제 몸은 이미 훼손돼 지금 다시 왕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중종황제(中宗皇帝)는 명령을 내려 선사가 제자들을 받아들여 명산을 택해 사찰을 짓게 하고, 모든 일을 선사의 뜻에 따르게 했다.


개원(開元 당나라 현종 때의 연호) 23년 6월23일 선사는 병 없이 죽었다. 죽기 전, 그는 제자들에게 간절하게 각고수신(刻苦修身)하고 계율을 지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말을 마친 후 손을 머리에 대고 북쪽을 향해 넘어진 후 몸 우측이 바닥에 닿게 해 죽었다. 그는 소릉원(少陵原) 남쪽에 안장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소릉원에 묘혈을 파고 유체는 안쪽에 봉폐시켰다. 장례를 치른 그날 영구가 출발할 때 그의 유체는 짙은 향기를 발산했으며, 그 모습도 살아있을 때와 똑같았다. 영구 가마가 성문을 나선 후, 돌연 수백 마리의 백학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슬프게 울었으며, 오색찬란한 구름이 영구차를 감돌았는데 이렇게 몇 십 리를 갔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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