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5.13(화)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당(唐) 여성도 당시 유행을 추구

편집부  |  2014-04-02
인쇄하기-새창

▲ 당대(唐代) 벽화

[SOH] 고서를 보면, 중국 고대 여성의 치장은 당조(唐朝)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또한 당대의 대표는 황실을 으뜸으로 친다. 백거이(白居易)는 ‘상양인(上陽人)’에서 이렇게 읊었다.


小頭鞋履窄衣裳(소두혜리착의상)  끝이 뾰족한 비단신 좁은 치마를 밟고
靑黛點眉眉細長(청대점미미세장)  푸른 먹으로 그린 눈썹 가늘고 긴데
外人不見見應笑(외인불견견응소)  바깥 사람 보지 못하나 본다면 반드시 웃으리
天寶末年時世妝(천보말년시세장)  천보(당(唐) 현종(玄宗)의 후기 741~756년) 말년의 차림새였으니


무엇을 시세장(時世妝, 당시 유행하는 화장법)이라 부르며, 당나라 여성은 어느 정도로 유행을 따랐을까?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한 구절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풍속은 사치스럽고 명령을 듣지 않으며, 비단에 수를 놓고 기호와 취향을 따르며......위로는 후궁의 거처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점차 서로 모방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여자들이 단속에 불응하며 유행을 좇는 데 대한 남성들의 불평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된 일부 당대(唐代) 여자인형 및 벽화 역시 ‘당나라 여성의 화장은 확실히 농염하고 대담하며 화려하고 기발하다’는 당시 남성들의 질책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당연히 당대의 일체 유행은 모두 장안에서 시작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장안시언(長安時諺) 에는, '성 안에서 쪽진 머리가 높아지자 사방에서 쪽진 머리가 일척이나 높아졌다. 성 안에서 넓은 눈썹을 좋아하자 사방에서 이마의 반을 덮었다. 성안에서 큰 소매를 좋아하니 사방이 모두 비단이다.' 비록 본뜻은 사회 기풍이 '위에서 좋아하는 것은 백성이 반드시 따른다'는 의미이지만, 유행의 각도에서 보면 오히려 장안이 정치문화의 중심이며 유행을 선도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당나라 여성 유행의 주요 조류는, 가리는 것에서 노출로 나아갔다(양식); 단순한 것에서 복잡함으로 나아갔다(꽃무늬, 장식);, 간소하고 소박함에서 사치스럽고 화려함으로 나아갔다(복장풍격); 수려함에서 풍만함으로 나아갔다(몸매와 체형).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대 여성이 추구한 유행은 전방위적으로 머리, 눈썹, 입술, 흉부 및 의상 등 모든 방면에서 고상한 표현이 있었다. 그녀들의 헤어스타일은 고계(高髻, 높이 틀어 올린 쪽)와 타마계(墮馬髻, 말에서 떨어졌을 때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기운 것 같은 쪽), 눈썹 화장은 가늘고 길거나 넓은 방식 두 가지가 있다. 하지만 매우 옅게 그리는데 엷은 눈썹이다. 입술은 오고(烏膏, 검은 고약처럼 생긴 연지의 일종) 바르기를 좋아한다. 백거이는 ‘시세장(時世妝), 지금 유행하는 화장’ 에서 '烏膏注脣脣似泥(오고주순순사니, 오고만 입술에 발라 입술이 진흙같구나 )'라고 썼다.


당서(唐書)인 ‘오행지(五行志)’ 역시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원화(元和, 唐 연호 806년~820년) 말년에 기이한 화장이 유행하여 붉은 분은 바르지 않고 오고만 발랐는데 당나라 여성의 유행하는 화장법이었다.' 흉부 노출에 관해서는 중국 고대사회에는 어느 조대에도 감히 당대 여성과 필적할 만한 적이 없다. 당대 여자인형과 벽화는 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녀들은 예법을 무시했다. 전통에 반해 인체미의 대담한 추구를 과감하게 표현했다.


‘구당서’의 기록에 의하면, 당대 여성의 복장은 상의 적삼, 하의 치마, 호복(胡服)과 남장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당의 치마 중 가장 명성이 높은 것은 석류군(石榴裙, 붉은 치마)으로 호복, 즉, 당대의 수입품이다. 당대 문학가 원진(元稹)은 일찍이 '여자들은 오랑캐 부녀자가 되어 오랑캐 복장을 배운다......50년 후 결국 널리 유행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연구자는 당조 통치자 출신이 호족으로 무(武)를 숭상하여 호복이 유행했다고 여긴다. 당조에 왜 남장이 유행했는가 하는 것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당대 여자가 남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태평공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어느 날 태평공주가 무장한 남성 복장을 하고 당 고종의 연회에 참석하자, 고종과 무측천 모두 대소를 금치 못했으며 이때부터 여성의 남장 열조를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당조 사회가 개방적이고 여성 자아의식이 강하며, 여성의 사회참여 활동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여성이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남장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여긴다.


당대 여성들이 대담하게 추구한 유행은 당시 여성이 사회와 가정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반영하며 또한 당대에 남녀평등과 여권보장을 매우 중시했음을 설명한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4341 홍콩, 민주활동가 가족 체포... 국보법 첫 적용
디지털뉴스팀
25-05-08
4340 中 '심해 케이블 절단기' 공개... 글로벌 통신망 안전 ....
디지털뉴스팀
25-04-02
4339 [영상] 中 휴머노이드 로봇, 축제서 관중 공격... 제작....
권민호 기자
25-03-01
4338 홍콩 민주주의 종언?... 유일 야당 해산 착수
디지털뉴스팀
25-02-25
4337 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등장... “사람에 전파 가능”..
디지털뉴스팀
25-02-22
4336 中 체류·여행시 한국산 약품 구입·소지 주의... '마약 ....
이연화 기자
25-02-18
4335 中 인권탄압 악명 재확인... 반체제 인사, 강제 입원·약....
디지털뉴스팀
25-01-25
4334 홍콩, 해외 체류 민주파에 또 현상금... 여권 취소도
디지털뉴스팀
25-01-08
4333 티베트 규모 7.1 강진... 최소 53명 사망
미디어뉴스팀
25-01-07
4332 中, 티베트에 싼샤댐 3배 댐 건설,,, 주변국 피해 우려↑
디지털뉴스팀
25-01-05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6,369,680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