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중국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외교적 무기로 삼고 있다. 자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거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국가에는 유커의 방문을 확대하는 반면, 자국과 맞서거나 갈등이 있는 국가에는 이들의 방문을 막거나 축소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13억 8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다. 이 나라 정부는 1983년부터 자국민의 해외여행을 허용했고, 2004년부터 유커들의 해외여행이 본격화하면서 10년 후인 2014년 연간 1억명의 유커가 세계 각지를 찾고 있다.
유커의 방문은 지역이나 국가 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무비자 제도 등을 통해 유커 유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해외를 찾는 유커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각국의 관광 분야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관광 도시들이 유커에 의존하는 비율이 매우 커졌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추세를 ‘전략적 자산’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외교 대상국에 따라 유커 수를 조절하며 관광산업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국영과 민간 등 모든 기업을 통제한다.
따라서 중국 관광산업을 총괄하는 국가여유국은 민간여행사의 영업 허가권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구두 지시만으로도 유커 모집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에 대한 중국 정부의 여권 발급도 상당히 까다롭다.
필리핀과 러시아는 중국의 ‘유커 정책’으로 수해를 입은 대표적 나라다. 중국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필리핀과 대립하며 바나나, 파인애플, 파파야 등 과일 수입제한 조치를 취해왔지만, 지난해 6월 친중국 성향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한 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자 유커를 대거 보내는 등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러시아도 올 들어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유커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특히 러시아 공산혁명 100주년을 맞아 블라디미르 레닌의 고향 등 공산주의의 발자취를 좇는 '홍색(紅色)관광' 상품을 만들어 유커를 끌어모으고 있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서방의 제재조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는 관광수입으로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있다.
반면 중국은 갈등을 빚고 있는 대만과 한국에 대해서는 ‘유커 방문’을 통제하며, 보복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데 대해 관광제한이라는 보복을 가했다.
이로 인해 올 들어 10월까지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162만4000여명)는 차이 총통 취임 이전(333만5000여명)보다 약 절반으로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지난달 26일부터는 대만과 국교를 맺은 바티칸, 니카라과, 파라과이 등 20개국에 대해서도 자국민의 단체여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여행사에게 벌금까지 부과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3월부터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자국민의 단체관광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한국을 찾는 유커는 지난 9개월간 전년 동기보다 329만4000명 줄었고, 국내 관광·숙박업계는 약 7조5000억원의 매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최근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합의로 지난달 28일부터 베이징과 산둥지역에 한해 일반 여행사들에게 한국행 단체관광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이 같은 관광금지 조치 일부 해제에 생색을 내면서 ‘한국이 사드와 관련해 ’3불(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유커가 한국을 외면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 일부를 해제로 ‘3불 원칙’ 이행을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불과 3주 만에 그 중 일부를 다시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결례수준의 외교 예우’와 한중 정상회담 결과에 비춰볼 때 중국은 앞으로도 각종 외교 문제에서 자국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유커’라는 무기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사진: NEWSIS)
곽제연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