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교수를 정년퇴임한 그는 아내와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 함께 산에 올라 가벼운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베란다에서 꽃과 관엽식물을 손질하거나 책을 읽었다. 아내는 친구와 커피 타임을 즐겼다. 외동딸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반달 전 어느 날 밤, 잠결에 눈을 뜬 그는 침대 매트가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내가 야뇨를 한 것 같았다. 그는 아내를 깨우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아내의 죽음에 많은 친척과 친구는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고 그에게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그들의 진심어린 염려에 노인은 침착한 학자의 풍모로 감사함을 전했다.
노인은 아내가 떠난 후 천천히 자신의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베란다에서 키우던 꽃과 관엽식물을 이웃에게 주었고, 빌린 책은 전부 우편으로 돌려주었다. 그는 법률사무소에 가서 유언장도 만들었다. 노인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달빛이 희미하게 서재를 비추는 보름날 밤, 그는 책상에 앉아 마지막 글을 썼다.
노인의 앞에는 약병이 놓여 있었다. 갑자기 아내의 미소가 눈에 떠올랐다. 병뚜껑을 열려고 손을 뻗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저 편에서, 익숙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딸은 “아빠, 저 지금, 공항에 있어요,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한 순간에 눈을 떴다.
노인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말했다. “자살을 막는 가장 좋은 특효약은 재산이나 학력, 의사의 심리치료가 아니라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김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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