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청현
[SOH]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앞뜰의 벌거벗은 감나무 가지에 참새 몇 마리가 모여 언 연시를 쪼아 먹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한다. 불연 10여 년 전 이맘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두륜산 산내 암자로 한국 차 문화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개창한 일지암에서 명차(明茶)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요행이었다.
일지암(一枝庵) 뒤편 유천(乳泉)의 물맛은 가히 무등선미(無等仙味)라 하겠다. 금상이화(衾上李花)로 눈 덮인 초암(草庵)에서 암주의 배려로 장작을 지피고 하루 밤을 독수공방(獨守空房)으로 보낸 것은 심신상 물외정한(物外情閒)을 느껴본 최상의 추억이 된 듯하다.
중국 당나라 때 습득(拾得)과 더불어 걸출한 선승이었던 한산(寒山)의 오언율시의 말구로 “내 항상 생각하니, 저 뱁새도 한 몸 편히 쉬기는 한 가지에 있구나(常念鷦鷯鳥 상념초료조 安身在一枝 안신재일지)”라는 구절이 전해오고,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도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하나의 가지를 필요로 할 뿐(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 초료소어심림불과일지)”이라는 구절이 있다.
모두 지족(知足)의 삶을 경책(警責)하는 것으로 초의 선사도 같은 뜻에서 일지암(一枝庵)이라는 당호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방장(方丈)’은 승가에서 주지에 대한 존칭어이다. 본래 한 평 정도 되는 방안에 기거한다는 뜻으로 스님들의 검박함을 말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으로 놓고 말하면 당연히 세간의 일체를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거처할 곳이 있으면 족한 것이 아닌가.
다신전(茶神傳)과 동다송((東茶頌)을 통하여 한국 차 문화의 중흥에 크게 이바지 하신 초의선사의 생활공간이었던 일지암 자우산방(紫宇山房)의 측간 마루 벽에 걸린 초의 스님의 자상한 기품의 존영이 오가는 길손에게 잠시 쉬어가라는 무언의 사유정감(思惟情感)을 느끼게 한다.
초의선사는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소치(小癡) 허련(1809∼1892), 그리고 평생의 친구 되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등과 폭넓은 교유(交遊)를 가졌는데, 다산은 ‘음다흥ㆍ음주망(飮茶興ㆍ飮酒亡)’이라는 유훈을 남길 정도로 차의 효능을 예찬하였다.
초의선사의 사상은 선(禪)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즉, 차(茶) 안에 부처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청정(淸淨), 예경(禮敬), 중화(中和), 검덕(儉德), 성적(惺寂)’ 이라는 다도의 이상이 정신건강의 요체요, 물질문명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영혼치유의 대안이 아닌가 싶다.
“고래성현구애차(古來聖賢俱愛茶)ㆍ예로부터 성현들은 차를 좋아했네, 차여군자성무사(茶與君子性無邪)ㆍ차는 군자와 같아 본성이 맑다네.” 동다송에 나오는 구절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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