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삼국연의(三國演義)》를 보면 삼군(三軍)과 맞닥뜨린 제갈량이 사륜거(四輪車)에 앉아 가볍게 학우선(鶴羽扇·학의 깃으로 만든 깃털부채)을 흔들면서 책략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는 내용이 나온다. 손에 부채를 든 제갈량의 이미지는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깃털부채의 유래에는 또 하나의 전설이 전해진다.
도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배우다
제갈량은 어렸을 때 집안이 매우 가난했으며, 8~9살이 될 때까지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의 집 근처 산속에 늙은 도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제걀량의 총명함과 근기(根器·타고난 성품과 기량)를 알아보고는 제갈량의 말 못하는 병을 고쳐주고 천문·지리·음양팔괘와 병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부터 제갈량은 도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에 올라 가르침을 받았다.
어느 날, 제갈량이 산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비를 피하려고 산 중턱의 허름한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한 여인이 그를 방 안으로 맞이했다. 제갈량은 도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7~8년이나 됐지만, 한 번도 산 위에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 후 제갈량은 매번 암자를 찾아갔고, 그 여인은 그를 항상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은 바둑을 두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제갈량은 생각이 어지러워졌으며, 스승의 가르침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부드러운 넝쿨 같은 여색
도인은 그런 제갈량을 눈여겨보더니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는 움직이지 않으며, 배가 흔들리지 않으면 물은 흐려지지 않는다”라고 일러 줬다. 그러고는 뜰 안의 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보아라, 저 나무는 왜 크게 자라지 못하는가?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고 살려 해도 살지도 못한 채.”
천부적으로 총명한 제갈량은 나무에 칡넝쿨이 얽힌 것을 보고 금새 알아차리고는 “칡넝쿨이 옭아매고 있기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깨달은 제갈량을 보고 스승은 ‘여색은 부드러운 넝쿨 같아 일단 얽히게 되면 자라기 어렵다’고 일깨워 주었다.
이어서 도인은 제갈량에게 그 여자는 원래 천궁(天宫)의 학이었으나, 서왕모(西王母·선녀들을 지배하는 여제)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인간 세상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도인은 이어 그 학은 그렇게 인간 세상으로 내쳐졌지만, 여전히 덕을 쌓을 생각은 하지 않고 향락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녀의 미모에 빠지면, 너는 어리석어지고 너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깃털을 거울로 삼다
도인은 제갈량에게 용머리 지팡이를 건네며 말했다. “그 학이 밤에 천하(天河)에서 목욕을 하는 틈을 타 그 학의 옷을 불태우면 더는 미녀로 둔갑해 사람을 속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학은 분명 화가 나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때 이 지팡이로 막으면 화를 면할 수 있다.”
제갈량은 스승이 당부한 대로 밤이 되자 암자에 들어가 학의 옷을 태워버렸다. 암자 안의 불길을 본 학이 즉시 돌아와 제갈량의 눈을 쪼려 했다. 제갈량은 잽싸게 지팡이를 들어 학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학을 잡아 쥐려고 하자 학은 온 힘을 다해 벗어나 하늘로 날아올랐고, 제갈량은 학의 꼬리털만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자신을 일깨우고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제갈량은 그 꼬리털로 부채를 만들어 항상 옆에 두고 거울로 삼았다.
맑은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
예부터 부채는 문무(文武) 양편에서 모두 사용했다. 문인은 부채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무사는 방어나 공격용 무기로 부채를 사용했다. 또한, 연인들은 부채를 사랑의 증표로 여겼다.
동진(東晉) 시기, 원굉(袁宏)이 지방 관리로 부임할 때 당대 최고의 시인인 사안(謝安)이 어진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부채를 선물했다. 이때부터 부채에는 ‘어진 정치’라는 뜻도 담겼다.
당대에 이르러 당태종(唐太宗)은 ‘창포의 맑은 향을 취해 액을 물리친다’는 뜻을 담은 창포부채를 대신들에게 하사하면서 "맑은 바람을 일으키고 미덕을 높이라"고 장려했다.
이렇듯 부채는 5000년 중국 역사 무대에서 하나의 도구로서 여러 가지 멋진 의미를 가지게 됐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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