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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中文化] 달마가 갈대로 강을 건넌 이유

국제뉴스팀  |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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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불교에는 '제자가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를 찾는다'는 설이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갈대 잎으로 강을 건너고 천산만수를 지나 의발(衣钵)을 전할 사람을 찾아간다는 득도한 고승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바로 달마조사다.


‘남조 사백팔십 사찰, 안개비 속 누각 몇이던가’라는 시(诗)의 한 구절은 당시 남북조 시기 불교가 매우 성행하던 시기의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남인도 고승 달마는 이 시기에 스승의 부탁으로 남해에 찾아갔다.


당시 남북조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남조 양무제(梁武帝) 샤오옌(萧衍) 치하의 장강 일대는 기상(气象)이 남달랐으며, 양무제의 경승예불(敬僧礼佛)에 평판이 자자했던 곳으로 이곳에는 곳곳마다 크고 작은 절이 있어 새벽종, 북소리가 이 땅을 감싸 마치 난세와는 단절된 정토를 방불케 했다.


앞서 달마의 스승은 입적 전 달마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내가 입적한 후 하고 67년이 지나면 인도의 불법(佛法)은 파괴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동토로 가 법을 전하라. 그곳의 북쪽에는 대단한 기상을 지닌 대덕지사(大德之士)가 많아 불법은 그곳에서 흥성할 것이다.”


이리하여 달마는 불법 전파의 사명을 갖고 광저우(广州)에 도착했다. 달마는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황제 스님’으로 불리는 양무제를 만나 그가 과연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의발(衣钵) 계승자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양무제는 석가모니의 제28대 제자인 달마가 인도에서 와서 자신을 알현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여러 해 절을 짓고 부처 수련에 힘쓰니,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달마조사가 직접 찾아왔구나. 그는 나의 덕행을 매우 칭송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불법을 더욱 발양시키리라”


양무제는 달마를 맞이하기 위해 깨끗한 물로 거리를 청소하고, 황토로 도로를 정비하면서 달마를 성대하게 맞이했다. 그는 달마가 대신들 앞에서 자신을 칭찬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달마는 두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지던 차에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风铃)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에 양무제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바람 불어와 풍경이 흔들리네”라고 말하자, 달마는 “풍경(铃)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며, 양무제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이윽고 두 사람은 불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공덕(功德)’에 대해 논하게 되자 양무제는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짐은 평생 동안 절을 많이 짓고, 보시를 많이 했으며, 경문을 무수히 베껴 불법을 널리 전했는데 저의 공덕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달마는 양무제를 처다보지도 않고 “공덕이 없다”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달마의 대답에 양무제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이 인도의 고승은 말을 참 할 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달마에게 공덕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달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한 일들은 유위(有爲)적인 것으로, 단지 형식만 갖춘 내세울 것이 없는 작은 덕일 뿐입니다. 진실한 공덕은 미묘하고 원용한 불법의 지혜로서, 자신을 잊고 적막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덕은 세속적인 유위(有爲)에 의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에 당황한 양무제는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 성인이 구하는 최고의 진리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달마는 “본래 하나의 성질로서, 사실은 성자도 현자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의미는 중생은 평등하고 사람마다 모두 불성이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보는 범인(凡人)과 성인(圣人)은 불가에서는 평등하며, 다만 세속의 명‧리‧정(名利情)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양무제는 달마에게 “그러면 지금 내 앞에서 나와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달마는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양무제는 달마의 대답에 화가 치밀었고 달마가 인도에서 온 고승이 맞는지를 의심했다.


사실 달마의 대답은 내력이 있는 말이다. 달마는 출가 전 남인도의 “샹즈국(香至國)” 왕세자이었을 당시 “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누구이며, 태어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달마는 자신의 이 의문을 풀고자 출가를 결심했고, 법호는 달마(達馬)였다. 이치에 따르면 이때의 달마는 원만한 경지에 오르지 못하여, 자신의 최종적인 생명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무제의 질문에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달마의 이런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양무제는 달마와의 대화에 답답함과 회의를 느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자리를 떠났다.


달마는 양무제와의 만남을 통해 ‘일심으로 수불한다고 세인들에게 알려진 황제 역시 형식만 추구할 뿐 진정한 수련자가 아니며, 더욱이 자신의 의발 계승자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도성을 나온 달마는 스승이 임종 전 당부한 대로 북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한편, 양무제는 자신이 겪은 바를 신변의 국사에게 말해주었다. 국사는 수련의 소양을 갖춘 승려였기 때문에 달마가 어디로 갔는지를 다급히 물었다.


양무제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멀리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사는 탄식하며 양무제에게 “달마 법사는 불법의 진수를 전수받은 고승으로, 이번 행보는 반드시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양무제는 자신이 고승을 홀대한 것을 후회하며 기병들을 급히 파견해 달마를 찾아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달마는 황궁을 나와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북쪽을 향해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물살이 거센 큰 강을 만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됐는데, 당시 양무제의 기병들이 자신을 쫓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달마는 자신의 여정이 지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가의 갈대를 꺾어 강물에 던지고는 그 위에 올라 거센 물살을 가르며 강 건너편으로 질주해 갔다. 이 모습을 본 추격병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


소림사에서 의발을 전하다


오악 숭산의 샤오스산(少室山)은 산들이 우뚝 솟아 있고, 밀림이 우거져 있어 이로부터 소림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달마는 소림사의 청정함이 끌려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소림사의 주지는 인도 고승의 방문을 환영하며 급히 여러 승단(僧团)을 거느리고 열을 지어 맞이했다. 주방에서는 솥을 걸고 좋은 음식을 차리고 선방을 청소하도록 하였다.


주지는 달마에게 설법 강연을 부탁했지만 달마는 강단 위에 앉은 지 꼬박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갑자기 일어나 자리를 떠나버렸다. 승려들은 그의 기이한 행동에 매우 당황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달마의 행동은 ‘수련의 근본은 조용히 내심을 향해 자신을 닦는 것이지 요란한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점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당시 승려 중에는 이것을 깨닫는 이가 없었다.


달마는 자신의 의발을 전해줄 사람이 소림사에 있는지 혹은 이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건지 혹은 의발을 전해 줄 사람을 찾는데 자신의 수련이 부족하지는 않는지를 생각했다. 이에 그는 소림사 뒷산의 한 동굴에 가부좌하고 입정했다.


달마가 좌선한 지 9년이 되자 오랜 세월로 몸에는 두툼한 먼지가 쌓였고 풀이 자라났으며, 심지어 그림자조차도 바위에 새겨졌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달마를 찾아와 동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날 눈이 많이 내렸는데 갈수록 눈이 많이 쌓여 다음날 아침 동굴 밖의 그 승려를 보니 반쯤 눈에 파묻은 채 상반신만 눈 속에 곳곳이 서서 공경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달마는 그 스님에게 “무엇을 바라기에 눈보라 속에서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제자에게 소원이 하나 있으니 스승님께서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불법을 널리 전파하고 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달마는 "불법은 무상(無上)의 현묘한 대법(大法)인데 어찌 쉽게 제자를 받아 전수하겠는가?“라며, ”하늘에서 내리는 흰 눈이 붉게 변하면 모를까“라고 말했다.


달마의 말에 승려는 잠시 생각하더니 품에서 칼을 꺼내 자신을 왼팔을 잘랐고, 주변의 눈은 뿜어져 나온 선혈로 붉게 물들었다.


승려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절단된 팔을 달마 앞에 공손하게 내려놓아 자신의 수련의 정성과 결의를 보여주었다. 결국 달마는 이 스님의 경건함과 용감함에 감동되어 그를 제자로 받기로 허락하고 후이커(慧可)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선종(禅宗)의 제 2조로, 두 사람은 사제의 연을 이루었다.


이들의 고사(故事)는 후에 “갈대로 강을 건너 어디로 갈까, 9년 면벽하며 사람을 기다리네”라는 한 폭의 대련으로 정리됐다.


사료에 의하면 달마는 소림사에서 후이커(慧可)에게 의발을 전한 뒤 자신은 슝얼산(熊耳山) 아래 정림사(定林寺)에서 5년간 법을 전하였으며, 양무제 대동 2년(서기 536년) 12월에 원적하였으니 그의 나이 150세였다는 기록이 있다.


양무제 샤오옌(萧衍)은 달마의 원적에 ‘남조 보리 달마대사 칭송(서문과 함께)’라는 비문을 친히 써서 달마대사를 애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년 뒤 “서역에서 달마를 만났는데 손에 지팡이를 들고 신발 한 짝을 메고 서쪽으로 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양무제는 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달마의 묘를 파헤쳤는데, 달마의 관 안에는 신발이 한 짝만 있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달마가 중국에서 자신의 의발을 전할 사람을 찾는 사명을 완수하고서, 공성원만(功成圆满)했다고 더욱 믿게 되었다.



국제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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