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사람은 어려서는 불완전하고 의존적이지만 일정한 시기가 되면 독립적인 존재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를 가진다. 온전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성년례를 통해서다.
제임스 프레이져의 「황금의 가지」(The Golden Bough)에 따르면, 보편적으로 여자들은 초경 무렵이 되면 초막에 들어가 태양을 안 보거나, 또는 마을 밖 별도의 구역에서 따로 지냈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어두운 동굴에서 지냈듯이 말이다.
반면 남자들은 발목에 긴 넝쿨을 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뜨겁게 달군 돌길을 맨발로 뛰어 건넜다. 심지어 악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에서는 소년의 몸에 악어 비늘처럼 생채기를 낸 후 풀물을 들였다. 악어 문신을 해서 그 후손임을 선포했던 것이다.
이처럼 성년례를 치르는 여자들은 정신적 시련을, 남자들은 육체적 시련을 겪었다. 이러한 통과의례에 수반되는 시련을 이겨냈을 때, 어린아이는 그 집단에서 새롭게 태어나 성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성년례에 수반되는 시련은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서도 확인된다. 마한(馬韓)의 젊은이들은 등가죽에 끈을 꿰어 큰 나무에 붙들어 매고 소리 지르며 잡아당겨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어린아이는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후에 비로소 평생 마주칠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닌 성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성년례는 남자에게 갓을 씌워주는 관례(冠禮), 여자에게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筓禮)가 있었다. 남자는 15~20세에 《효경(孝經)》이나 《논어(論語)》를 읽어 예의를 안 뒤에 관례를 치르게 했다.
우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친구 중에서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빈객(賓客)을 초대했다. 빈객은 남자의 머리를 빗겨 올려 상투를 틀고 모자를 씌우고 옷을 갈아입히는 가례(加禮), 술로써 예를 행하는 초례(醮禮), 새로운 이름인 자를 주는 자관자례(字冠者禮)를 주관했다.
반면 15살 된 여자는 양쪽으로 땋았던 머리를 풀어 한데 모아 쪽을 찌어 비녀를 꽂았다. 계례는 어머니가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부인을 청해 의례를 주관하게 했다. 다소 까다롭고 엄중한 의례를 마친 이들은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에 고한 다음, 부모와 친지와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성년례를 주관하는 빈객이 천주교의 세례식 때 세우는 대부(代父)·대모(代母)와 흡사하며, 의식을 행한 후 새로운 이름인 자를 짓는 것이 세례명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성년례를 치른 이들이 철부지에서 성인으로 거듭나 자존감과 책임감을 갖고 살고자 하는 것, 그리고 세례식을 치른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복음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같은 이치인 것이다.
오늘날 매년 5월 세 번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고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몇몇 뜻있는 단체나 기관을 제외하면,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성년례를 시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년례에 수반됐던 시련과 재생의 의미도 사라져 버렸다.
가족 친지와 마을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를 축하해주고, 성인이 된 남녀는 그간 키워주고 보살펴주었던 부모형제에게 감사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다.
성인이 된 이들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독립적 인격체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슴에 품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련을 이기고 거듭날 기회가 없어졌으니 어제의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고 밝은 내일을 꿈꿀 일도 그만큼 적어진 것이 아닐까.
성인이 됐지만 부모형제에게 기대어 철부지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양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일일까.
카톨릭신문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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