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4.04(금)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SOH 산책] 고소하고 달콤한 호떡의 기원

디지털뉴스팀  |  2024-01-14
인쇄하기-새창

[SOH] 고소하고 달콤한 호떡은 인기있는 간식 메뉴 중 하나다. 특히 추운 계절, 속이 출출할 때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호떡집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선 호떡을 주로 간식으로 먹지만 중국에서는 식사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호떡은  중국어로 '후삥(胡兵)' 혹은 '사오삥 (燒餠)'이다.

중국에선 여러 종류의 호떡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흑설탕이나 견과류 등을 소로 넣어 기름에 튀기듯 지져낸다.

중국의 호떡은 역사 속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양귀비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자치통감』 등 역대 역사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만 골라 엮은 『이십사사(二十四史) 통속연의』에 따르면 서기 756년 안록산의 난으로 피난길에 오른 현종과 양귀비가 배고파하자 간신 양국충이 서둘러 시장에서 구해 온 음식이 호떡이다.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양귀비의 마지막 식사가 비참했다 싶겠지만, 당시 호떡은 황제 일행이 먹기에 전혀 손색없는 고급 음식이었다.

■ 호떡의 역사

흔히 호떡의 원조를 중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한자 이름처럼 호떡(胡餠)은 서역에 사는 호인(胡人)들의 떡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진 음식이다. 그러니까 현재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난(naan)이라는 빵이 원조다.

호떡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2세기 한무제 무렵이다. 명나라 말 책 야향선』에는 '흉노족 왕자 김일제(金日磾)가 호떡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일제는 한무제가 흉노를 정벌하고 서역과의 교통로를 개척할 때 한나라에 귀화한 인물이다. 흉노 왕자가 전했으니 당시에는 서역에서도 상류층의 음식이었다.

실제 로김일제가 전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호떡이 한나라 때 전해진 것은 분명하다. 후한 때 한자풀이 사전인 석명(釋名)에도 호떡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000년 전 한나라 때 서역과의 실크로드(비단길)가 열리면서 서역의 밀이 대량으로 중국으로 전해질 때 밀가루 음식인 호떡 역시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실크로드 개척 이후 중국 상류중에는 긴 세월 동안 서역 바람(胡風)이 붙었는데, 서역 음식인 호떡의 유행도 그중 하나다.

한나라 말의 영제는 무능하고 방탕한 황제였다. 내시인 환관들에 휘둘려 정치를 하다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유비, 조조, 손권의 삼국시대가 시작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영제는 호떡 맛에 푹 빠져 매일 호떡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에는 '영제가 서역 풍속을 좋아해 서역의 옷을 입고, 서역 음식을 먹으며 서역 음악과 춤에 빠져 지내니 황실 친척과 강안 귀인들이 모두 황제의 모습을 따랐다'고 나온다.

중국에 분 호떡 열풍은 한나라를 거쳐 삼국시대와 위진남북조를 지나 당나라로 계속 이어졌다. 

『구당서(舊唐書)에도 현종 때 궁궐에서는 서역의 음악을 연주했고 귀인 대접할 때 서역 음식을 차렸으며, 귀족과 부녀자를 모두 서역 옷을 입는다고 했다. 

현종과 양귀비도 호떡을 먹었지만 한 세기 후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이들의 슬픈 사람을 노래한 당나라 시민 백거이 역시 호떡을 좋아했다.

백거이는 ‘친구 양만주에게 호떡을 보낸다((寄胡餠與楊萬州)’라는 시도 썼다.

“참깨 호떡은 장안(長安) 풍으로 만든 것 / 화덕에서 갓 구워 / 바삭하게 익은 맛이 향기롭다/ 군침 흘리는 친구에게 보내니/ 고향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지 맛보시게“

장안 풍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기름을 칠한 후 참깨를 박아 화덕에서 바삭하게 굽는 방식이었다는데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세기 일본 승러 엔닌이 9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며 쓴 입당구법순했기에도 입춘(立春)을 맞아 황제가 절에다 호떡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떡으로 대표되는 서역 문화, 호풍이 이렇게 널리 퍼졌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서역의 문명은 낙후된 유목문화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크로드가 열린 이후 당나라 때까지 서역문화는 중국보다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1000년 세월 동안 공원에 서역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 호떡도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보통 호떡을 임오란 이후 화교가 한반도에 전했다고 하지만 실은 훨씬 이전에 들어왔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1578 [아하! 그렇구나] 차이나타운(상)
디지털뉴스팀
24-01-24
1577 [미스터리 TV] 전세계 지도에서 급하게 삭제된 ‘섬’
미디어뉴스팀
24-01-21
1576 [SOH 산책] '나(我)'라는 인식에 대하여
문화부
24-01-19
1575 [미스터리 TV] "온 우주는 신과 자연의 정령들로 가득"
미디어뉴스팀
24-01-16
1574 [SOH 산책] 고소하고 달콤한 호떡의 기원
디지털뉴스팀
24-01-14
1573 [SOH 산책] 조상을 기리는 의례
문화부
24-01-12
1572 [SOH 이슈] 미국을 무너뜨리는 펜타닐
디지털뉴스팀
24-01-11
1571 [SOH Info] 허구로 확인된 진화론... 인류의 역사는 수....
문화부
24-01-10
1570 [SOH 산책]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디지털뉴스팀
24-01-06
1569 [SOH 산책] 육도윤회(六道輪回)
디지털뉴스팀
24-01-05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4,634,321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