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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한신(韓信) ‘한나라의 천하를 평정하다’ (5)

편집부  |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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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SOH] 전국시대 말기 여러 제후들이 할거해 분열되었던 국면이 진나라에 의해 통일됐다. 진시황은 재위 37년 순행을 나갔다 사구(沙丘)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진시황은 유조(遺詔)에서 장자인 부소(扶蘇)를 불러 장례를 주관케 하고 도성에 들어와 제위에 오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서를 관리하던 조고(趙高)가 승상 이사(李斯)와 결탁해 거짓 조서로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어린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진이세(秦二世)다.


진이세가 즉위 후 진시황의 옛 신하들과 황실의 종친들을 멋대로 살해하자 진시황이 심혈을 기울여 건립한 제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이세 원년(기원전 210년)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900명의 수졸(戍卒 변방에서 수자리 하는 군사)을 인도해 가다 대택향(大澤鄉)에서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斬木爲兵)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으며(揭竿爲旗)” 진이세의 통치에 도전했다.


그들은 진(陳) 땅에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초(楚)’ 또는 ‘장초(張楚)’라고 했다. 이를 기회로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앞다퉈 자신의 역량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군웅이 할거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마치 여러 제후들이 각축하던 전국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5. 지략으로 조와 연을 취하다


한신이 위나라를 멸망시켜 한나라 군 배후의 우환을 뿌리째 제거하자 황하 북쪽의 대나라, 조나라, 연나라, 제나라 등 제후국들이 연합해 한나라에 저항했다. 한나라 군은 마침 전세가 불리해져 형양을 두 차례나 지키지 못했다. 간고한 대치는 유방에게 형양을 포기할 생각마저 갖게 했다.


한신은 객관적으로 형세를 분석한 후 스스로 3만 병력을 이끌고 북상해 연나라, 조나라, 대나라, 제나라를 공격해 이들과 초나라 사이의 식량 운반통로를 끊겠다고 했다. 만약 이들 제후들이 항복하게 되면 한나라는 양쪽에서 초나라를 협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중국 전쟁 사상 최초로 정면적인 지구전과 측면 공격을 결합한 전략이었다. 이 뛰어난 전략에 대해 유방은 일시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반대할 이유도 없어 한신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는 위나라를 하동군(河東郡)에 편입하는 한편 장이를 한신의 조수로 파견해 행동을 감시하게 했다.


한고조 2년 윤9월 한신은 병력을 이끌고 북상했다. 그가 공격할 첫 번째 목표는 진여가 왕으로 있는 대(代)나라 였다. 1년 전 유방이 조나라에 병력을 파견해 항우를 공격하라고 했을 때 진여는 장이를 죽이는 조건으로 출병하겠다고 제안했다. 유방은 장이와 외모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 대신 죽인 후 진여를 속여 출전하게 했다. 나중에 유방에게 속은 것을 안 진여는 곧 유방을 배반했다. 당시 대나라 왕 진여는 조나라의 상국(相國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정을 돕고 있었다. 대신 대나라 정사는 상국인 하열(夏說)이 대신했다. 대나라는 군사력이 약해 한신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신은 먼 거리를 이동해 대나라 군을 직접 공격했고 하열을 포로로 잡고 대나라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조나라와 대나라는 사실상 하나였고 진짜 실력은 조나라에 있었다. 때문에 한신의 입장에서 완전히 승리하려면 반드시 조나라를 멸망시켜야 했다. 바로 이때 형양에서 곤경에 처해 있던 유방이 또 사람을 보내 한신의 군대를 접수해 형양 전장을 보충하게 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포로들만 데려간 게 아니라 대장 조참과 그의 부대까지 형양으로 불러들였다.


갑작스런 병력축소에도 불구하고 한신은 중도에 공격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현지에서 군대를 조달해 계속해서 조나라를 공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방도 이 제안까지 거절하기는 어려워 약간의 병력을 한신에게 주었다. 그러나 한신이 군대를 새로 조직했을 때는 이미 가장 좋은 전투기회를 잃어버렸고 조나라 군은 이미 방어병력을 배치하고 진영을 튼튼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조나라는 지형적으로 수비하기는 쉽지만 공격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높고 험준한 태항산맥(太行山脈)이 천연의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어 조나라로 진입하는 유일한 길은 태항산 8대 애구(隘口 좁은 입구)의 하나인 정형구(井陘口)였다. 이곳은 큰 협곡으로 길 양쪽에 험준한 산을 끼고 있어 길이 협소했다. 수레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가거나 기병이 대열을 지어 갈 수조차 없었다.


만약 이 협곡을 통과하려면 군대가 반드시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앞과 뒤가 서로 도와줄 수 없었다. 만약 조나라에서 반대쪽 좁은 출구에 약간의 병력만 배치해 수비한다면 외적이 조나라를 침입하기란 아주 어려웠다. 아울러 정형구는 출구에 또 급류가 흘러 만약 조나라에 진입한 후 정형구를 통해 퇴각하기도 아주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여는 한신의 병력을 단번에 일망타진하기 위해 애구를 통제할 병력을 파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구 동쪽의 비교적 넓은 땅에 20만 대군을 배치했다. 즉 한신의 군대가 정형구를 다 빠져나오면 그때 절대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이용해 한나라 군을 섬멸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계획이 한 사람의 고수에게 문제점이 간파당했다. 그는 바로 진여 수하에 있던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 전국시대 조나라의 재상이자 명장이었던 이목의 손자)였다.


이좌거는 한신의 군대가 줄곧 승세를 탔기 때문에 그 예봉을 꺾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반면 “천리 먼 곳에서 군량을 보내려면 수송이 어려워 병사들이 주린 빛이 돌 것이고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야만 밥을 지을 수 있다면 배불리 먹을 수 없습니다. 한나라 군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형구는 통로가 좁아 군량을 뒤에서 공급해야만 합니다. 만약 미리 병력을 배치해 좁은 길에서 군량미 수송을 차단한 후 한나라 군이 정형을 다 통과하길 기다렸다가 다시 병력을 파견해 입구를 막아버리면 퇴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즉 한나라 군은 조나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지도 못할 진퇴양란의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열흘도 되지 않아 한나라 군은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사기‧회음후열전》)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진여는 유자(儒者)라서 “정의로운 군대는 속임수나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는다(義兵不用,詐謀奇計)”는 말로 이좌거의 건의를 묵살했다.


첩자를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은 한신은 속으로 아주 기뻐하면서 곧장 행동에 나섰다. 한밤에 2천의 경무장한 한나라 기병들에게 붉은 깃발을 들고 샛길로 조나라 진영 근처에 숨어 있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에게 출발하기 전에 식사를 나눠주면서 오늘 조나라 군사를 무찌른 뒤 다 같이 모여서 아침밥을 실컷 먹자고 명령했다.


대장군의 이 명령을 들은 병사들은 망연자실했다. 당시 한나라 군은 겨우 3만에 불과한데 어떻게 20만이 넘는 조나라 대군을 무찌른단 말인가? 게다가 적을 무찌른 후 다시 아침을 먹자고 하니 믿을 수 없다면서 대장군이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한신은 여러 장수들이 반신반의하는 눈빛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1만의 병력을 지휘해 먼저 정형 어귀로 나가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했다. 그는 진여의 계략이 한나라 군을 일거에 섬멸하려는 것이라 한나라 군이 전부 나타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간파했다. 상황은 과연 한신의 짐작대로였고 일만의 병력은 순조롭게 자리를 잡았다.


날이 밝은 후 한신은 대장 깃발과 진격의 북을 울리며 정형 어귀로 나가 강을 등지고 배수진을 쳤다. 진여는 한나라 군의 병력이 적은 데다 자신들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우세한 입지에 있는 것을 보고 정예부대를 이끌고 격렬하게 공격해왔다. 양군이 격렬하게 싸우던 도중 한신이 패배를 가장하고 북과 깃발마저 버리면서 강기슭의 진지로 달아났다. 이를 본 진여는 승기를 잡았다고 여겨 곧장 전군에 출격명령을 내리고 한신을 생포하라고 했다. 이때 미리 조나라 진영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2천명의 한나라 병사들이 조나라 성벽 안으로 들어가 조나라 기를 뽑고 전부 한나라 군의 붉은 깃발로 바꿔 꽂았다.


이때 한신은 배수진을 친 일만 군사들과 함께 추격해 온 조나라 군대와 싸웠다.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한나라 군사들은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맹렬히 싸웠다. 쌍방이 반나절을 격렬히 싸웠음에도 여전히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나라 군은 오래 싸워도 승산이 없자 병력을 물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군영에 나부끼는 깃발은 전부 한나라군의 깃발이었다. 조나라 군사들은 한나라 군이 이미 자기 군영을 차지했다고 생각하자 순식간에 군심이 어지러워졌고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때 강가로 물러났던 한나라의 주력부대가 승기를 타고 반격에 나서면서 2천의 병력과 협공하자 조나라 군이 대패했다. 이 싸움에서 진여는 전사했고 조왕 헐과 이좌거는 포로로 잡혔다. 이로써 조나라 땅은 한나라 군의 차지가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서에 따르면 ‘산과 언덕은 오른쪽으로 등지고 물과 못은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당연히 산이나 언덕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두라는 것인데 장군께선 반대로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한신이 웃으며 대답했다. “병서에 이르길 ‘사지에 빠뜨린 뒤에야 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후에야 생존할 수 있다(陷之死地而後生,置之亡地而後存)’는 말이 있다. 이번 병사들은 새로 급조한 신병들이라 반드시 먼저 사지에 빠뜨리게 한 후에야 저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다 달아나서 부대를 이루지도 못하고 궤멸되었을 것이다.” 이 말에 모두들 비로소 한신이 정공과 기습공격을 함께 쓰는(奇正並用) 신묘한 용병술을 지닌 고수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배수일전(背水一戰)’이란 고사성어가 나온 유래다.


한편 한신은 광무군 이좌거의 식견에 탄복해 군영에 묶여 온 이좌거를 보자 직접 포승을 풀어주며 사죄를 구했다. 그리고는 마치 학생이 스승을 대하듯이 그를 동쪽에 앉게 하고 자신은 서쪽에 앉아 연나라와 제나라를 토벌할 책략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이좌거는 겸손하게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존속을 말할 수 없다(敗軍之將不可以言勇 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고 했습니다. 지금 저는 싸움에 지고 나라를 망하게 한 포로에 불과한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당신과 나라의 큰일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사양했다.


그러자 한신이 말했다.


“춘추시기의 백리해(百里奚)는 원래 우(虞)나라에서 관리로 있었는데 나중에 우나라가 멸망한 후 진목공(秦穆公)이 양가죽 5장과 바꿔 데려온 후 진나라의 대부로 삼았습니다. 그는 진목공이 여러 제후들을 제패하는 웅대한 계획을 실현하는데 일조했습니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다가 진나라에 와서야 재능 있는 사람이 된 게 아니며, 그가 우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다가 진나라에 와서야 진심을 더 기울인 것도 아닙니다. 우나라 군주는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진목공은 그의 좋은 책략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여가 선생의 계책에 따랐더라면 계단 아래에 묶인 포로는 바로 나 한신이었을 겁니다. 바로 그가 당신의 계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제게 패한 것이고 비로소 당신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이좌거는 한신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심정을 깊이 이해해주자 큰 감동을 받았고 당면한 정세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해주었다.


“제가 듣기에 ‘지혜로운 사람도 천에 한 번은 반드시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에 한 번은 반드시 얻음이 있다.(智者千慮,必有一失;愚者千慮,必有一得)’고 합니다. 성안군 진여는 오랫동안 전투를 치러왔고 또 이번에 완벽한 대책이 있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군대가 패배하고 목숨도 잃었습니다. 장군께서는 위왕 표를 포로로 잡고 대나라 재상 하열을 생포했으며 단 한 번 전투로 정형을 내려와 하루아침에 조나라의 20만 정예를 무너뜨려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위세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군의 우세한 점입니다. 하지만 장군의 사졸들은 이미 지쳐서 연속으로 작전을 펼치기 어려우니 이는 장군의 약점입니다. 만약 지친 사졸들을 몰아 갑자기 수비가 튼튼한 연나라를 공격하신다면 속전속결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시일을 끌고도 승리할 수 없다면 반드시 사기가 꺾일 것이며 군량미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연약한 연나라마저 공략하지 못한다면 연나라보다 강력한 제나라는 더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싸움을 멈추고 쉬면서 먼저 조나라를 어루만지시고 군사들을 잘 먹여 조나라를 안정시킨 이후 다시 군사를 이끌고 북상해 연나라로 향하시는 겁니다. 대군이 국경에 도착할 즈음 말 잘하는 변사를 보내 항복을 권하게 하고 이해관계를 분명히 밝히되 장군의 혁혁한 명성을 알리신다면 연나라는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 후에 다시 제나라를 설득한다면 제나라 역시 반드시 바람에 휩쓸리 듯 복종할 것입니다.”


한신은 그의 말을 듣고 좋은 생각이라며 크게 감탄하고 곧장 연왕에게 주는 편지를 써서 연나라에 사자를 파견해 항복을 권고했다. 한신의 위명에 놀란 연나라 왕은 정말로 항복을 받아들여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로 귀부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척서항연(尺書降燕 편지로 연나라를 항복하게 한다는 의미)이란 고사성어가 되었다. / (계속) 大紀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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