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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한신(韓信) ‘한나라의 천하를 평정하다’ (8)

편집부  |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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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SOH] 전국시대 말기 여러 제후들이 할거해 분열되었던 국면이 진나라에 의해 통일됐다. 진시황은 재위 37년 순행을 나갔다 사구(沙丘)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진시황은 유조(遺詔)에서 장자인 부소(扶蘇)를 불러 장례를 주관케 하고 도성에 들어와 제위에 오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서를 관리하던 조고(趙高)가 승상 이사(李斯)와 결탁해 거짓 조서로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어린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진이세(秦二世)다.


진이세가 즉위 후 진시황의 옛 신하들과 황실의 종친들을 멋대로 살해하자 진시황이 심혈을 기울여 건립한 제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이세 원년(기원전 210년)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900명의 수졸(戍卒 변방에서 수자리 하는 군사)을 인도해 가다 대택향(大澤鄉)에서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斬木爲兵)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으며(揭竿爲旗)” 진이세의 통치에 도전했다.


그들은 진(陳) 땅에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초(楚)’ 또는 ‘장초(張楚)’라고 했다. 이를 기회로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앞다퉈 자신의 역량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군웅이 할거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마치 여러 제후들이 각축하던 전국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8. 유수(濰水)전투


한신이 제나라를 공략할 때 항우는 마침 두 번째로 동쪽으로 군사를 보내 팽월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는 보름 만에 17개 성을 회복하고 양나라 땅을 평정했다. 한신에게 패해 쫓기던 제왕 전광은 어쩔 수 없이 항우에게 도움을 청했다. 항우는 한참을 고민 끝에 대장 용저에게 20만 병력을 주어 제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용저는 신속하게 움직였고 10월에 제왕 전광의 군사와 합쳤다. 당시 형세는 한신에게 아주 불리했다. 서남쪽에는 전횡, 동남쪽에는 전광의 군대가 있었고 동북에는 전기(田既)의 군대가 있어 서로 협공하는 형세였다. 용저는 항우 휘하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로 일찍이 전영과 연합해 동아(東阿)에서 진(秦)나라 군대를 대파한 적이 있다. 명장 영포조차 그에게 패한 바 있다. 제초(齊楚) 연합군은 20만이 넘는데다 용저 휘하의 군사는 대부분 누번(樓煩 중국 고대의 유목민족)의 기병으로 심지어 정예였다. 반면 한신의 군사는 10만이 채 못되었고 또 전횡과 전기 등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역하와 임치 등에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다.


양군이 전투를 벌이기 전에 용저의 수하에 있던 한 빈객이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군은 멀리서 왔으니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어서 그 기세를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 제나라와 초나라는 자기 땅에서 작전하기 때문에 사병들이 패하면 도주하기 쉽습니다. 차라리 성벽을 높이 쌓아 지키면서 제나라 왕이 심복 대신들을 파견해 이미 잃어버린 제나라 성읍들을 돌아오게 하는 게 낫습니다. 이들 성읍에서 자기 임금이 아직 건재하고 초나라 군이 지원하러 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반드시 한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한나라 군은 2천리나 떨어진 객지에 나와 있으니 만약 제나라의 성읍이 전부 배반한다면 반드시 식량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싸우지 않고도 항복할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한신의 군대를 깨뜨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용저는 이 의견을 채택하지 않았다. “한신은 전에 표모(漂母 빨래하는 아낙)에게 밥이나 얻어먹고 시장에서 남의 가랑이 밑을 지나간 위인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지금 제나라를 구원하러 왔는데 싸우지 않고 한나라 군이 스스로 항복하길 기다린다면 내게 무슨 공이 있겠는가? 지금 싸워서 이긴다면 제나라의 절반이 내게 귀속할 것이다.” 이에 그는 한신과 정면대결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용저는 만약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제나라 군의 힘이 크게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자신이 한신을 물리친다 해도 제나라를 새로 장악하는 것은 전 씨일 뿐 자신이나 초나라에 유리할 게 없다. 제나라와 초나라는 원래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으로 이번에 지난 은원(恩怨)을 내려놓고 협력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형세 때문이다. 일단 이 위기를 넘기면 협력관계가 곧 와해될 것이다. 그렇다면 용저의 이번 공격도 단지 제나라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용저는 한신과 정면대결 하기로 결정했다.


한고조 3년(기원전 202년) 11월(당시에는 10월이 한해의 첫 달이었다.) 제초 양국 군대가 유수(濰水)를 사이에 두고 진을 펼쳤다. 전광과 용저 연합군은 유수의 동쪽에 있었고 한신은 서쪽에 있었다. 우세한 병력에다 유수의 험한 지세가 더해지자 용저는 필승의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한신은 백성들을 설득해 밤새 1만여 개의 주머니를 만들어 모래를 가득 채운 후 유수 상류를 막아 일종의 물 창고를 만들게 했다. 그는 병력의 절반을 강가에 매복시킨 후 직접 나머지 부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가 용저를 습격했다. 용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비웃었다. ‘한신은 과연 헛된 이름이었구나. 심지어 절반을 건너 공격하는 이치도 모르다니. 내가 그에게 교훈을 주마.’


그러면서 한나라 군이 절반 정도 강을 건넜을 때 공격을 시작했다. 한신은 거짓으로 패한 척 하면서 뒤돌아 달아났다. 용저는 득의양양해져 한신이 겁쟁이라고 더욱 확신하고 직접 선봉에 서서 공격을 이끌며 대부대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추격하게 했다. 선두가 막 강을 건너고 주력부대가 절반쯤 건넜을 때 한나라 군이 유수상류에 막아놓았던 모래주머니 제방을 무너뜨렸다. 큰물이 닥치자 강 중간에 있던 병사들은 절반이 넘게 쓸려나갔고 강가에 있던 제초 연합군도 양쪽으로 분리되어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


한나라 군사들은 이 기회를 타고 맹공에 나섰다. 혼전의 와중에 용저는 조참에게 피살되었고 서쪽 강변에 있던 제초 연합군은 한신의 군대에 의해 섬멸되었으며 동쪽 강변에 남아 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되어 사방으로 도주했다.


한신은 추격을 늦추지 않고 패잔병들을 성양까지 쫓아가 제나라 왕 전광(田廣) 등을 포로로 잡고 완승을 거뒀다. 조참은 동쪽으로 진격해 전기(田既)의 군대를 평정했고 관영은 서쪽으로 전횡을 추격했는데, 전횡은 양나라까지 패주해 도망가다 결국 팽성으로 귀순했다. 관영은 계속해서 간승(幹乘)까지 진군해 제나라 장수 전흡(田吸)을 공격했다. 제나라 장수 전흡과 전기는 모두 전장에서 사망했다. 한나라 군사들은 제나라 땅을 소탕해 모두 70여 개의 성을 얻었다. /  (계속) 大紀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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