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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한신(韓信) ‘공이 너무 커서 임금을 두렵게 하다’

편집부  |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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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SOH] 초한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은 한신 등 제후왕들의 천거로 황제의 지위에 오르니 역사에서는 그를 한고조(漢高祖)라 한다. 한편 한신의 처지는 무섭과 괴철의 예언대로 갈수록 더 나빠졌다.


1. 초왕 한신 운몽의 계략에 빠지다


해하전투가 끝난 후 한나라 군은 북상해서 정도(定陶)로 환군했다. 유방은 갑자기 한신의 군영을 기습해 그의 병권을 박탈했고 뒤이어 한신의 봉지를 비옥한 제나라에서 초나라고 변경시켰다. 제(齊), 조(趙), 연(燕) 등 한신의 직접 기반을 다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지게 한 것이다.


하지만 한신은 마음이 담담했다. 무정하고 의리 없는 유방에 대해 아무런 원망도 품지 않고 평온하게 자신의 옛 고향인 초나라로 돌아갔다.


고향에 돌아온 후 그는 가장 먼저 옛 은인인 표모(漂母)를 찾아 천금(千金)을 사례로 주었다. 그 후 또 남창 정장을 찾아 백전을 주며 과거에 빚진 것을 갚았다. 한신은 정장에게 “그대가 한 좋은 일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었으니 인정과 대의(大義)에 통하지 않은 소인이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모욕을 준 청년을 찾아왔다. 그는 새로 부임한 초왕이 자신이 전에 모욕을 주었던 한신이란 말을 듣고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한신은 그를 곤란하게 하는 대신 장사(壯士)라고 칭찬하며 ‘중위(中尉)’에 임명했다. 중위는 수도의 치안을 관장하는 직책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일을 처리한 후 한신은 곧바로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초나라 각 지역을 순시하면서 전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생문제들을 처리했다. 또 봉지를 지키는 군대를 건립해 강력하고 번영한 초나라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방은 한신에게 왕의 지위를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한신은 개국공신이라 그의 왕위를 박탈하기 위해 유방은 한신에게 ‘모반’죄를 덮어씌웠다.


한고조 6년(기원전 201년) 12월 유방은 갑자기 수하 장수들을 불러 “한신이 모반했다는 고발했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그곳에 모인 장수들은 모두 용맹하긴 하지만 지모가 떨어지는 무리들이라 일제히 “빨리 군사를 일으켜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방 자신도 군사를 일으키기엔 명분이 부족함을 알기에 한참을 침묵하다 마지막으로 진평에게 계책을 물었다.


진평은 모략에 장점이 있지만 재주에 비해 덕은 없었다. 유방이 이 말을 꺼내자마자 그는 사실 한신이 모반하지 않았음을 곧 알았다. 그는 자신의 의심을 확인한 후 유방에게 말했다. “폐하의 군사는 한신의 정예만 못하고 장수들 역시 한신을 뛰어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이 상태로 출병해 한신을 핍박해 결전을 치르신다면 폐하께 위험한 일입니다.” 그는 유방에게 거짓으로 순행하는 척 하면서 운몽(雲夢)에서 사냥한다는 구실로 제후들을 하남의 진(陳)에 모이게 해 황제를 알현하도록 시켰다. 진은 초나라 국경 근처라 한신이 오게 되면 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


유방은 흔쾌히 진평의 이 계책을 채택하고는 한신에게 사자를 파견해 진 땅에 와서 자신을 알현하라고 했다. 한신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직접 마중을 나갔다. 하지만 황제를 만나자마자 유방은 호위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한신을 체포하게 했다. 한신은 깜짝 놀랐지만 이미 속무무책으로 체포되었다.


이렇게 목적을 달성한 유방은 운몽으로 사냥하러 가지 않고 곧바로 도성으로 돌아갔다. 한신은 그제야 이번에 유방이 나온 목적이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알았다. 그는 크게 분노해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이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리며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는다(狡兔死,良狗烹;高鳥盡,良弓藏;敵國破,謀臣亡)’고 하더니 과연 정말이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도 당연하단 말인가!”


유방이 이 말을 듣고는 얼굴과 귀까지 벌개져서 반나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그대가 모반했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었소.”라고 얼버무렸다.


유방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개국공신을 체포하면 반드시 여러 사람들이 수긍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낙양으로 돌아오자마자 천하에 대사면을 단행했다. 또 이를 이용해 한신을 석방했다. 하지만 초나라로 돌려보내는 대신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켜 도성에 머물며 봉지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또 군대를 거느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 사실상 연금상태로 만들었다.


2. 종리매의 죽음


항우가 사망한 후 초나라 장수 종리매는 체포를 면하기 위해 도처로 다니며 몸을 숨겼다. 유방은 종리매에게 여러 차례 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몹시 미워해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신도 한때 항우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마천은 《사기‧회음후열전》에서 종리매가 한신과 연계가 있었고 도망하던 중에 한신에게 귀부했다고 했다. 유방이 종리매에 대한 체포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이 황제의 뜻을 어기고 따르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또 유방이 운몽에서 사냥을 구실로 제후들과 만날 때 한신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종리매에게 자살하도록 핍박했다고 했다. 종씨의 후손들이 펴낸 《종씨종보(鍾氏宗譜)》에도 이 주장을 채택해 세인들의 오해를 더 깊어지게 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실은 이와 다름을 알 수 있다.


《사기‧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에서는 분명히 “5년 9월 왕이 옛날 항우의 장수 종리매를 참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종리매가 한고조 5년 9월에 이미 체포된 상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반면 한신의 소위 ‘모반’사건은 한고조 6년의 일이다. 그러므로 유방이 운몽에 사냥을 나간다는 계략은 종리매가 사망한 지 1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한신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종리매를 핍박해 자살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신이 종리매를 숨겨주어 자신의 신상에 재앙을 초래한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한 대답 역시 부정적이다. 두 사람이 비록 동시에 항우의 휘하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은 높디높은 대장이었고 다른 사람은 미천한 집극랑(執戟郎)이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교류가 있기란 상상하기 힘들다. 유방이 진평에게 계략을 묻는 대화에서 보자면 그들 자신도 한신이 유방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또 운몽의 계략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이기도 했다.


운몽의 계략은 겉으로 보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누락이 아주 많았다. 운몽이란 지금의 동정호(洞庭湖)를 말하는데 호남에 있다. 한신의 봉지인 초나라는 강소(江蘇)일대이다. 유방이 관중에서 운몽까지 남하한 후 초나라로 향하는 것은 순탄한 길이 전혀 아니다. 만약 한신이 이전에 종리매를 숨겨주었다면 유방이 오기 전에 아무런 방비도 없이 영접하러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신이 “종리매의 목을 잘라 유방을 알현하러 왔다”는 사마천의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3. 병서의 체제를 만들다


한신은 문무쌍전(文武雙全)이라 용병술에 신묘했을 뿐만 아니라 저술에도 뛰어났다. 그는 일찍이 소하와 함께 군중의 율법을 수정한 적이 있고 또 장량과 더불어 선진시대에 남겨진 병법서들을 정리한 적이 있다. 반고는 《한서‧고제기(高帝記)》에서 한신이 장량과 함께 “병법의 목차를 만들고 182가를 정리해 35가로 정착시켰다.”고 했다. 여기서 ‘서차(序次)’란 목차를 배치하고 본문을 교감해 정리했다는 뜻이다. 이는 역사상 최초로 고대 병서를 대규모로 정리한 것이다.


한신은 《사마양저병법(司馬法)》에 나오는 병가사상 분류에 따라 병법을 ‘권모(權謀), 형세(形勢), 음양(陰陽), 기교(技巧)’ 4가지로 분류했다. 나중에 한 무제 시기 양부(楊仆)가 정리한 ‘기주병록(紀奏兵錄)’과 성제(成帝) 시기 임굉(任宏), 유향(劉向)과 유흠(劉歆) 등이 교정한 병서들 역시 모두 한신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분류법은 후세에도 전범(典範)이 되었고 병서 편찬과 병학 이론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다.


한신은 또 가택에 연금된 시기에 한가한 틈을 이용해 《한신병법(韓信兵法)》 3편을 저술해 선진(先秦) 병학을 총괄하고 집대성했다. 이는 한나라 이전의 병서들이 비교적 완벽하고 대규모로 후세에까지 존재하게 했다. 이 책은 ‘병권모(兵權謀)’ 13가의 하나에 속한다. 반고(班固)는 ‘병권모’의 해석에 대해 “권모(權謀)라는 것은 정규전으로 나라를 지키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용병하는 것으로 먼저 계획을 세운 후에 싸우되 형세를 겸하고 음양을 포함하고 기교를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바로 중국병법의 진정한 정수에 해당한다. / (계속) 大紀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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