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 삼황오제는 전설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립니다. 특히 요.순 시대는 국태민안을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태평성대를 구가한 시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는데요. 더욱이 후계자 문제에 있어서 좋은 선례를 남겼습니다. 순임금 다음의 임금으로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 왕조를 연 우임금 역시 똑같은 순서를 밟아 천자가 됩니다. 이 시대에, 성스러운 임금들의 노력으로 태평성세를 이룩하였지만 끝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백성들은 많은 곤란을 겪었고 통치자는 대단히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홍수가 범람해 농작물이 물에 잠기고, 주택이 무너져 내려 백성들은 살길이 막막해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맹수의 침습까지 자주 이어지면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피해는 22년간 지속되고 대지는 망망대해로 변해버려 백성들은 높은 곳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먹을 것조차도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날고기를 먹어야 할 정도로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즉, 홍수를 다스리는 일이 최대의 관건으로 떠오르게 되죠. 이에 부족장들은 ‘곤’을 요임금에게 추천하여 곤에게 홍수를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곤은 9년 동안 치수하였는데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방법으로 치수하였지만 결과 수재는 더 빈번히 발생하였고 치수에 실패한 곤은 마침내 사형에 처해집니다.
요임금의 뒤를 이은 순임금은‘우’에게 아버지 곤을 대신하여 계속 치수의 임무를 맡도록 합니다.
우가 총명하고 매우 부지런하며 그 덕은 어김이 없었고 인자하여 친애할 수 있었으며 말소리는 음률처럼 화기애애하였고 행동은 법도에 맞았으며 신용을 중시하고 사리판단을 잘하여 매사에 솔선수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는 치수에 실패한 아버지를 거울삼아 철저한 현지 조사를 거쳐 강바닥에 쌓인 토사를 제거하고 물길을 터서 바다로 흘러가게 하는 방법을 써서 직접 공사현장을 감독하면서 동분서주한 결과 13년 만에 홍수의 피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의 공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가 몸을 돌보지 않고 애태우며 중국 천지를 13년 동안 헤매며 이룩한 그 굽힘 없는 치수 활동은 그대로 그의 인간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가 자기 집 문 앞을 지나갈 때 처자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지나쳐 동분서주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마침내는 허벅지의 살이 쭉 빠지고 정강이의 털도 빠졌으며 등은 낙타처럼 굽어 절룩거리면서 걸었다. 후에 이런 걸음걸이를 우보(禹步) 즉, 우(禹)의 발걸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우는 치수하는 과정 중에 누추한 집에 살면서 근검절약한 비용을 치수사업에 썼습니다. 여러 가지 측량도구와 제도방법을 고안하였는데 육로는 수레를 타고 다녔고 수로는 배를 타고 다녔으며 진창길은 진흙 썰매를 타고 다녔고 산은 바닥에 쇠를 박은 신발을 신고 다녔습니다. 왼손에는 수준기와 먹줄을 오른손에는 그림쇠와 곱자를 들고 또한 사계절을 측량하는 기구를 가지고서 사방을 순찰하고 백성들과 함께 땅을 파고 흙을 지어 날랐는데 어찌나 힘들게 일했는지 종아리의 털이 다 빠졌습니다.
13년의 노력을 거쳐 홍수가 바다로 흘러들게 하여‘익’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벼를 주어 저습한 땅에 심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후직’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부족한 식량을 주도록 하여 백성들은 우의 덕을 칭송하였습니다.
우는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아홉 산맥을 뚫었으며 아홉 개의 호수를 축조하고 아홉 개의 하천을 소통시켜 구주의 경계를 확정함으로서 국토를 5천리에 달하는 넓은 지역으로 확장시킵니다. 이 13년 동안 세 번 자신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지만 한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집 앞을 지날 때, 결혼한 지 나흘 만에 집을 떠났는데 그동안에 임신한 아내가 아기를 낳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내의 신음소리와 갓 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부하는 우에게 집에 들어가 보기를 간곡히 권했지만 그는 시간을 지체하다 치수(治水)를 그르치게 될까 염려하여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집 앞을 지날 때 그의 아들이 아내 품에 안겨 그에게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지만 그는 손으로 응답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세 번째 집 앞을 지날 때 그의 아들이 달려와 그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려 하였지만 그는 치수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아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갑니다.
이처럼 치수에 임하는 자세와 그의 성과로 우는 많은 민심을 얻어 마침내는 순임금의 후계자가 되어 왕위를 계승합니다. 왕이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직무에 충실하며 근검절약을 생활화 합니다.
또한 제위에 올라서도 치수 사업을 계속하고 농사를 중시하여 관개수로 정비에 힘을 쏟고 도로의 건설 및 개척사업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방방곡곡을 순행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느 고을을 지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한 사나이를 둘러싸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우임금이 그들 곁에 다가가 그 연유를 물은 즉
“집이 가난하여 배 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곡식을 훔쳤습니다. 이 몹쓸 놈을 벌주시옵소서“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비행을 사죄하고 뉘우치는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우임금이 그 사나이의 손을 불쑥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니 뜻밖의 일에 놀란 백성들이 조심스럽게 그 연유를 물은즉,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천자로 계실 때는 모든 백성들이 천자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았다. 그런데 내가 제위에 오른 지금 백성들은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갖고 있다. 이는 다 나의 부덕한 소치니라“
이 말을 들은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감격하여 엎드려 함께 울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우임금이 치수 사업을 마치고 홍수의 정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의 구주에서 생산되는 청동으로 9개의 솥을 만들고 그 위에 구주를 대표하는 기이한 동물들을 주조하여 국가의 상징으로 삼았는데 이 9개의 솥은 대대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홍수를 다스리려고 낙수의 물길을 고치다가 영묘한 거북의 등껍질에 새겨진 이상한 그림을 발견하였는데 낙서(洛書)라 불리는 이 그림에는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가로 세로 세 줄씩 배열되어 있는데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쪽으로 더해도 합이 15였습니다. 이는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원본이 되었으며 팔괘(八卦)의 법도 여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제위에 오른지 8년째에 묘산(지금의 회계산)에서 각 부족의 수많은 족장들과 회동하고 그해 8월에 그간의 과로와 병으로 세상을 떠나니 신하들은 그의 평소의 생활신조에 따라 단지 3벌의 옷과 3촌의 관으로 장사지내고 회계산에 안장하였습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