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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문화] 13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 중공이 투쟁사상을 주입하는 목적
2007-08-30 10:22:44 | 조회 5966
해체 공산당문화 13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1) 중공이 투쟁사상을 주입하는 목적
조지 오웰의 명작 『동물농장』에서는
한 무리 동물들이 인류의 ‘착취’를 견디지 못해 혁명을 일으켰고,
결국 사람을 내쫓고 동물 자신이 주인이 된 ‘동물농장’을 만들었습니다.
동물들을 거느리고 ‘혁명’을 일으킨 지도자-돼지는
얼마 안 가 단독으로 우유와 사과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애초에 품었던 ‘모든 동물은 똑같이 평등하다’는 신념으로 혁명에 참여한 다른 동물들이 의혹을 갖자,
선전을 책임진 돼지인 스노볼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먹는 유일한 목적은
우리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농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조직하는 일을 우리가 도맡아야 한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바로 당신들을 위해 우리는 비로소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 돼지들이 실직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가?
존스가 다시 올 것이다.
그렇다. 존스가 다시 온다! 동지들! 이것은 정말이다.”
존스는 원래 동물농장의 주인, 즉 ‘낡은 사회’의 통치자입니다.
일부 동물들은 존스가 있었을 때 동물들의 생활이
지금보다 못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반복적인 선전을 통해 존스가 다시 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는 조건반사 식으로 모든 동물의 머릿속에 주입된 결과입니다.
때문에 모두들 돼지의 특권에 대해 반박하지 못했고,
그 결과 돼지의 특권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은’ 존스가
다시 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걱정했고,
특히 존스와 결탁해 농장 건설을 파괴한 ‘배신자’들을 학살했습니다.
걱정과 투쟁, 그리고 학살은
이제 동물들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내용이 되었고,
이러한 ‘가장 큰 일’ 앞에서 다른 불만과 의견들은
모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되었습니다.
또한 수시로 ‘경각성을 높이고’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모든 사회생활을 초월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었습니다.
오웰은 우화의 형식을 통해
극단의 권력을 갖는 극권(極權) 통치자가 투쟁철학을 고취하는 과정을 심각하게 묘사했습니다.
즉 사람들의 머릿속에 늘 존재하는 적을 만들고 유지했으며
시시각각 적의 위험성을 강조하여 ‘일치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극권통치자의 모든 만행을
‘잠시 인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만행은
민중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좋은 소원에서 출발했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런 투쟁은 늘
‘장기적이고 복잡하며 아주 고생스럽고’
사람들이 ‘잠시 인내함’은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모두
시시각각 존재하는 이런 ‘위험’에 익숙합니다.
중공은 이런 위험이
전에는 ‘장제스 일당의 특무’에서 왔고,
‘천지를 뒤집으려는 한 무리의 지주, 부호, 반동’에서 왔으며,
‘미친듯이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한 무리 우파분자들’로부터 왔고,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려는 한 무리 집권파’에서 왔으며,
‘한 무리의 어중이떠중이들’에게서 왔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우리 곁의 친지, 선배, 스승, 이웃들이 바로
‘위험한 적’이 되어 버렸고,
중공의 ‘너 죽고 나 살기’ 식 투쟁논리의 지도하에
이 위험한 적들은 한 무리씩 ‘소멸’ 당했으며,
적어도 4천만의 중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비명횡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공산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파산했고
오늘날 중공은 이미 국민들에게 똑똑히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시의 이런 ‘인민의 적’들은
도대체 무엇이 위험했단 말일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전히 새로운 ‘위험’이 주위에 존재함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의 의식에서 투쟁은 여전히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단지 오늘날 ‘위험한 적’의 죄명은
이미 유행이 지난 ‘반당(反黨), 반사회주의’에서
소위 ‘국가안전을 해치고’, ‘정권을 전복하며’, ‘반(反) 중국세력’, ‘종교 활동에 종사’ 등으로 조용히 변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바로 중공이
지난 몇십 년간 민중들에게 투쟁사상을 주입한 결과입니다.
실제상 전통문화는 거의 파괴되었고 명예가 실추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수천년 동안 전해온
중국 전통의 선악(善惡) 가치관이 철저히 전복되었습니다.
동시에 중공은 이미 민중들에게
당문화의 시비(是非)가치관을 주입했습니다.
이런 가치관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투쟁철학입니다.
공산당의 세계관은 계급투쟁 이론 위에 건립된 것입니다.
그것의 철학사상인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은 세계의 모순성, 대립성, 투쟁성을 주장하며 일의 내부에서 투쟁을 통해 양질이 변화하고
이로부터 저급한 단계에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 전화(轉化)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상을 인류 역사에 응용한 것이 바로
소위 역사유물주의(歷史唯物主義)입니다.
즉 사회 발전사는 바로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투쟁의 핵심은 국가정권이고
국가정권은 폭력에 의해 획득되며 또한
폭력에 의해 운행,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인류사회에 운용한 것으로,
계급 간의 잔혹한 투쟁을 통해 결국 약육강식하고 소위 ‘선진계급’이라고 하는 적자가 생존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중공은
자신에게 ‘합법 정권’이란 딱지를 붙이기 위해
늘 ‘역사가 중국 공산당을 선택’했고
인민들이 역사를 결정하므로
공산당 역시 인민들이 선택한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중공이 말하는 ‘역사가 공산당을 선택했다’는 것의 함축된 논리는
바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중공은 반란을 통해 성공했기 때문에
그 승리자가 ‘역사발전의 조류’를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투쟁이라는
사악한 주장을 주입하는데 열중하게 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시비(是非)를 뒤섞고
인과를 뒤집는 이런 사설이 300여 년 전
중원의 한족(漢人)들이 만주족의 침습과 청나라의 건립을 ‘선택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700년 전에 한족들이 몽골의 침입을 선택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중공이 집권한 역사는 50여 년에 불과하며
역사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성급한 것입니다.
사실 변증법은 마르크스가 만든 것이 아니며,
마르크스 자신도 변증법은 헤겔에게서 나왔다고 승인했습니다.
헤겔의 사상은 중국 고대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계발을 받은 것으로,
사실 중국 고대의 ‘역경(易經)’, 팔괘(八卦), 하도(河圖), ‘황제내경(黃帝內經)’, ‘손자병법(孫子兵法)’ 등에는 변증법적 사유의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역경’은 64괘를 통해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 우주 층차 중에서
사물 중의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 사이의 상호제약, 전화(轉化), 의존관계와 이를 통해 사물의 발전법칙을 연역해 내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경의 건괘편에서는
사물이 운동 발전하는 중에서
동정(動靜)의 변화, 음양(陰陽)의 소장(消長), 오행(五行) 상생상극 등의 요소를 서술했을 뿐만 아니라 사물의 완전한 발전과정과 흥망의 기운을 가리키는 박복(剝復)순환,
불운이 극에 달하면 행운이 온다는 부극태래(否極泰來)의 변화법칙을 묘사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유물변증법에서 논술한
사물의 보편적인 연계, 변화발전, 양질변화, 부정의 부정 등은 단지 표현의 차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의 소위 ‘발전’에서
특히 투쟁성을 강조하고 과장했으며 모순의 대립충돌방면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대립면의 통일은 조건적인 것으로 일시적이며
곧 사라지는 것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상호 배척하는 대립면의 투쟁은 절대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때문에 공산당 이론가들은 투쟁성을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혁명영혼’으로 여겼습니다.
이를 기초로 한다면 사회적인 모순을 처리하는 방법은 오직 투쟁뿐입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이 투쟁성을 강조하게 된 원인은 사실
공산당이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데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역사 유물주의에서 계급투쟁은 계급사회 발전의 원동력이고
폭력혁명은 ‘새로운 사회’의 산파이며
폭력에 의한 정권 탈취는 사회 진보의 요소로 미화되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전에
“마르크스주의의 이치는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지만
그 뿌리는 한마디 즉
‘반란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造反有理)’로 귀결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바로 정곡을 찌른 것으로,
이것이 바로 피비린내 나는 전투적인 당문화(黨文化)의 근원이자 또한
모든 공산 독재국가들이 겪는 불안과 충돌의 근원입니다.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인심(人心)이 냉담하고
서로 시기하며 서로 신임하고 포용할 수 없는 것 역시
당문화 중의 투쟁철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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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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