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해체 공산당문화] 11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1 유불도 사상 비판 - 2)불가와 도가 비판
 
  
2007-08-28 04:31:31  |  조회 4913


해체 공산당문화(원작:해체 당문화)

주제: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2 전통관념 비판    11회

========================================================

해체 공산당문화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두 번째 전통관념 비판

“하늘의 운행은 강건하니 군자는 이를 보고서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天行健,君子以 自强不息.)”,
“땅의 세력이 곤이니 군자는 이를 보고서 덕을 두터이 하고 만물을 싣는다(地势坤,君子以厚德载物.)”
‘역경(易經)’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 두 괘(卦)는
천지(天地)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를 잘 드러냅니다.
군자는 하늘의 도(天道)에 순응하여 행해야만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을 수 있으며
유순하고 심후(深厚)한 도덕으로 만물을 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함에 성실하고 신의가 있고 화목해야 하며
이를 확장하여 자기 집 어른에 대한 존경과 아이에 대한 애호를
모든 노인과 아이에게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뢰를 중시하고 화목을 도모함(講信修睦)’이며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며,
내 아이를 사랑하여 남의 아이에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중국인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공경하며 신을 공경하고 조상을 공경하는데
이로부터 일상생활 중에서 처세의 도가 형성되어 대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렇지만 공산당은 공산당 선언에서
“전통적인 관념과 가장 철저히 결별하여야 한다.”고 하여
중국인의 생활 속에서 전통문화와 신앙을 철저히 제거하였습니다.

중공은 정권을 세운 초기부터 「사회발전사」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 인민을 세뇌했습니다.
또한 중국이 근 백년 간 열강의 침략을 받은 원인이
전통 문화가 ‘낙후’되고, ‘우매’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는가 하면,
전통 사회를 ‘부패하고 몰락한’ 낡은 사회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전통 관념 중의 신앙부분을 ‘우매와 미신’으로 표시했는가 하면,
그 중의 도덕 부분을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禮敎)’라고 표시했습니다.

이리하여 중국 인민의 민족적 자존심과 스스로 강해지고자 하는 염원을 이용해
중공은 전 사회적으로 이른바 ‘봉건 미신’을 타파하는 운동을 일으켰고
이른바 ‘낡은 풍속과 습관을 고치자(移風易俗)’는 구호를 내걸고
전통 신앙과 관련된 일체의 민간 활동을 가로막았습니다.
동시에 중공은 전통 관념을
‘봉건 통치자’를 대신하여 인민을 마취시키는 정치 도구로써
‘그들로 하여금 착취 받는 생활에 만족하게 했다’고 비판했고,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백성을 압박하는 ‘봉건 종족제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전통 문화를 뿌리 뽑는 운동을 정치의 높이로 끌어 올렸으며,
대규모 군중운동을 통해
민간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전통 관념의 언어와 행위를
‘감독’, ‘검거’, ‘적발’할 수 있게 되어 철저히 뿌리 뽑는 목적에 도달하였습니다.
여기서 중공에게 비판받는 전통 관념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1 하늘에 대한 경외敬畏 비판

중국인은 줄곧 하늘에 대한 경외를 유지해 왔고,
명확한 신앙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을 믿습니다.
중국인의 전통 관념 중에서 하늘은
비록 형상은 없지만 모르는 것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왕조의 말기나 혹은 보편적으로 사회도덕이 타락했을 때,
하늘은 곧 재난을 내려 보내는데 그 전에 경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하늘이 상을 드리우니 길흉이 나타나고 성인이 이를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제왕이 등극한 후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예를 올리는데,
이는 모두 하늘에 대한 존경을 체현한 것입니다.
정치에서 ‘하늘’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칙을 가르킵니다.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뭇별들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  
밀실에서 속삭이는 말도 하늘은 우레처럼 듣는다”라고 했습니다.
병법, 건축, 악기 등도 모두 하늘의 규칙을 체현하는데
설사 반란을 꾀할지라도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전통 관념에서는 ‘하늘’에 대해 지금까지 줄곧 경외하였지만,
오직 공산당만이 ‘하늘’과 투쟁합니다.
하늘에 대한 경외는 사람의 도덕을 수호했고,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하여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관점을 수호했으며
‘천인합일’의 관념은 효과적으로 자연을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통관념은 모두
공산당이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훼손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고,
중공이 필요로 한 것은
도리어 살인에 의지해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 속에서 그것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공은 또 ‘하늘과 싸우고 땅과 투쟁하는’ 호언장담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공산당을 숭배하고 자연을 파괴하도록 하였습니다.

마오쩌둥은 “나는 중이 우산을 쓴 것처럼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본래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는 말은 폄하하는 뜻이 있었지만
마오는 용감하다는 뜻으로 바꿨으며
아울러 사람들을 선동하여 ‘법도 없고 하늘도 없는’ 정치투쟁과 환경파괴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2.2 운명과 선악보응 비판

중국인들은 ‘하늘’에 대한 경외에서 ‘천명(天命)’관을 갖게 되었고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 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명으로 여긴다’는 말은 중국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데
중공은 이를 곤경에 처해 소극적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사실상 ‘운명으로 여긴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사람의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듣는다’
혹은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지만 성사는 하늘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생과 사는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였지만,
54세 때에도 여전히 노나라의 대사구 벼슬을 사직하고
14년 동안 각국을 다니며 왕도를 펼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소극적으로 세상을 도피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인 생활에서 ‘운명으로 여기’는 사상은
결코 개인적인 노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인생에서 만나는 불가항력을 달리 해석한 것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말한다면 전통 관념에서,
사람의 운명은 전반생 더 나아가 몇 세대 전에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여 감당한 선보 혹은 악보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운명’은 또한 늘 ‘선악유보’, ‘복보’, ‘악보’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역경’에서는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경사가 있고,
선을 쌓지 못한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념은 사람들에게 애써 선을 행하게 하며
자신의 이후 생활이나 더 나아가 후대자손을 위해 공덕을 쌓게 하는 것입니다.
‘선악유보’와 비슷한 말로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다’,
‘인간의 사사로운 말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 속에서 마음을 속일지라도 신의 눈에는 번개와 같다.’ 등이 있습니다.

운명과 인과응보를 믿는 사람들은 힘써 선행을 하고 욕망을 담담하게 보게 하며
하늘에 순응하여 행동할 것이며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해 결과를 따지지 않고 함부로 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에도 하늘의 뜻이 있으며
“사람의 생각만 떠올려도 천지는 반드시 알며
선악에 보응이 없다면 건곤에 반드시 사사로운 마음이 있을 것이다.”를 믿게 합니다.

왕조가 바뀌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중국에 문자가 존재한 이래,
후대의 역사적인 큰 사건에 대한 예언을 끊임없이 남겼는데
그 정확도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입니다.
이런 ‘하늘을 받들고 운을 따르는’ 천명관 역시
제왕이 집권하는 합법성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중공은 ‘운명’과 ‘보응’을 ‘봉건 미신’이라고 비판했으며
아울러 이런 것을 소재로 하는 연극은 선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근거는 실증할 수 없는 ‘진화론’과
‘역사 유물주의’라는 가설입니다.
중공은 만약 어떤 사람이 보응을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중공을 추종하여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2.3 유순함과 인내, 양보 비판

‘역경’에는 “유순하며 이롭고 바르게 함이 군자가 할 바이다.”고 하였습니다.
유순함은 결코 원칙 없이 외압을 참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도에 순응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유순함’ 속에는 ‘인내와 양보’의 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신은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모욕을 당하고도
“잠시만 참으면 모든 일이 무사태평하고
한 걸음만 물러서면 가없는 세상이다.” 라고 하여
모든 중국인들로부터 ‘참음’에 대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중공은 투쟁을 고취합니다.
‘공산당의 철학은 바로 투쟁의 철학이다.’,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협상이나 대화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탄압에 의지하고 보복하는 것을 용감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소동파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하였습니다. “모욕을 받은 후에
즉각 검을 빼들고 일어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필부의 일이라,
전혀 용감하다고 할 바가 못 된다.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갑작스런 침범에 직면했을 때
진정하고 놀라지 않는 것이다.
설사 무고하게 모욕을 당하더라도
역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다.
이는 그의 흉금이 넓고 크며 수양이 깊고 뜻이 고상하기 때문이다.”

‘참음’은 전통문화 속에서 긍지, 관용,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 것으로,
결코 나약하거나 무원칙하게 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공이 주장하는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것은
사실 흉금이 좁고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다는 표현입니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원한을 서로 갚게 하고
사람마다 서로 적으로 대하게 하는데 이 역시 오늘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중국인들은 하늘을 강한 것으로 여기고 땅을 유순한 것으로 여겼으며,
강한 것과 유순한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보았습니다.
전통 관념에서는 ‘조화’를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황궁에 있는 세 큰 전각의 이름이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인 것만 보아도 화해와 화목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공 대변인은 지금도 ‘대화’, ‘협상’, ‘협력’ 을 입에 달고 있지만,
이런 거짓말은 탄압의 다른 측면에 불과할 뿐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민중항쟁인 산웨이 사건, 한위안 사건, 산베이 유전사건과
상방 인사, 토지를 몰수당한 농민, 강제 이주민, 실업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탄압은 사실
투쟁정신의 연속이며 도살을 이용해 ‘사이비 화해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2.4 전통사회질서 비판

중국인들은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자연 상태로부터
‘역경’의 ‘건곤’과 ‘음양’의 대응을 일련의 가정과 사회윤리로 확장했고
다시 이 윤리로부터 사회질서를 이끌어냈습니다.
‘존비(尊卑)’는 중국 전통관념 중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비(卑)’는 꼭 나쁜 일이 아닙니다.
도가에서는 물은 늘 아래에 처하기 때문에 줄곧 물의 미덕을 추앙해 왔습니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강하고 굳센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도가에서는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하면 부러지며’,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공은 줄곧 사람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속여 왔지만
사회에는 중공이 의미하는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국가, 기업, 사회단체, 가정에는 늘 책임을 맡아 일부 일을 협조하는 사람이 있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 그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정상적인 사회 상태이며 또한
각 사람의 지적 능력, 체력 등의 종합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공은 이를 극단적으로 만들어 계급압박과 계급투쟁으로 묘사했습니다.
때문에 중공은 일체 존비(尊卑)와 질서를 혼란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재난, 돌림병, 굶주림, 전쟁 시기에 부녀자와 아동은 우선적으로 보호할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마치 부녀자도 남자와 마찬가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이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예전에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부녀자와 아동을 가장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고,
남자들은 배와 함께 침몰할지라도 그 책임을 감당하였습니다.
이 결정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는 우리의 내심 깊은 곳에
남녀 간의 절대적인 평등이란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회생활로 확장한다면 한 기업 혹은 국가에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그 정책을 집행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군대라면 사령관이 있고
아래에 각급 장교와 사병들이 사령관의 명령을 집행할 책임을 집니다.
사회 직능을 보더라도 확실히 ‘존비(尊卑)’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존비’가 반드시 착취와 압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역시 상하간의 ‘인’과 ‘충’의 미덕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하며 형제가 우애한다면,
이러한 전통 윤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정은 조화롭고 사회는 질서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평등’은 근본적으로 말해
불법(佛法) 중의 ‘중생평등(眾生平等)’이나 도가의 ‘천도무친(天道無親)’,
유가의 ‘유교무류(有教無類)’, 서양의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것이요
기회의 평등이지 결코 결과의 평등이 아닙니다.

중공은 ‘평등’을 왜곡되게 선전하여
사회적으로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했고
‘남녀평등’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사실상 부녀자를 박해했으며
여자들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중공이 1976년 4월에 출판한
‘낡은 전통 관념과 철저히 결별하자’는 책에서
여자들은 본래 남자들이 해야 할 석탄 운반공, 도살공, 하역공 등의 일을 하며,
‘돼지 잡는 도살 칼을 단단히 움켜쥐고 절반의 하늘을 떠받쳤다’고 묘사하여 찬송할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공 치하의 사회는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입니다.
중공이 모든 자원을 독점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인민의 공복이라고 호칭하긴 하지만 사실상 인민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고
정치적인 권리와 경제적인 권리를 막론하고
관(官)과 민(民)의 평등이란 아예 언급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2.5 재산을 도덕을 가늠하는 중요한 근거로 삼아

중국 정사(正史)의 첫 장을 장식하는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오제의 덕행과 이런 덕행에 대한 백성들의 인정과 존경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덕행은 사람들 마음에 깊이 파고 들어가 수천 년을 전해왔고,
아울러 한인지역의 소수민족 지역과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중국인의 관념 중에서 도덕과 학식은 사람들이 성망(聲望)과 지위를 얻는 근원입니다.
공자는 예기 예운편에서
“대도(大道)가 행해진 세상에는 천하가 만인(萬人)의 것이었으며,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골라 관직에 나아가게 했고,
서로 신뢰를 다지고 화목함을 누렸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한 사람의 인품이 관리로 선발되는 중요한 지표였던 것입니다.

한나라 시대에 시행한 인재추천제도인 찰거제(察舉制)의 천거표준은
“덕행이 높으며 지조와 절개가 깨끗하고, 학문에 능통하고 경전에 박식하며,
법령에 통달해 의혹을 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외에 또 구비해야 할 것은 ‘질박(質樸), 돈후(敦厚),겸손, 절약’의 미덕이었습니다.

위진시대에 이르러 관부에서 구품중정제를 시행할 때도
도덕은 관리를 선발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과거로 관리를 선발할 때에도
유가도덕에 대한 이해정도는
응시자들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가 여부와 마찬가지로 과거급제의 선결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공이 정권을 세우자
덕망이 높은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탄압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 개인의 출신성분이 사회자원을 획득하는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도덕이란 본래 그 개인의 사상에서 결정되지만
중공에 이르러서는 도덕이 한 계급의 집단적인 지표로 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가 곤궁하면 누가 영광이고 누가 치부했으면 누가 좋지 않다.”라고 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것을 정확함과 정의로운 것으로, 압박받는 자로, ‘반란에도 도리가 있음’으로, 그리고 ‘혁명’을 가장 단호하고 가장 철저히 하는 것으로 선동하였습니다.

한 개인의 빈궁(貧窮)과 부귀는 본래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근면히 일하고 기회를 잡아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또는
제멋대로 돈을 낭비해 집안이 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본래 전답이 많이 있었음에도
몇 년 후 걸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순간 단칼에 계급을 구분해 버렸고,
부귀한 사람을 증오하고 다른 사람을 자본을 오만하게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타도하려고 한다면,
단지 이 사람이 지주나 혹은 자본가라고만 하면 되며
나머지 말은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부귀는 ‘착취’와 ‘탄압’ 그리고 ‘죄악’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공산당은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뒤집어
여러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는 부귀를 죄악시하지 않으며 도리어 빈궁함을 수치로 여기고,
한 사람의 좋고 나쁨, 성공 여부는 도덕과는 무관하며 사람의 부유한 정도로 판단합니다. 누가 돈이 많으면 그가 바로 능력이 있는 것이며
그 돈을 훔쳐왔건, 빼앗아 왔건, 부정부패로 뇌물을 받았건, 몸을 팔았건
혹은 영혼을 팔았건 상관이 없습니다.
‘가난은 비웃어도 몸파는 여자는 비웃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고,
그런 후 미색에 빠진 가운데 기득권자의 신분으로 중공의 통치를 인정하게 합니다.  

2.6 저속한 당문화 선양

중공 치하의 수많은 사람들은 고상하고 우아한 것을 수치로 여기고 비루한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중화민족은 본래 예의의 나라로 불려왔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명을 강구하고 예의를 중시했습니다.
사람이 서로 만날 때는 손을 모으고 읍(揖)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도리어 사람들에게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손에는 못이 박히며 온몸에 혁명충을 기르라.”라고 외쳤습니다.
“손은 시커멓고 발에는 쇠똥이 묻어야”지만 가장 혁명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지식인들은 예의를 중시하지만 중공은 ‘까막눈’을 선전하였고,
문명과 야만 사이에서 중공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야만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예의를 중시하지 않고
함부로 가래를 뱉으며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돈이 있건 없건 모두 말을 했다하면 저속한 말이나 음담패설입니다.
외국에 나간 후에도 수많은 중국인들은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며
종교적인 장소에서 희희낙락하며 현지 풍속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비행기, 호텔, 차량이나 선박 등에서 큰소리로 전화를 걸며,
아무데서나 신발이나 양말을 벗고 바지 단을 걷어 올리며,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새치기를 합니다.
심지어 많은 국가의 관광지에 가보면
현지인들이 화장실에 특별히 중국어로 써 붙인 “용변 후에는 물을 내려주세요.”라는 팻말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중공이 전통문화를 파괴한 결과입니다.

2.7 비판받은 기타 관념

중공의 비판은 늘 이성적인 비판이 아니며
사상비판에서 인신공격으로 변질되고,
그런 후에 “무릇 적들이 반대하는 것이면 우리가 옹호하고
적들이 옹호하는 것은 우리가 반대한다.”라는 억지와 삿된 말로
비판받는 사람의 사상을 단번에 매도해버립니다.
비판받는 사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을 말하자면 역시 아주 간단한데,
‘노예주계급’, ‘지주계급’, ‘자본가계급’, ‘수정주의’ 등의 모자를 씌우면 그만입니다.
중공은 공자를 비방하는 것을 통해
유가의 ‘중용’사상, ‘인의예지신’, 자기를 이겨내어 예로 돌아간다는 뜻의 ‘극기복례(克己復禮)’,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의 다섯가지 항목으로 자신을 닦음’을 부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글자들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란 원래의 내포가 아니며
높은 톤의 방송, 천지를 뒤덮는 큰 누명, 대자보 또는 비판받은 사람의 비참한 말로 등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두려움이 생겨나
자각적으로 이런 사상들과 ‘명확히 경계선을 긋게 됩니다.
유가는 ‘인(仁)’을 주장하는데,
바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공은 ‘인(仁)’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이 하기 싫으면 남에게 강요하라”는 것으로 변질시켜버렸습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중용’을 숭상했습니다.
‘중용’은 중공이 해석하는 것과 같이
‘두루뭉술함’, 교활함, 양다리 걸치기가 결코 아니며,
그 본래 의미는 바로 ‘늘 중도를 지킨다’는 것으로 천명을 존중하고
따라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에는 “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며, 독실히 행함”과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 형제, 친구”간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
‘지극한 덕(至德)’에 도달하며
수신치국(修身治國)의 도리를 완전히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중공은 ‘중용’의 본뜻을 완전히 왜곡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견유(犬儒)로 만들어버렸습니다.

=======================================================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960 [해체 공산당문화] 제27회 제3장 주입수단 2008-01-03
959 [해체 공산당문화] 제26-1회 제3장 주입수단 3. 중국공산당 사악한 당 문인을 이용한 악당惡黨 찬양하다 2007-12-31
958 [해체 공산당문화] -(25회-1)-제3장 주입수단 2007-12-20
957 [해체 공산당문화] 제24회 제3장 주입수단-4)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주입수법 - continue 2007-12-20
956 [해체 공산당문화] 제23회-2 제3장 주입수단-제1절선전기구를틀어쥐고당문화보급3,4 2007-12-13
955 [해체 공산당문화] 제23-1회 제3장 주입수단 - 제1절 선전기구를 틀아쥐고 당문화 보급 3 2007-11-24
954 [해체 공산당문화] 제22회 제3장 주입수단 - 제1절 선전기구를 틀어쥐고 당문화 보급 2 2007-11-07
953 [해체 공산당문화] 제21회 제3장 주입수단 - 제1절 선전기구를 틀어쥐고 당문화 보급 1 2007-10-27
952 [해체 공산당문화] 제20회 제3장 주입수단-프롤로그 2007-11-02
951 [해체 공산당문화] 제19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4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4 2007-10-16
950 [해체 공산당문화] 제18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4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3 2007-10-16
947 [해체 공산당문화]15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 조화로운 공존으로 회귀하는 길 2007-09-04
946 [해체 공산당문화] 14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 정치투쟁중의 주입 2007-08-31
945 [해체 공산당문화] 13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 중공이 투쟁사상을 주입하는 목적 2007-08-30
944 [해체 공산당문화] 12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3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 프롤로그 2007-08-28
  
1234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CCP OUT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23,010,274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