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사(中央社) 타이베이 보도 05.1.17]
1989년 민주화운동을 지지함으로 인해 15년 간이나 연금당했던 중국 공산당 전(前)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이 오늘 아침 병사하였다. 자오쯔양의 서거가 중국 정치국면 및 중국사회에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 중국 공산당이 자오쯔양 및 89년 민주운동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것인지 여부는 외부세계에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두 가지 초점이다.
자오쯔양(趙紫陽)은 1919년에 태어났으며, 허난성(河南省) 화현(滑縣)사람이다.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8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항일전쟁시기, 지[冀 역주: 허베이성(河北省)의 별칭], 루[魯 역주: 산둥성(山東省)의 별칭], 위[豫 역주: 허난성(河南省)의 별칭] 혁명근거지에서 중국공산당 현(縣)위원회 서기와 공산당 지역위원회 서기(書記)를 담당하였으며 덩샤오핑(鄧小平)파에 속하였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건립한 후, 자오쯔양은 중국 공산당 광둥성(廣東省)위원회 부(副)서기, 서기, 제일서기, 중난국(中南局)서기, 중국 공산당 광둥(廣東) 군구(軍區) 제일정치위원(第一政委)을 역임하였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홍위병(紅衛兵)들에게 「자본주의 반동파 노선을 걸었다」는 누명을 쓰고, 비판투쟁과 숙청을 당했다. 1971년 다시 복직하여 중국 공산당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위원회 서기, 광둥성 위원회 제일서기, 쓰촨성(四川省)위원회 제일서기, 청두(成都 )군구(軍區) 제일정치위원(第一政委)을 역임하였다.
자오쯔양이 쓰촨성(四川省)위원회 제일서기를 담당하는 기간에, 국유기업(國有企業)의 개혁을 추진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이후 「개혁파」(改革派)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다. 1979년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 임명되었으며, 1980년 공산당 최고 요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했고 같은 해 4월 국무원 부총리, 9월에는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었다.
1986년 말, 중국대륙에서는 대규모 학생운동이 발생하였다. 중국 공산당내부의 보수파는 원로(元老)세력과 결탁하여 1987년 1월 16일 당시 총서기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을 면직시키고 자오쯔양을 총서기 대리 겸 국무원 총리직을 담당하게 하였다. 1987년 중국 공산당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자오쯔양을 총서기 대리에서 정식 총서기로 임명함과 동시에 중국 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제일 부주석(당시 군사위원회 주석이 덩샤오핑이었으며 이로써 자오쯔양은 명목적인 제1인자이자 실질적으로는 덩샤오핑에 이어 2인자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을 담당하게 하였다.
1989년 중국대륙에서는 또 한 차례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나중에 톈안먼에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강행한 6.4사건으로 발전하였다. 자오쯔양은 이 사건에서 「당을 분열하고 동란(動亂)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여, 그 해 중국 공산당 제13차 4중전회(四中全會)에서 직무를 해임 당하였다. 그 후부터 2005년 1월 17일 병사하기까지 줄곧 연금 상태에 처해 있었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http://www.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