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옌밍(黃燕明)
현재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이른바 ‘양회(兩會, 역주 - 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는 사실 중공 스스로 극본을 쓰고 감독, 연출하며 나중에 감상까지 하는 연극에 불과하다. 게다가 참여자, 투자비용과 공연 시간이 가장 긴 황당한 연극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공연되고 있는 이 극은 별 신선한 내용 없이 항상 같은 스토리와 대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나마 새로운 내용이 있다고 해도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데 불과하다. 사실 이는 새로 임명한 감독이 전임 감독과 자신을 구별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 황제가 새로 보좌에 올랐는데 자신만의 설(說)이 없다면 어찌 최고 통치자의 권위를 뽐낼 수 있겠는가!
역대로 장황한 새 감독들의 새로운 설은 중국의 낙후한 상황을 조금도 개변시키지 못했으며 사회진보도 가져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사회제도와 기존 정치의 틀은 중공 역임 최고 통치자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통치자들의 이익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확고한 독재 정권 수립을 위해 이미 붕괴직전에 달한 정치구조를 조금 변화시켰다. 그는 개인독재를 일부 정치인들로 구성된 집단독재로 대체하려고 시도했으나 이 거대하고 낡아빠진 사회주의 전함을 자칫 침몰시킬 뻔했다. 나중에 그는 현실과 보수세력의 이중 압력으로 자신이 추진했던 정치 개혁을 부정하고 당, 정, 군 3대 정권을 모두 장쩌민 한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장쩌민 이전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은 체제 개혁을 시도하다 실패한 최고급 인물의 대표라 할 수 있다.
독재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폭력과 개인 우상화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한 개인의 절대적인 권위를 수립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통제불능에 빠지고 낡고 방대한 국가를 다스릴 수 없으며 인민을 노예화 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집권자들은 당, 정, 군 대권을 모두 독재의 손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여론을 속이기 위해 정치협상회의, 인민대표대회 및 교육, 문화, 종교, 상업, 매스컴 등 이 모든 것들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놓고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똑같이 이 몇 사람이 조종하고 있는 꼭두각시극인 정치협상회의와 인민대표회의 사이에는 무슨 본질적인 구별이 있겠는가?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양회’는 사실 똑같은 스토리의 엉터리 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보아냈다. 선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인민대표가 중공 각급 위원회의 지명으로 결정된다는 점만 보아도 앞서 말한 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50대 이상의 중국인들은 아마 선거권을 가졌던 기억이 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때 중국인들은 명색뿐인 선거용지를 받은 적이 있으며 선거하는 시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그 시늉마저 사라졌다. 유권자들이 모두 선거라는 정치적인 권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투표용지에 미국 대통령, 홍콩스타, 드라마에서 나오는 마피아두목, 3세도 안 된 동네 꼬마이름,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애인의 이름을 써넣기도 한다. 더욱 정부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아예 아무것도 써있지 않은 투표용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얼굴조차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노인들이 투표소 후보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유권자들은 그들의 경력, 인품이 어떠한지 조금도 모르고 있으니 어떻게 투표하란 말인가? 유권자들은 할 수 없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투표용지에 장난을 좀 쳤는데 이건 그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당국에서 국민들의 선거권을 박탈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선거도 거치지 않았는데 인민대표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들은 인민의 대표인가 아니면 공산당의 연극배우인가? 이 문제의 답은 모두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실 슬픈 사실은, 중국인들이 자신의 정치권리가 이유 없이 박탈당한 데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마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유명무실한 선거가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국 서민들은 해마다 ‘이렇게’ 선거된 대표들이 참여하는 양회에 사실 아무런 관심이 없다. 백성들은 중공의 매스컴에 의해 떠들썩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양회’가 자신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피부로 느낀 적이 없다. 역대로 양회는 백성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지 못했으며 기본 인권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양회가 열리는 기간을 이용하여 탄원하러 베이징에 간 서민들은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그렇다! ‘양회’에서 나온 일부 대사들은 확실히 잘 썼다. 그러나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대사는 모두 연극을 위해 정성들여 쓴 것이며 연극이 끝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어느 해 ‘양회’의 대사가 멋지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하지만 백성들은 갈수록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누가 그렇게 많은 서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고 어린이들을 입학하지 못하게 했으며 병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게 했는가? 백성들 자신이 이런 현실을 조성했단 말인가? 그들을 고난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자들은 나와서 죄책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멋진 대사로 백성들을 속여 넘기고 자신들을 칭송하게 하며 심지어 만세를 부르게 하고 있다. 이는 얼마나 야만적이며 엽기적인가!
이런 황당한 연극이 언제 막을 내릴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양회’라는 연극이 막을 내릴 때가 바로 중국인들의 고난이 종식될 때라는 것이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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