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만 제1야당 국민당 롄잔(連戰) 주석은 끝내 베이징행을 선택했다.
롄잔 주석은 공산당에 비굴하게 다가서며 이번 여행이 ‘평화의 여행’이 될 것이라고 대만 국민과 국제사회를 속이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평화적인 투항’이라고 해야 적절하다.
이 몇 년간 중국공산당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고 있는 대만 국민들과 달리 국민당은 줄곧 이러한 대응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면서 오늘의 ‘평화적 투항’의 길을 준비해 왔다.
중국과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롄잔은 독재정부가 민주정부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민주정부가 독재정부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답은 물론 전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중국 방문은 ‘평화의 여행’이 아니라 ‘민주의 여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롄잔의 이번 중국 방문이 ‘민주의 여행’이 될 수 없는 원인은 아래와 같다.
장기간 대만 집권당의 자리에 있었던 국민당은 롄잔 주석에 와서 두 번이나 정권을 빼앗겼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롄잔은 대통령 취임식에도 불참하고 다수의 국회의원들을 이용해 집권당에 맞서고 있다. 이는 롄잔이 민주제도의 세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롄잔이 이번에 중국을 방문한 목적은 대만의 기타 야당 그리고 공산당과 손을 잡고 천수이볜 총통을 고립시킴으로써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공 독재 정권에 양보를 하면 했지 민주주의를 선전하고 정치개혁 주장함으로써 중국 국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라고 권할 리는 만무하다.
때문에 롄잔이 중국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같은 대접을 받고 베이징대에서 연설을 한다 해도 클린턴 대통령과 같이 자유, 인권의 보편적인 가치를 선양하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의 종교탄압, 소수민족 탄압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대만의 민주화를 중국에 소개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자신을 뽑아주지 않은 대만의 민주주의는 껍데기 뿐이라고 모욕할지도 모른다.
중공와 국민당에 얽힌 원한 관계를 롄잔은 모를 리 없다. 지난 세기 20년대와 30년대 두 차례 실패했던 국공합작이 좀 먼 이야기라고 한다면 항일전쟁이 끝난 후 양당이 체결한 ‘쌍십(雙十)협정’을 보기로 하자.
‘쌍십협정’ 제1항에는 “국공 양당은 항일전쟁이 승리하고 평화적 건국단계가 시작되었음에 인식을 같이하고 평화, 민주, 단결을 기초로 장제스(蔣介石) 주석의 지도하에 장기간 합작하여 내전을 피하며 독립, 자유, 평화의 새 중국을 건설하고 삼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 협정의 실현을 위해 당시 미국은 마샬 특사를 파견해 중국에 ‘군사조율처’를 세우고 공산당, 국민당, 미국 대표가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중공의 속임수에 걸려들어 평화를 실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불길은 오히려 갈수록 크게 번졌다. 나중에 장제스의 800만 군대는 중공에 의해 소멸되었으며 중국교육사업에 헌신해왔던 주중 미국 대사 존 스튜어트는 실망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중공을 지지했던 중국인들은 결국 나중에 중공으로부터 상응한 ‘보답’을 받게 되었다. 중공은 ‘해방’ 후 집권한 50여 년 동안,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 대신 주동적으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 러시아, 베트남과 무장충돌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정치운동과 종교인사,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 운동을 벌임으로써 수천 만 중국인들의 생명을 빼앗았다.
중공은 아직까지도 평화를 파괴한 이러한 행위를 승인하고 않고 있으며 민주와 담을 쌓고 있다. 장제스는 중공에 속임수에 의해 중국을 잃었지만 현재 롄잔은 두 손으로 대만을 중공에 바치고 있다. 나는 대만 국민들이 다시는 중공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말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린바오화(林保華: 해외민주인사, 중국문제관찰가)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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