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지난 6일 중국을 방문한
대만 ‘신당(新黨)’ 대표단도 방중 일정에 마침 항일 전쟁이 발발한 ‘7.7노구교사건’
기념일이 끼어있어 노구교를 참관했다.
최근 대만 야당들이 연달아 중국을 방문하면서 항일전쟁에 대한 국민당의 공헌을
승인하는 중국인들은 전보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 중앙연구원 근대사
연구소 천춘궁(陳存恭) 교수를 포함한 학자들은 중국이 여전히 항일전쟁을 왜곡하고
있는데 대해 질책하고 있다.
중공, 자신의 역할을 확대
공산당군은 일본군과 큰 규모의 전투를 벌인 적이 거의 없지만 중공은 항일
전쟁을 모두 자신이 이끈 것처럼 말하고 있다. 8년 항일 전쟁의 수천 만 희생자 가운데
국민당군만 수백 만 명을 초과하며 국민당 장교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지만 이에
비해 공산당군의 희생자수는 미미하다.
마오쩌둥, 항일 전쟁 이용해 세력 확대
항일전쟁 기간 중공 중앙군사위 주석을 맡은 마오쩌둥의 기본 책략은 국민당이
일본군에게 소멸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심지어 배후에서 일본군을 도와 국민당
군대를 약화시켰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은 3개 사단을 산시(山西)에 보내면서 일본군과 싸우지 말고
지하에서 근거지를 발전시키도록 명령해 공산당 역량을 확대했다. 그 결과 2, 3년
동안 공산당은 4, 5만 명에서 3, 40만 명으로 늘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 왜곡
중국공산당은 일관적으로 정치 목적을 위해 역사를 왜곡해 왔다. 항일전쟁 역사를
왜곡한 것은 그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중국은 지난 몇천 년 역사를
모두 ‘계급투쟁’, ‘농민봉기’를 주요 맥락으로 서술하고, 중대한 역사 사실을
삭제 혹은 왜곡했다.
중공은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유물적 역사관, 다시 말해 ‘인류는 투쟁해야만 비로소
진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이용해 인류 역사를 몇 개 계급 투쟁 역사로 풀이했다.
분석가와 학자들은 중공이 통치지위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특히 근대사를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 1949년 이후의 역사 중에 많은
금지 구역이 있다는 것과 공개적인 연구와 토론을 허가하지 않는 점이다. 여기에는
1950년 중국군의 티베트 침입, 50년대의 대약진운동, 10년 문화대혁명, 1979년 중국
군대의 베트남 침공 및 1989년 톈안먼사건 등 민감한 역사적 사건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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