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공산당은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 중에서 비판받아 실각한 중국공산당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탄생 9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을 제안한 후진타오 총서기는 한국 방문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당초 2000여명이 참석해 치러질 예정이었던 기념식은 고작 350여명이 참석한 조촐한 행사로 치러졌다. 또 산시(陜西), 장시(江西), 후난성 등의 지역에서 동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기념 활동도 중단됐다.
이러한 기념 활동 축소는 현재 중공 고위층이 격렬한 내부 투쟁을 겪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후진타오를 지지하는 ‘중국청년보’ 17일 보도에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지령이 베이징 중난하이 밖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며 중앙정부의 권위가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후야오방의 정치개혁 시도는 1989년 6.4천안문사건의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에 중공 당국은 지금까지 16년간 그에 대한 일체 기념 활동이나 재평가 움직임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관계 보도에 의하면, 이번 기념식은 후진타오 총서기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회 7명 중 4명이 반대했지만 후진타오 주석이 결국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기념 활동을 강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진타오가 이번 기념 활동을 강압적으로 진행했다고 해서 그의 권위가 올라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진타오가 후야오방의 기념식을 개최한 실질적인 목적은 나날이 확대되는 사회문제 완화, 자신의 강경한 이미지 개선, 일찌기 후야오방을 가장 지지했던 공산당청년단의 지지율 획득에 있으며 실질적인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후진타오의 참석없이 치러진 이번 기념식은 당시 천안문사건 진압으로 권력을 잡은 장쩌민 전 주석과 상하이방 등 반대파에 의해 대폭 축소됐다. 후진타오 주석의 기념식 연설은 이후 원자바오 총리가 대신하기로 결정됐다가 결국엔 우관정(吳官正) 당중앙 규율 감사위원회 서기로 바뀌었으며 기념식 규모도 2000명에서 300여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산시, 장시, 후난성 등의 지역에서 동시에 실시할 예정이었던 기념 활동도 중단됐으며 이는 지방관료들이 중공 고위층 투쟁에 말려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후야오방의 친구이며 중공 개혁파로 알려진 마오쩌둥의 전 비서 리루이(李鋭) 등도 후야오방에 대한 언론을 공개하지 않도록 강요받았으며 가족들의 외출도 최근 저조한 상태라고 한다.
전 인민일보 편집장 후지웨이(胡績偉), 전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주허우쩌(朱厚澤) 등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 절친했던 자유주의파 지식인들도 일체 초대되지 않았다.
1977년부터 82년까지 후야오방 조수였던 롼밍(阮銘, 현재 대만 거주)은 VOA방송을 통해, 중공 당국의 이번 후야오방 기념 활동은 완전한 허위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를 항상 주장했던 후야오방을 이용, 민주와 자유를 강렬하게 원하는 중국 민중들을 속이는 것이 이번 기념식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관영 ‘중국청년보’는 17일, 전 교육부 장바오칭(張保慶) 부부장의 발언를 인용해, 현재 최대 문제는 후진타오의 정치 지령이 베이징을 제외한 각 지방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중앙의 권위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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