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국에서 벌어진 반일시위를 주도했다며 중국공산당은 민주화인사 쉬완핑(許萬平. 44)에게 12년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남편이 절대 반일시위를 조직하거나 가담한 적이 없으며 공소장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쉬완핑은 지난 1989년 6.4천안문 사건 뒤, ‘중국 행동당’을 결성해 8년 징역을 선고받았으며 1998년에는 다시 ‘중국 민주당’을 조직함으로써 3년 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고통을 받은바 있다.
나는 쉬완핑을 만난 적이 없으며 그가 만든 ‘중국 행동당’과 ‘중국 민주당’이 어떠한 조직인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인터넷에서 가끔씩 그가 정치평론가일 뿐만 아니라 실제 중국공산당 반대당을 조직한 행동파라는 정보밖에 아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는 우리처럼 해외에 있는 민주인사가 아니라 직접 공산당 독재 아래에서 새로운 반대당을 조직한 인사라는 사실밖에 모른다.
해외 민주운동 단체가 정부에 등록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성명을 좀 발표하거나 서명활동을 벌이고 정치 논평 같은 것을 좀 발표하는 것은 쇠살창 밖에서 그 안에 갇힌 야수에게 침을 뱉고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같이 쉽고 안전하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맨 손으로 쇠살창 안에 들어가 야수와 싸우는 것과 다름없으며 쉬완핑은 바로 그러한 투사들 중의 한 사람이다.
쉬완핑은 가난한 생활을 해왔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뒤, 다른 사람의 밑에서 심부름도 했었고 작은 음식점도 차렸었지만 이러한 일거리마저 중공 정권의 박해 때문에 잃곤 했다. 인터넷에서 쉬완핑과 그의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자는 호소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줄곧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쉬완핑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정신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쓴 시에서 “나는 침묵하는 양이 아니며 독립적인 사유가 없는 노예가 아니다, 나는 금전과 재물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며 나의 최후의 선택은 너(공산당)와 결사 투쟁하는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중공 정권은 경제적인 압박으로 쉬완핑을 굴복시키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이번에 엉뚱하게도 반일시위를 구실로 그에게 12년 중형을 선고했다. 야수와의 싸움에서 쉬완핑은 결국 희생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민중의 각성 혹은 자신의 서약을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쉬완핑이 또 다시 판결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여 중공 정권을 질책했지만 중공은 다른 사람들의 질책으로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습관이 없다.
연말을 맞으며 멀리서나마 쉬완핑이 석방될 때까지 몸에 상처가 적게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글/ 차오건(草根, 보쉰)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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