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 간에 처음 정부차원의 대화를 이끌었던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 왕다오한(汪道涵.90) 회장이 24일 새벽에 사망했다.
중국 언론들은 장쩌민 전 공산당 총서기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왕다오한의 사망을 두고 ‘홍조국사(紅朝國師, 주-공산당 왕조의 국사라는 의미)’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꺼냈다.
왕다오한은 장쩌민의 삼촌 장상칭(江上靑)의 옛 부하로, 장상칭의 양아들이었다고 꾸며대는 장쩌민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가 최고 권력자가 될 때까지 뒤에서 밀어준 이유로 ‘홍조국사’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그러나 왕다오한은 중국 봉건왕조 시기의 국사들처럼 최고 권력자의 뒤에서 국가 사무를 좌우지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3권을 한 손에 틀어쥔 장쩌민에게 버림까지 받았기 때문에 ‘홍조국사’라는 명예가 사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6.4민주화 운동의 피를 딛고 최고 지도자가 된 장쩌민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부패치국’ 정책을 취함으로써 중국 사회에 부패를 만연시키고 도덕을 타락시킨 장본인이며 1억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한 흉수로, 만약 ‘홍조국사’라는 명예를 받아들인다면 죽어서도 장쩌민과 함께 이러한 피의 빚을 함께 짊어지게 될 것인데 왕다오한이 이렇게 되길 원하겠는가?
대만 문제에 대한 태도만 놓고 봐도 온건파였던 왕다오한은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던 장쩌민과는 아주 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왕다오한은 1997년, “하나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도 중화민국도 아닌, 양안 인민들이 공동으로 만든 새로운 중국”이라고 주장했지만 1999년에는 장쩌민의 핍박에 못 이겨, “세상에는 하나의 중국밖에 없으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으로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로 말을 바꿨다. 이는 장쩌민이 왕다오한을 손에 쥐고 흔들었지 왕다오한이 장쩌민의 국사역할을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
왕다오한은 생전에 줄곧 대만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저지했던 것일까? 다름 아닌 장쩌민이었다!
왕다오한은 ‘홍조국사’라는 딱지를 떼야만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글/ 린바오화(林保華, RFA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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