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공 정권의 대규모적인 전통문화 파괴로 대부분 유물이 소실된 가운데 살아남은 행운아 자금성도 사실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 말 정신먀오(鄭欣묘) 중국 문화부 부부장 겸 고궁박물관장은 ‘광명일보’에 발표한 글에서, “정권을 잡은 초기부터 문화혁명시기까지 봉건 잔재라는 이유로 중공이 줄곧 자금성을 대규모로 개조 혹은 없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막을 보도한 베이징 ‘랴오왕(瞭望)’지 최신호에 따르면, 대약진 운동이 시작된 1958년, 베이징시는 천안문광장과 자금성에 있는 건축물들을 모두 없애고 큰 꽃밭으로 개조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베이징 도시건설관리국 건축사였던 타오쭝전(陶宗震)은 지도부의 한 간부가 “봉건적이고 낙후한 것들을 타격해야 한다”며 “천안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국무원사무실을 짓자”고 주장했다고 회고했다.
대약진시기 농민들이 강철만 제련한 ‘덕분’에 1959년, 중국에는 전국적인 대기근이 찾아와 3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면서 고궁 개조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간 큰 공사를 진행할 여력이 없었던 중공 정권은 ‘찌꺼기 건축물’을 제거한다며 내시와 궁녀들이 살았던 작은 건축물 등을 없애버렸다.
대기근이 지나간 60년대 초 제기된 개조방안에서는 ‘인적이 드물고 낙후하다’는 이유로 자금성 내에 동서로 뻗은 길을 내고 문화전(文華殿)과 무영전(無英殿)을 오락장소로 만들려고 했다.
당시 이를 필사반대했던 루딩이(陸定一) 선전부장과 일부 전문가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마오쩌둥에게 이 일을 저지할 것을 요청했으나 마오쩌둥은 “일본의 망국노가 되었을 때도 울지 않던 것들이 낡은 집 몇 채 허문다고 눈물을 흘리다니 말이 되는가?”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문화혁명이 폭발한 1966년, 중공은 봉선전(奉先殿)에서 혁명 조소전을 열고 공(工)자 형이었던 봉선전을 직사각형으로 뜯어 고쳤으며 마오쩌둥 초상을 그 안에 걸어 놓았고 조소전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봉선전 앞에 있던 제사용 화로를 제거했다.
그 뒤 또 새로운 ‘고궁 건축물정리 방안’이 나오면서 자금성의 순정문(順貞門), 천일문(天一門), 문화전(文華殿), 건륭(乾隆)화원의 편액이 모두 제거됐다.
이와 동시에 중공 당국은 고궁 중심 건물인 태화전(太和殿)의 황제 보좌를 넘어뜨리고 그 바로 앞에 총으로 보좌를 겨냥하고 있는 농민상을 앉히며 전 앞에 태화전보다 높은 혁명 구호판을 세우려 계획했다.
당시 황제가 태화전에 들어가 큰 행사를 치르기 전에 휴식하던 곳인 중화전(中和殿)은 실제로 ‘인민휴계실’로 바뀌었지만 봉건사상을 대변하는 궁전, 편액 등을 전부 없앤다는 계획은 나중에 문화혁명의 발전과 더불어 당 내부 투쟁때문에 실행되지 못했다.
현재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 마오쩌둥 초상과 공산당 표어를 버젓이 걸어놓은 천안문 성루만 봐도 고궁에 대한 중공 정권의 '유린'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글: 중국공산당의 전통문화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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