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올해는, 문화혁명 개시부터 40주년으로 문화혁명이 수습된 지 30주년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공 당국은 이를 채택하지 않고 관련 단체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에 홍콩 ‘성보’는, 베이징 국방대학 왕녠이(王年一)교수의 저서 ‘대동란시대’ 재출판 후기를 인용해,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장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의하면 중공 당국은, ‘문화혁명‘에 대한 관심도를 억제하기 위해 신문지상에서 회고록이나 회상록을 싣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도 ‘문화혁명(文革)’을 검색할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작년에 중국 매스컴은 ‘문화혁명’에 관한 회상록을 몇차례 게재했지만 중공 지도층은 관계 보도나 활동을 억제한 바 있다. 동시에 올해에는 ‘중공 당설립 85주년’, ‘홍군장정 승리 70주년’에만 집중해 대중의 이목을 끌도록 지시하고 있다.
순자정(孫家正)은 중국 문화부장은 3월, 중공 당국이 ‘문화혁명’ 회고 활동을 하지 않을 예정이므로 건설적으로 협조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 국민들의 의식을 통제하는 중공 선전부는 현재, ‘문화혁명’에 관한 도서 출판을 허가하고 있지 않고 ‘문화혁명’을 테마로 한 영화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3월 하순에는 중국촬영가 협회 회원 리샤오빈(李暁斌)등이, 베이징 미술관 부근의 술집에서 작은 ‘문화혁명 사진전’을 개최하려다 경찰 당국에게 ‘중앙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접수가 좌절됐다고 한다.
문화혁명 시기 당국의 박해를 받았던 산둥대학 퇴직 교수 쑨원광(孫文光)은 “문혁을 철저하게 조사할 경우, 마오쩌둥 한 사람만 심판대에 오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같은 인물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우며 나중에는 공산당 자체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당국은 있는 힘을 다해 문화혁명을 담담하게 만들고 망각하도록 우민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렇듯이 중공 정권은 현재 민중들에게 문화혁명을 철저하게 부정하게 하고 지난 과오를 숨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협위원이자 작가협회 회원인 양쾅만(楊匡滿)이 ‘문화혁명 박물관’개설을 제안하며 48명의 관련 인사들에게 지지서명을 얻어낸 사건이나 베이징 대학생들의 문화혁명에 대한 인식변화 등, 중국 민중은 중공 당국이 비극적인 역사를 정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문화혁명: 무산 계급 문화대혁명,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라고도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중국 공산당 지도부내부의 권력 투쟁을 해소하기 위해 마오쩌둥이 사상과 문화의 개혁을 실시한다고 하는 명의로 선동한 폭력적인 대중운동. 이 결과, 중국에서 정치.사회.사상.문화의 전반에 걸쳐 사실상 내란 상태를 초래했다. 처음에는 사업가 등 자본가층이나 학자, 의사 등 지식인층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공산당원 내부에도 탄압이 미쳤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많은 중국 유.무형 문화재가 파괴됐으며 문화혁명 기간 중 사망자, 행방불명자 수는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에 달한다고도 말한다. 당시 문화혁명을 겪은 이들의 회상에 의하면 이는 중국의 전통문화와 도덕성을 완전히 파괴시킨 인간적인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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