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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팔로군의 깡패 논리’

편집부  |  201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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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닐 때는 중공(중국공산당)의 ‘대약진운동’ 실패로 대기근이 발생한 시기였다. 당시 나와 가장 친한 동창생이 그녀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나는 큰 충격을 받아 그 이야기를 평생 잊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 비밀을 절대로 다른 동창들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 집에서는 가정회의를 여는 습관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이상하게 생각됐다. 매주 토요일, 밤이 깊어지면 이 동창생의 할머니는 가족에게 문과 창문을 단단히 잠그고 불을 끄게 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두 같이 모여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그녀 집안의 피눈물 나는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신다고 했다.

 

할머니는 예전에 집이 아주 부유했고 재산이 무척 많았다. 할아버지는 능력이 뛰어나고 총명했으며 집안에는 논도 매우 많았다. 그리고 천을 파는 가게를 열어 일가족은 행복하고 넉넉한 살림을 누렸다. 공산당이 중국을 ‘해방’하던 시기, 팔로군이 그녀의 고향을 지나가게 됐으며 그들은 그녀 집이 매우 넉넉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몇몇 팔로군 간부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팔로군은 입을 것이 없고 전투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니 천 몇 필과 돈 얼마를 헌납하라고 했다. 그들이 달라고 하는 돈과 재물은 거의 집안 재산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성격이 강하고 고지식한 분이라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근검절약 해서 집안을 유지한 것으로 여러 해 동안 힘들게 모은 재산인데 왜 당신에게 주어야 합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꼭 주어야 한다. 이후에 우리는 또 올 것이고 당신들은 잘 알아서 하라.”

 

며칠 후 그들은 또 찾아왔고 매우 무례한 태도로 잘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모은 가업인데 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한 두 번은 거절할 수 있어도 세 번째로 거절하면 안 되니 잘 생각하고, 그 때가 돼서 후회하지 마라”고 했다. 그 당시 가족들 누구도 “후회하지 마라”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들이 세 번째로 찾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이 팔로군들은 “당신 우리와 함께 가자”고 했고 할아버지는 별 생각 없이 문을 나섰다. 얼마 안 되서 밖에서 총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예감이 좋지 않아 가족을 데리고 뛰쳐나갔다. 이때 할아버지는 이미 총살 돼 피바다에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와 가족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런데 이 깡패들은 “보았느냐? 계속 내놓지 않으면 바로 이런 끝장을 본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비통함을 참고 많은 재산을 바쳤다. 이들은 염치없이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이렇게 했다면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 이들은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총구에서 정권이 나온다”는 깡패 논리를 실증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해된 후 온 가족은 거대한 슬픔에 빠졌지만 내색하지도 못했다. 울어도 야간에 이불 속에서 몰래 울었다. 할아버지가 ‘정부’에 의해 총살됐으므로 ‘죄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일가족은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고 남들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

 



동창생에게서 이 집안의 역사를 들은 후 당시 나는 비록 어렸지만 어린 마음 속에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교과서와 선전 속에서는 ‘팔로군은 민중의 바늘 하나, 실 한 오리 가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노숙했다’, ‘백성들의 쌀 한 톨도 그냥 갖지 않았다’ 등등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동창생이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착하고 우수하며 내가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그녀 말을 믿었다.

 

나이가 들고 겪은 일들이 많아지면서 또 ‘9평 공산당’을 본 후 나는 철저히 깨닫게 됐다. 공산당은 언제나 폭력으로 백성들을 탄압했으며 거짓말과 사기로 한 세대 또 한 세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동창생과의 일을 몇 년이 지난 후 어머니에게 알려주었다. 의외로 어머니는 “그 아이가 알려주었니?!”라며 화들짝 놀라셨다. 그리고는 “아이구, 나도 알고 있었단다”라고 하셨다. 실은 외할머니가 내 동창생 할머니와 같은 마을에 사셨기 때문에 일부 일들을 알았다는 것이다. 외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동창생의 할아버지가 살해될 당시 겨우 40여세였고 할머니는 이후 홀몸으로 지냈다고 한다. 그 후 오랫동안 그녀 집은 공포 속에서 생활하게 됐고 만두 하나로 한 끼를 때우거나 고기를 먹고 싶어도 몰래 사와서 품에 감춘 채 야밤에 먹는 등 매우 조심스럽게 살았다.

 

이렇게 살았지만 이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그녀의 집은 또 무사하지 못했다. 그녀 집은 공산당에 의해 ‘지주’성분이 있다고 정해져 수천 만의 ‘흑오류(黑五類: 역주- 문화혁명 당시 반동 집단으로 간주됐던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악질분자, 우파)’ 가정과 같이 고향으로 송환돼 농촌 노동개조를 당했다. 고향에 돌아간 후 대대에서는 그녀 가족에게 낡은 집 한 채를 배분했다. 그 집은 여러 해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녀 집에 배분된 일감은 고되면서도 돈을 벌지 못하는, 시골사람들도 하기 꺼리는 힘든 일들이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매 세 명은 미모가 뛰어나고 또 총명해 대대 간부의 눈에 들었다. 그리하여 이 간부는 자매들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시집올 것을 강요했다. 물론 자매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간부들은 그녀 가족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 일감이 없으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돈이 없어 식량을 살 수 없자 온 가족은 다급해서 껴안고 슬프게 울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자 자매들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본인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시집을 갔다.

 

이후에 동창생이 다시 도시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아이 둘을 둔 엄마가 됐다. 나도 가정을 이룬 몸이었다. 동창생은 이렇게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지만 나를 만나자마자 울면서 하소연했고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말했다. “알고 있니? 나는 계속 너만 찾아 다녔고 너를 만나면 한바탕 울고 싶었고 여러 해 동안 받은 고통과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었어.” 그녀의 피눈물로 얼룩진 하소연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중공 악당의 잔혹한 박해를 당한 불행한 가족이 중국에서 이 동창생 한 가구만 아닐 것이며 박해 받은 가정의 배후에는 모두 골수에 사무칠 피눈물의 역사가 있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살인의 역사다. 과거의 역대 운동과 대기근에 이르기까지, ‘문화대혁명’, ‘6.4천안문사건’을 포함해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생명을 잃었다. 지금은 또 ‘진선인(眞善忍)’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려는 파룬궁수련생들을 잔혹하게 박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장기를 산채로 적출해 고가에 매매하고 있는데 중공의 두 손에는 중국인의 선혈이 낭자하게 묻어있다. 하늘도 이들은 저지른 죄악은 무시하지 않는바 중공 멸망은 이미 역사적 필연이 됐다.

 

마침 동창생의 말처럼 할머니는 매일 가정 회의를 열어 당부하셨다고 한다. “너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억해야 한다. 예전에 우리 집은 매우 부유했는데 공산당이 우리 집안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우리 집을 망하게 만들었단다.”

 

그렇다. 우리는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고 중공이 잘하는 수작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한 손에는 거짓말로 민중을 속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살인을 저지르는 칼(국민을 향해 영원히 치켜든 칼)을 들고 있다. 끊임없이 운동을 만들어내고 또 바로 잡는데 이번에 잘못 죽였다고 하면서 다음 번에 또 죽이는바 중공의 사악한 본성은 개변되지 않는다. 공포 속에서 불법 정권을 수호하는 것만이 중공의 목적이다. 국민은 영원히 제멋대로 죽일 수 있는 대상으로서 이번에 당신이 요행히 도망쳤다고 할지라도 다음에는 또 그들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오로지 마음속으로 이 사악한 살인당을 던져 버려야 그들은 더 이상 전 국민을 정권 유지의 희생양으로 삼지 못할 것이다.

 

중공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세 가지 조직에서 탈퇴(三退)하는 것은 정의적인 수호이며 또한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는 시기에 자신을 구할 수 있는 행동이다. 모든 선량한 사람들, 중공의 운동에 박해받은 사람들이 하루 빨리 ‘삼퇴’를 하고 평안(平安)을 얻기 바란다. 사악한 중공을 따라서 훼멸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말고 자신의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길 바란다!

 

출처/ 밍후이왕(明慧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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