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정치에 입문하기 전 저우융캉은 근 30년간 석유업계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첫번째 아내가 차량 사고로 사망한 후 그가 장쩌민의 조카와 재빨리 결혼해 중공 지도부로 가기 위한 길을 닦았습니다. 1998년 중국 국영 석유회사 사장으로 있던 저우는 중국 국토자원부장에 임명되었고, 1년 후 저우는 쓰촨성 당서기가 되었습니다.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을 3개월만에 근절하겠다고 맹세할 때 저우는 장의 믿을만한 심복으로 파룬궁 박해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파룬궁 웹사이트 명혜망에 따르면, 저우는 쓰촨성 당서기로 있을 때 체포된 파룬궁 수련자들을 고문하고 세뇌하는데 특히 적극적이었던 감옥, 노교소 혹은 공안 담당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명령했습니다. 당시 쓰환성에서 적어도 217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고문과 학대로 사망했습니다.
명혜망에 따르면 장쩌민에 의해 파룬궁 탄압을 목적으로 설립된 610 사무실에서 흘러나온 공식 자료에는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과 뤄간이 경찰에게 ‘파룬궁 수련자를 개조하는 동안 필요하다면 약물을 사용할 것’을 허용한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11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앙 신경체계를 손상시키는 약물 주입으로 사망했습니다. 저우는 2001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비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장의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 참여해 2002년 12월 저우는 이 분야의 경험이 없었음에도 공안부장자리에 올랐습니다. 파룬궁박해 국제 추적조사위원회(WOIPFG)에 따르면 2001년 11월 그가 중앙 610 사무실 부책임자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쓰촨성에서 쓰던 파룬궁 탄압 방법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했습니다.
동시에 저우는 정권의 중앙부인 정치국 상임위원이 되었습니다. 2007년 저우는 공산당 정법위 서기로 승진해 모든 정보, 법과 질서, 보안, 구금, 법원 및 검찰원을 망라한 사법계통을 관리해 왔습니다. 정법위 서기로서 저우는 2008년 쓰촨지진에서 형편없이 지어진 이른바 ‘두부공사’ 건물에 갇혀 사망한 학생들의 부모들을 침묵하게 했고, 분신한 승려들의 저항이 광범위하게 보도되자 군대를 티베트에 진주시켰으며 해외 중국 학생들에게 첩보업무를 종용하는 등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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