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원자바오 총리가 해외에 망명한 6・4 민주화 운동 주역들의 귀국 허가를 최고 지도부 내부에 제안했다고 해외 중문매체가 보도했습니다.
당시 학생민주운동이 무력 탄압된 후 중국 정부는 학생 지도자 20명을 지명수배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국외로 탈출했고, 다른 일부는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후에 주요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 일부 지식인과 체재 내 간부도 잇달아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망명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원 총리는 발언 중 그들은 사실상 해외 추방되어 오랫동안 귀국할 수 없었고 부모 사망시 장례도 치를 수 없었던 것을 거론하면서 ‘전혀 인도적이지 않다. 인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개 나라를 사랑하고 정부의 일부 잘못을 비판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악의가 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원 총리는 또 해외 공관이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해외 적대세력’이라고 정하는 방식을 비판하고 ‘만약 정부가 인민의 비판을 적대시한다면 그 정부는 반드시 인민에게 경멸을 받는다’라는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왕단(王丹)을 비롯해 6・4 민주화 운동 후 망명해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6명은 지난 6일, 중국 최고지도부 앞으로 공개장을 발표하고 일시 귀국 허용을 탄원했습니다.
원 총리가 6・4 민주화 운동 관계자의 귀국을 촉구한다는 보도에 대한 진위여부는 현재 확인되지 않았으나,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달 원 총리가 최고 지도부 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평가를 제안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한편 6・4 민주화 운동 당시 학생들을 지지했던 천체물리학자 팡리즈(方励之)가 망명 중이던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시에서 지난 6일 타계했습니다. 향년 76세로 22년간 조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당시 중국 과학기술대 부총장 팡리즈는 민주이념을 제창하고 중공의 정책을 비판해 1986년 학생운동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1987년 당적과 부총장직이 박탈되었습니다. 6.4 민주화 운동 당시 학생과 민주세력을 지지했던 그는 1989년 천안문에서 대학살이 자행된 후 미국으로 망명해 애리조나대에서 천제물리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미 국무부 빅토리아 뉼런드 대변인은 9일 아침 브리핑에 앞서 애도를 표했으며,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그의 가족에게 서한을 보내 애도를 표하는 등 해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타계를 애도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기간 그에 대한 보도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한 홍콩과 대만의 언론보도가 중국 웹사이트에 전재됐으나 곧바로 삭제됐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소리방송(VOA)은 중국 정부의 개인정보 파괴정책이 중국인들의 단체기억상실을 가져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시사주간지 ‘베이징의 봄’의 후핑(胡平) 편집장은 중국의 언론 봉쇄정책을 비판하면서 '중공 독재정권은 한 개인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 심지어 존재 자체도 온갖 통제와 차단을 통해 존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는데, 일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나약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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