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에게 독살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는 영국에서도 괴한에게 표적이 됐었다고 영국 데일리 미러가 전했습니다.
헤이우드의 전 보디가드 레트씨의 증언을 전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구카이라이, 그의 아들 보과과 그리고 헤이우드가 영국의 본머스에 살고 있을 당시 중국에서 온, 살인 청부업자로 생각되는 괴한 3명이 나타났습니다. 3명은 무술에 통달하고 다부진 체격이었습니다. 그들은 헤이우드 등이 살고 있던 건물에 들어가려고 보디가드 레트씨와 격투를 벌였고, 부상해 도망갔습니다.
레트씨에 따르면,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는 이 격투를 건물 안에서 지켜봤으며, 이 사건 발생 후 헤이우드와 구카이라이의 관계는 더 친해져 끊임없이 외출해 밀회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헤이우드는 보시라이 가족과 친구가 됐고, 보시라이의 아들을 영국에 유학시켰으며 그의 보증인 역할도 했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구카이라이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기 매매와 그 사체도 판매했으며, 헤이우드는 이 비즈니스에 깊게 관련돼 구카이라이의 의뢰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해외에서 돈세탁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보시라이는 해외 각국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고소됐고, 호주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후 원자바오 총리와 우이위안(吴仪元) 대외경제무역위원회 주임이 연계해 보시라이를 충칭시에 묶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도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의 랴오닝성 시절의 부패문제와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장기적출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기위 조사 등으로 구카이라이는 주위 인물들에 대한 정보유출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헤이우드는 그의 친구에게 ‘구카이라이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시라이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배우자와 이혼하도록 요구했다. 나도 아내와 이혼을 강요받았지만 거부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후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를 더욱 의심했고, 그는 중국인 아내와 함께 중국을 탈출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헤이우드가 독살되기 1개월 전인 2011년 10월 중기위는 왕리쥔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시라이에게 내쳐진 왕리쥔은 헤이우드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진입해 망명을 요구했습니다. 이로 인해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정변 모의, 헤이우드 독살 및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 적출과 그 사체가 인체표본으로 만들어져 판매된 사실이 밝혀지게 됐습니다. 지난 9일 열린 구카이라이에 대한 재판을 시작으로 지금부터 전대미문의 범죄가 폭로되는 막이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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