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하이타오(海濤. 미국의소리방송 기자)
[SOH]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압군의 총성이 울리자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당국의 추적을 피해 피난가기 시작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비밀 통로를 거쳐 홍콩에 도착한 뒤 서방국가로 망명했다. 10여 년 전 ‘노랑참새행동’이라 불렸던 천안문 양심수 비밀구출 행동은 최근에야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출행동 지휘자는 홍콩 사업가
구출 행동 조직의 지휘자는 중국 대륙 출신의 홍콩 사업가 천다정(陳達鉦. 65)이었다. 28살 때 홍콩으로 간 그는 천안문사건이 발생한 1989년 당시 이미 홍콩에서 유명한 기업가로 알려져 있었다.
중공 당국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학생과 지식인들을 수배하기 시작하자 홍콩의 시민단체 ‘지련회’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가 나중에 천에게 도움을 청했다.
천과 지련회는 그 후 슝옌(熊焱), 리루(李錄), 우얼카이시, 천이쯔(陳一咨), 옌자치(嚴家祺) 등 지금도 해외에서 활약 중인 많은 학생 리더와 지식인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천은 지난 5월 31일, 홍콩의 천안문사건 기념행사 때 처음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고 “많은 댓가를 치렀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의 구출행동을 잘 알고 있는 홍콩 민주촉진회장 전선강(甄燊港)에 따르면 천은 천안문사건 이후 9개월 동안 양심수 133명을 구출해냈다. 그 과정에 자동차, 기차, 비행기, 보트 등 교통수단이 동원됐으며 마피아 조직 두목, 광둥 무장경찰까지 개입했다.
구출 행동의 좌절
1996년, 한 무리 괴한들이 칼을 휘둘러 천에게 상처를 입히고 달아났다. 그 때 입은 상처로 천은 지금도 왼팔과 왼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며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천은 사실 1991년에 베이징에서 공안부 고위층을 만나고 ‘노랑참새행동’을 중단했다. 1989년 10월과 이듬해 초, 천의 수하 2명이 광둥성에서 학생 리더 두 명을 구출하다 체포되어 각각 징역 4년과 4년 반을 선고받았던 것이었다.
천은 “그들이 나의 사람을 붙잡았기에 타협하러 갔다. 나의 사람을 풀어주면 앞으로 구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도 미안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천은 그러나 아직 공산당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한편 지련회 스투화 회장은 ‘노랑참새행동’과 관련해 지금도 말을 아끼며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해왔다.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밖에 천안문 학생 리더 2명을 구출하다 수감된 홍콩의 다른 한 사업가 뤄하이싱(羅海星)은, 자신은 구출을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모두 자신이 직접 뛰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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