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광둥성 중산(中山)시에서 지난 25일 일어난 이주노동자들과 경찰과의 충돌이 27일까지 계속해서 확대됐습니다.
중산시 사시(沙溪)진의 혼란은 27일 이른 아침까지도 계속돼 중산역과 도로 봉쇄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푸화(富華)역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으며, 시위는 점차 둥관(東莞)시 쪽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한편 현지 텔레비전 방송은 ‘사건은 시와 진에 의해 타당하게 처리되었다. 군중도 서서히 진상을 알 수 있으며, 사건의 주요인물도 경찰에 붙잡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격자에 따르면 현장에서 현지관료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직접 특수경찰을 투입했기 때문에 대치상황이 더욱 더 격렬해졌습니다. 27일에는 현지 유치원과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충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에 대해 시사평론가 자오페이(趙培)는 오랫동안 차별로 인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얼음 석자가 하루 아침에 얼 수 없듯이 이주노동자들은 차별을 받아 오랫동안 불만이 대량으로 축적됐다. 제도면에서는 중공의 토지 및 호적제도가 원인이다. 호적제도에 의해 2.6억명의 가족이 붕괴돼 5,800만명의 아이들이 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됐다. 베이징의 경우 2,000만명의 인구중 800만명이 외래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발전개혁위원회의 리티에(李铁) 주임은 “호적제도를 없애면 재정의 일부를 외래 인구에게 사용하게 된다. 즉, 호적 인구에 대한 서비스 품질이 저하된다. 따라서 이는 간단한 개혁이 아니고, 이익관계의 분배와 조정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오페이는 리 주임의 이 같은 변명이 터무니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익분배가 불공평하기 때문에 개혁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중국 도시지역 주민의 복지는 이주노동자보다 좋기는 하나 여전히 부족하고, 그 원인은 중공의 세수 대부분이 부패로 사라졌고 그 부담이 이주노동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습니다.
도시지역에서 호적이 없이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농민들은 현재 6,000만에서 8,000만명에 이릅니다. 그들은 호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한 차별을 받고 아이는 정상적인 교육도 받지 못합니다. 자오페이는 지금 중국사회가 명나라 말기와 상당히 닮았다면서, 토지합병으로 토지를 잃은 대량의 농민들은 유랑민이 됐고 그 마지막에는 이자성(李自成)이 유민을 이끌고 명나라를 무너뜨렸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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