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일반인이나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정부의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탄원하는 민중이다.
탄원민중들은 비록 기타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약세 집단에 속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바보’ 서민이나 한쪽 뺨을 맞고 다른쪽 뺨을 들이대는 ‘착한’ 서민이 아니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양민’이나 아부를 일삼는 ‘훌륭한’ 백성은 더욱 아니다. 불평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도리와 증거로 공평한 말을 해 줄 것을 요구하며 목적에 도달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들만이 탄원민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탄원민중들은 간사하고 질기며 염치없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탄원국 국장은 탄원민중이 해결 받으려고 하는 문제는 80%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80%가 지방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그나마 공정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탄원민중의 개념은 마땅히 ‘합법적인 권익이 심각한 침해를 입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지속적으로 상부기관에 상황을 반영해 공정함을 되찾으려는 집단’이라고 해야 맞는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대량의 탄원민중이 나타났고 또 갈수록 많아지고 있을까? 감독받지 않고 은밀한 조작을 하고 있는 권력 집단이 거리낌 없이 서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주요 매스컴에서는 지방정부가 베이징으로 몰리는 탄원민중들을 어떻게 차단하고 있는지만 장황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탄원민중과 정부의 모순이 갈수록 첨예해 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탄원민중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거의 모두 지방 관리들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더욱 많은 관리들이 연루된다. 중국 관리들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이익집단이므로 그들이 지키고 있는 곳에 가서 공정함을 되찾기란 맨몸으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과 다를바 없다.
당위원회에 고발한다면? 평소 당은 일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탄원민중들을 대할 때면 태도가 바뀐다. 그들은 탄원민중에게 “당은 거시적으로 중국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구체적인 문제는 문제가 생긴 곳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라”고 말한다.
인민대표대회에 고발한다면? 헌법은 인민대표대회에 정부를 감독하는 신성한 권한을 주었지만 누가 실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건국이후 허난성에 탄원민중들을 위해 선뜻 나선 야오슈룽(姚秀榮)이라는 인민대표가 있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민대표 자격이 취소되었다. 일부 탄원민중들은 인민대표들이 인민대회당에서 어떤 요리에 어떤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예 찾아가지 않는다.
법원에 고발한다면? 정치법률위원회 아래에 있는 법원, 검찰원은 직원 임명과 해직, 재정 수입과 지출, 복지후생 등을 모두 지방에서 장악하고 있기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도 없다. 선양(審陽)시 대법관 자오메이구이(焦玫瑰)가 이에 대해 아주 확실하게 말했다. “관직이 큰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재판하면 된다.”
매스컴에 고발한다면? 먼저 언론계에 유행하고 있는 말을 들어보고 고발하든지 말든지 하라. “우리는 한 마리 개와 같아 누구를 물라고 하면 누구를 물고 몇 번 물라고 하면 몇 번 문다. 어느 신문사에서 감히 지방관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소장을 받아 보고 감히 기자를 파견해 조사하겠는가?”
탄원민중들은 지방에서는 하소연할 곳이 없기에 탄원하러 베이징에 간다. 중국 사람들은 ‘백성은 관리와 맞서지 말아야 한다’는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알고 있다. 만약 극심한 고통이나 깊은 원한,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쉽게 가정과 생업을 버리고 목숨을 바쳐 탄원길에 오르겠는가?
탄원민중들은 베이징에 가면 당연히 공평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매 한가지 사건을 해결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여러 가지 조사와 절차를 거쳐야만 결론을 내릴 수 있기에 베이징에서는 탄원민중이 제출한 서류를 다시 지방에 넘겨버린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넘겨받은 서류를 축구공 마냥 이리저리 차버린다.
정부에서는 탄원민중들을 대처하기에 바쁘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탄원민중은 그보다 몇 배 더 힘들다. 때문에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분신자살하고 극독물을 마시거나 밧줄에 목을 매는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항의하는 탄원민중들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사회모순을 잘 풀어나가는 선진국가들을 살펴보면 모두 권력기관을 감독하고 제약하는 기관을 따로 두고 있다. 행정, 사법, 매스컴, 당과 정부, 감독기관을 모두 독립시킴과 동시에 서로 감독하고 제약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야만 여러 집단의 이익이 충분한 보호를 받고 사회 모순이 공개되어 투명하게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야 말로 대부분 사회모순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탄원민중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의 현행 체제 하에서는 탄원민중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 때문에 베이징 정부는 지방의 진실한 상황을 알 수 있고 지방의 진실한 상황을 알아야만 정부 정책이 어떤지 검증할 수 있으며 민심의 동향을 알 수 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고 국민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으며 마음을 국민에게 쏟아야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실 탄원민중들은 당과 정부를 믿고 있기에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탄원길에 오르고 있다. 탄원민중과 폭동을 일으키는 민중들은 모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지만 탄원민중은 당과 정부를 믿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절대 그들의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깨뜨리지 말기 바란다.
한 중국네티즌의 글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http://www.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