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자 개혁에 따라 자형(字形)을 간략하게 고친 한자인 간체자는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부터 시작됐다. 1956년 많은 인력과 자금이 투입되어 문자개혁이 시행되면서, 2천년 역사의 한자는 불과 몇달 사이에 변형되었다. 다른 견해를 제기하면 '우파'로 몰려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에 이 정책은 반론의 여지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공산당이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오랜 역사와 전통을 단절시킨 문자개혁은 '문제개혁'이 됐다. 고문(古文)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50년대 이전 문자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벽이나 바위에 새긴 문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요즘 중국 젊은이들은 고문(古文)은 커녕 홍콩이나 대만에서 쓰여진 현대소설도 잘 읽지 못한다.
도서관에도 본래의 글자인 번체자로 쓰여진 고문(古文)이 많지만, 간체자로는 검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간체자와 번체자 두 가지 검색기능을 갖춰야 했다.
간체자 사용으로 대만과의 문화교류에도 어려움이 발생했다. 홍콩과 대만은 번체자에 아직 익숙하기 때문에 중국 대륙의 젊은이들은 홍콩, 대만의 미디어 정보를 읽기가 어려워 졌다. 반대로 많은 해외 화교들은 간체자 뉴스를 보기 싫어한다.
물론, 간체자 운동의 배경에는 당시 군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들의 교육수준이 낮았다는 이유도 있다. 당원과 군인들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것. 문자개혁은 더 시급해져야 했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개혁을 하더라도 찬성파와 반대파는 공존하며 이들의 검토, 균형기능이 작용을 한다. 학자들의 논의도 없이 진행된 문자개혁은 빠르게 진행됐지만, 중국어 문자 시스템을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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