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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新年)’과 ‘춘제(春節 )’ 어떻게 다른가

관리자  |  200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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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과 귀경길을 걱정하던 민족의 최대의 명절 설이 짧은 연휴로 마무리 됐다. 우리에겐 짧게 지나간 명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주일 이상 연휴를 즐기는 중국에서는 아직 설이 끝나지 않았다. 지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중국에서는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신년연휴가 계속된다. 이 기간에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인구가 무려 18억에서 21억에 달한다 하니 숫자로만 보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본래 설을 ‘신년’이라 불렀는데 중국공산당은 1949년 정권을 세우기도 전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을 채용하면서 양력 1월 1일을 ‘신년(新年)’ 또는 ‘원단(元旦)’으로 명명하고, 전통 명절인 음력 정월 초하루는 ‘춘절(春節)’로 그 명칭을 바꾸어 버렸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구정(舊正)’으로 명칭을 바꿔버린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중국인들이 ‘설’ 즉 ‘신년(新年)’을 ‘춘절’이라고 고쳐 부르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단순히 명칭이 바뀐 것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신년’은 정월 초하루 하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전통적인 설을 쇠는 것은 섣달 초파일부터 시작하여 정월대보름에 끝나는데 이는 서양의 ‘성탄절 휴가(Holiday Season)’보다 더 긴 것이다. 설의 의미 또한 서양의 휴가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데, 주제는 기본적으로 지난 일 년 동안 신의 보살핌에 감사드리고 다가오는 해의 복을 빌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전통을 회고하는 등 깊은 문화적 내포를 담고 있다. 음력 12월 8일을 중국에서는 속칭 ‘납팔절(臘八節)’이라고 부른다. 이 날이 되면 모두 납팔죽(臘八粥 동지팥죽)을 마시는 풍속이 있다. 전통 역법에서는 음력 12월을 ‘납월(臘月)’ 즉 섣달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납(臘)’이란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납(臘)이란 합(合)이니 여러 신들에게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고대 상(商)나라 시대 중국에는 천지, 신령, 조상을 함께 제사 지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를 ‘합동제사(合祭)’라고 불렀다. 1년 춘하추동 4계절에 4차례의 큰 제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겨울에 지내는 동제(冬祭)의 규모가 제일 컸다. 그 이유는 한 해를 보내는 때에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마땅히 신명(神明)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제는 흔히 12월에 많이 행했기 때문에 주(周)나라 때부터 12월을 납월이라 불렀고, 동제를 거행하는 날을 ‘납일(臘日)’이라 불렀다. 납팔죽(臘八粥)을 마시는 풍속은 불교에서 온 것인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가 이날 양치는 여인이 끓여준 죽을 먹고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얻어 성불(成佛)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후 섣달 초파일은 섣달의 중요한 명절이 되었다. 사람들은 납팔죽(臘八粥)으로 신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여러 가지 색깔의 쌀과 과일을 섞어 쑨 납팔죽(臘八粥)은 조상의 은혜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다가오는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풍습이었다. 북경 옹화궁(雍和宮) 안에는 옛날 구리 가마가 있는데 이는 황실에서 납팔죽(臘八粥)을 끓여 주던 도구였다고 한다. 이날 절에서는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욕불회(浴佛會), 경문 읽기, 죽 뿌리기 등의 행사를 거행했다. 섣달 초파일 후에는 섣달 이십삼일이 큰 명절이었다. 이날을 속칭‘작은 설(過小年)’이라고 부르는데 부엌신을 모시는 날이다. 민간에서는 부엌신이 온 집안 식구들을 단속하다가 섣달 23일이면 보고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그 후 섣달그믐이 되면 다시 부엌신의 새 초상을 붙이는데 이런 행위를 ‘부엌신을 영접한다’고 불렀다.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의 일체 일은 모두 신이 장악하고 있으며, 배치하고 단속한다고 믿었다. 부엌신 뿐만 아니라, 우물에는 우물신이 있으며 문에는 문신이 있고, 밭에는 또 토지신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신들은 각자 자신의 책임에 따라 인간의 선악을 단속하는데 이런 신들을 마중하고 보내는 일을 모두 섣달 이십삼일부터 그믐날 까지 8일 동안 계속했다. 섣달 이십삼일 이후, 이십사일 혹은 이십팔일에는 대청소를 하는 풍속이 있다. 왜냐하면 이때 뭇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므로 평소에 감히 청소하지 못하던 곳도 마음 놓고 청소해도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설은 고조기에 이른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맞이하는 가운데 제일 중요한 일은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다. 저녁에 온 집안 식구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고 밤을 꼬박 새는 외에도 이날 점심부터 불당(佛堂)에 제물을 차려 놓고 초에 불을 붙여 향을 태우는데 이것을 속칭 ‘기향(起香)’이라고 불렀다. 이때 피운 향불은 초닷새 까지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 이 외에도 천지 상(제사상을 말함)을 놓아 뭇 신들이 하계로 내려오는 것을 맞이해야 하며, 문신을 붙이고, 부엌신을 청하고, 춘련(春聯)을 붙이는 등은 모두 중국 사람들이 신을 존경하는 전통과 관련이 있다. 춘련의 원형은 원래 도부(桃符: 정월에 복숭아나무로 켠 2장의 판자에 각각 두 문신(門神)을 그려 대문에 붙여 악귀를 쫓던 부적)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오대(五代)때 와서 서촉(西蜀)의 왕 맹창(孟昶)이 도부에다 “신년납여경, 가절호장춘(新年納余慶,嘉節號長春)”이라 쓴 것이 정식 춘련의 발단이 되었다. 조상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도 그믐날 밤에 하는 의식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옛 사람들의 효에 대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전통 도덕을 계승한 표현이기도 하다. 정월 초하룻날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새벽에 일어나 옷을 단정히 입고 향을 태우고 폭죽을 터뜨렸다. 대문을 활짝 열고 과일, 차, 술을 대청에 차린 후 천지, 조상에게 절을 하는데 이를 “신년개문대길(新年開門大吉)”이라 부른다. 설 명절기간에는 또 풍부하고 다채로운 묘회(廟會: 명절 때 사찰에서 열리던 시장), 창극, 용춤, 사자춤, 무술, 잡기 등이 공연되어 흥을 돋우었다. 명절을 경축하는 기분은 줄곧 정월대보름 날인 원소절(元宵節)까지 계속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정월대보름날은 도교의 천관대제(天官大帝)의 탄생일이라고 하는데 백성들은 이날 천관대제의 출생을 축하하고 천관이서 복을 내려주길 빌었다. 중국의 전통적인 설 풍습은 천지신명을 존중하고 전통을 회고하는 분위기로 충만했다. 사실 여기에는 또 중화 정통문화의 핵심이 들어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사람들이 겸손하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는 태도로 삶을 대하도록 이끌었다. 풍작을 거두면 사람들은 그것은 ‘신이 좋은 사람들에게 복을 베풀어 준 것’이라거나 ‘조상이 선을 행하고 덕을 쌓은 것’이지 자신이 ‘하늘땅과 투쟁한 결과’가 아니란 것을 믿었던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더 겸손하고 신을 존중했으며, 착한 일을 권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만약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게 되면 그 자신 역시 꺼림칙하게 여겼다. 전통적으로 민간의 제사 내용은 주로 존경, 감사, 반성과 소원을 표현했다. 이것은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재물을 빌고, 벼슬을 빌며, 명예를 비는 ‘제배(祭拜)’와는 구별된다. 중공정권이 들어서고 여러 차례의 ‘시련’을 거친 후 사람들은 진정한 전통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오늘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하늘의 이치(天理)도 믿지 않는다. ‘여전히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하지만 본질은 무신론자로서 이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현실적인 부귀공명과 이익이다. 중공 집권 이후 전통의 의미와 문화적 내포가 사라지고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이런 활동들은 사실상 이미 변이된 것으로 사람의 마음과 도덕을 단속하는 효과를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한다. ‘정월 초하루’를 ‘춘절’로 고친 중국 공산당은 크고 중요한 전통명절(정월대보름, 단오, 추석 등)에 더 이상 휴가를 주지 않았으며, 정치적인 기념일에만 휴가를 주었다. 예를 든다면 ‘5.1’, ‘6.1’, ‘7.1’, ‘10.1’ 등이다. 이렇게 되자 풍부하고 다채로웠던 ‘설 쇠기’가 ‘봄날을 즐겁게 경축’하는 것으로 단순화되었고, 전통적인 명절과 연계된 중국 정통문화의 내포도 끊기고 말았다. 이 후 중공이 전개한 소위 ‘문화대혁명’과 ‘봉건 미신을 타파’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친 정치 운동이 수천 년 동안 전해내려 온 정통문화를 일거에 사라지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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