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왕의 경천외신(敬天畏神: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경외함)을 체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황궁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천의(天意)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수 천 년을 내려오면서 궁전의 형식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변화는 일부 건축의 세부항목에서만 있었다. 이는 '천도(天道)'는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나라 초기 재상이었던 류보원(劉伯溫)은 베이징성 황궁 시공을 책임지고 있었다. 꿈 속에서 옥황상제가 그를 능소전(凌霄殿)으로 초대하여 말했다. “아침에 황제가 황궁 시공을 원했는데, 내가 한 가지 알려주겠다. 천궁보전(天宮寶殿)은 1천 칸(間)인데 속세의 궁전 칸(間) 수는 절대 천궁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네가 황제에게 알려 36 금강과 72 악귀를 요청하면 속세의 황성을 보호해 줄 것이고 평안한 나라가 될 것이다"
류보원은 이 말을 기억하고 명나라 황궁을 지을 때 9백9십9칸 반으로 지었다. 궁전 입구에는 36개의 큰 금박 항아리를 설치했고, 고궁 안에는 72개의 지하수로를 팠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류보원이 요청한 36금강과 72악귀가 황궁을 보호하여 누구도 감히 병사를 동원해 난을 일으키지 못했다고 한다.
역대 황제들은 자신이 천명을 받들었다고 칭하며, 대지와 오곡의 사직을 대표하는 것을 국가 구성의 기초로 여겼다. 매년 봄, 가을의 두 번째 달 상순의 무일(戊日) 새벽, 황제는 사직단에서 대제를 올렸으며, 출정이나 승전 후 개선할 때, 포로를 종묘에 바치는 등 중요한 일을 행할 때는 항상 사직대전(社稷大典)을 올렸다.
옛사람들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하늘의 뜻에 따랐다.
제사를 올리기 전, 황제는 목욕재계하고 또 며칠 동안 성심을 표한다. 비록 속세의 황권이 지고무상하다고 해도 최후에는 천상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항상 자신의 어떤 행위가 천의에 부합하지 않았는지, 백성의 원성은 사지 않았는지 강산과 사직을 동요하지 않았는지를 반성했다. 중국 반신(半神)문화의 교훈은 상고시대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얻은 계시와 하늘이 준 사회의 행위규범이다.
한 명의 우둔하고 무도한 황제에 대해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킬 때의 대의명분도 '替天行道(체천행동)이다. 고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천도(天道)'를 대표선(代表善)으로 믿고 있었으며 사람은 마땅히 천도에 순응해야 한다고 믿었다.
현대인들은 어떤 사람도 고대의 황제와 같은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집을 지을 때 제 마음대로 하며, 우선 고려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불변의 규범이 아니라 사용상의 편리함이다.
현대인들은 건물의 미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와 큰 유리의 조합은 공업화의 간결함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불규칙한 건물의 형상을 보면 벽조차도 모두 비뚤다. 하지만 한 단락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고 순박한 목조 건축이 큰 흐름을 형성할 것이다.
고대의 건축은 옛사람들의 신앙과 인문 환경을 나타낸 것으로, 현대 건축 양식 역시 사람들의 의식과 관념의 변화가 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만약 건축에서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찾으려 한다면, 진정한 문화의 내포를 지녀야 하며, 이는 사람들 마음이 바뀌어야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글/ 왕징(王晶.신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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