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글/ 소풍(蕭風)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의를 알면서 평안하고 온유한 묘령의 사녀(仕女 귀족집안의
여인)들이 예쁜 미소를 지으며 장엄하고 우아한 자태로 청나라 궁전을 거닌다.
신운예술단 ‘만주족 춤-대청사녀(大淸仕女)’는 대청 거거(格格)들의 단장(端莊)하고
우아하며 현숙한 기질, 고귀하고 세속을 초탈한 운치를 표현한다.
막이 오르면 전통 궁정양식의 건축을 배경으로 단장하고 수려한 만주족 ‘거거들’이
남색 치파오(旗袍 옆이 트인 청대 전통 의상)를 입고 머리에 큰 날개모양의 장식을
하고 3촌 높이의 ‘화분신발(花盆鞋)’을 신고 청대 궁정 풍격의 우아한 음악반주에
맞춰 느릿느릿 춤을 춘다. 얼굴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자태는 유연하며 전통여인의
고상하고 단아한 모습을 표현했다.
신운예술단 무용단원들이 가지런하게 대오룰 지어 가볍게 흔들면서 느릿느릿 걷는
모습은 마치 신선처럼 가볍고 궁중의 화려하고 고귀한 생활을 누리는 ‘거거들’의
고아한 기질을 펼쳐낸다. 반주 음악이 잠시 경쾌하게 바뀌자 많은 ‘거거들’의 무용도
경쾌하게 변하면서 청춘의 활력을 밝게 뿌리며 생기발랄한 모습을 표현한다. 잠시
후 반주 음악이 다시 우아하게 변하면서 거거들은 고고한 ‘화분신발(花盆鞋)’를
신고 느릿하게 걸으며 나풀나풀 춤을 춘다.
캐나다의 저명한 연기자이자 제미니 상을 수상한 마이클 마호넌(Michael Mahonen)
은 “만주족 춤은 무용동작은 아주 간단하지만 매 하나의 동작이 아주 조화롭고 정밀합니다.
또 함축된 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깊이가 있고 고귀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이렇게 간단한 동작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거거(格格)’란 호칭의 유래
‘거거’란 원래 만주어를 번역한 것으로 한어(漢語)로 하면 아가씨에 해당하는데
청나라 때 귀족 집안의 딸에 대한 존칭이기도 하다.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後金) 초년에 국군(國君)이나 패륵(貝勒 청나라 때 귀족의
작위)의 딸을 모두 거거라고 칭했다. 때론 일반 여염집의 미혼 처녀를 포함하기도
했으며 정해진 규칙이 없었다. 예를 들어 청태조 누르하치의 장녀는 ‘동과거거(桐果格格)’,
차녀는 ‘눈철거거(嫩哲格格)’였다.
그러다 청태종 황태극(皇太極)이 제위를 이은 후 숭덕(崇德) 원년(1636년) 명나라
제도를 본떠 황제의 딸을 ‘공주(公主)’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황후 소생의
딸은 ‘고륜공주(固倫公主)’, 비(妃) 소생의 딸 및 황후의 양녀는 ‘화석공주(和碩公主)’라고
불렀다. 이리하여 ‘거거’는 점차 왕공(王公)과 귀족의 딸을 전문적으로 칭하는
호칭으로 변했다. 예를 들면 황태극의 차녀인 객탑(喀塔 황후소생)은 처음에 고륜장공주(固倫長公主)로
불렸고 나중에는 영녕(永寧)장공주, 이후 다시 온장(溫莊)장공주로 개칭되었다.
순치 17년인 1660년에는 거거를 다음과 같이 5등급으로 나눴다.
1. 친왕(親王)의 딸은 ‘화석거거(和碩格格)’, 중국식 명칭은 ‘군주(君主)’라고
한다.
2. 세자(世子) 및 군왕(郡王)의 딸은 ‘다라(多羅)거거’, 중국식 명칭은
‘현주(縣主)’라고 한다.
3. 다라패륵의 딸도 ‘다라거거’라고 하지만 중국식
명칭은 ‘군군(郡君)’라고 한다.
4. 패자(貝子)의 딸은 ‘고산(固山)거거’
중국식 명칭은 ‘현군(縣君)’라고 한다.
5. 진국공(鎭國公), 보국공(輔國公)의
딸도 ‘거거’라고 하지만 중국식 명칭은 ‘향군(鄕君)’이라고 한다.
이외에 ‘공’ 이하 관료의 딸은 모두 ‘종녀(宗女)’라고 했다.
화분신발의 유래
어떤 사람이 “세상에 정말 이런 걸 신고 길을 걸을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왜 안 되겠어요!” 몬트리올에 거주하는 한 노화교가 말했다. “나는 원래 만주족으로
어릴 때 동북지방 만주족 집단 거주촌에서 살았어요. 만주족 아가씨들은 평상시 문밖을
잘 출입하지 않지만 설날 때면 가가호호 모든 아가씨들이 모두 이런 차림을 하고
무리를 지어 새해인사를 다녔어요.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걸으면서 말입니다. 온
마을의 처녀들이 모두 나오면서 대열이 갈수록 길어졌지요. 그러면 마을 청년들이
나무로 만든 다리를 밟고 걸어가면서 양쪽에서 호위합니다. 아이들은 대열 뒤를 따라가면서
희희낙락하고 폭죽소리가 울려 퍼졌지요. 사람들이 시끌벅적했고 정말 대단한 성황이었어요.”
노화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선배들은 사실 한족들을 우습게 여겼고, 여자들이
빨리 걷지 못하게 하려고 소위 ‘3촌 금련(金蓮)’을 제창했습니다. 뜻밖에도 전족이란
악습으로 변해 여자들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주게 됩니다. 우리 만주족 사람들이
얼마나 총명한가 보세요. 여자들이 좀 천천히 걷고 품위 있게 걷게 하려고 ‘화분신발’을
신게 했으니 말입니다.”
만주족 여인들은 자수(刺繡)에 능하며 옷이나 신발, 지갑, 베개 등에 꽃, 향기
나는 풀, 학, 사슴, 용이나 봉황 등의 도안을 수놓길 즐긴다.
신발의 바닥은 목질이고 바닥 중앙부에는 3-4촌 높이의 두꺼운 나무를 양감으로
새기는데 심지어 5-6촌 높이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어떤 신발은 양쪽은 넓고 중간이
좋아 마치 ‘말발굽’처럼 보이기 때문에 ‘말발굽바닥’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떤
신발은 위는 넓고 아래는 좁아 마치 사다리 같고 또 어떤 것은 화분(花盆)모양이라
화분바닥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그 모양에 따라 ‘용어(龍魚)바닥’ 등 이라고 한다.
청나라 거거들은 보통 모두 화분신발을 신었다. 이런 신발은 허리를 곧게 펴지
않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고 빨리 걷고 싶어도 급히 걸을 수 없으며 단지 우아하고
단정하게 걸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급해도 작은 걸음으로 총총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만주족들은 이런 신발을 신게 되었을까? 원래 이런 풍습의 배경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만주족 다라감주(多羅甘珠)의 부왕(父王)이 합사고한(哈斯古罕)이란 간사한 부락의
수령에게 속아 살해되고 그들의 왕성인 아극돈성(阿克敦城)마저 빼앗겼다. 이에 다라감주는
성을 회복하고 부친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하지만 아극돈성은 3면이 ‘홍안합당’이라는
3척 깊이의 붉은 녹물 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나 말이 건널 수 없었다. 다라감주는
생각 끝에 긴 다리를 가진 백학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람들을 이끌고 인공적으로
학다리를 만들어 순조롭게 홍안합당을 건너 아극돈성을 탈환하고 부친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나중에 만주족 부녀들은 산나물이나 개암을 채취할 때 독사에게 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리에 나무로 만든 이런 학다리를 신었다. 후에 나무 학다리는 점차 높은 굽을
가진 나무신발로 변하게 되었다.
화분신발을 신으면 키가 커져서 보다 날씬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다. 여자들이
길을 걸을 때 두 손을 앞뒤로 크게 흔들어 몸의 균형을 유지한다. 손에는 또 보통
예쁜 손수건을 드는데 이렇게 걸으면 단정하고 장엄하면서도 우아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신발을 신고 길을 걷자면 빨리 걸을 수 없고 또 장시간 걷기에도 불편하다.
이 신발이 육체노동을 하기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갈수록 보기 드물게
되었고 청나라 말엽에 이르면 단지 궁중의 비빈(妃嬪)들 중에서나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단지 예술공연 중에서만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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