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언(淸言ㆍ明慧網 작가)
[SOH] 장영(張英)은 청나라 안휘성 동성(桐城) 사람이다. 그의 부친은 청년 시기에 꿈에서 황금 갑옷을 입은 신(金甲神-금갑신)을 보았다. 금갑신은 꿈속에서 “저는 진(晋)나라 시기의 왕돈(王敦)이며 장 씨네 집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장영의 부친은 왕돈이 진나라를 어지럽힌 신하임을 알고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금갑신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나라가 망할 때 나는 하늘에 순응하여 역신(逆臣)이 되었지만 지금은 천하가 깨끗하기 때문에 나 역시 하늘에 순응해 좋은 신하가 되겠습니다.” 장영의 부친은 당시 놀라 깨어났다. 얼마 안 있어 과연 아들을 낳았는데 몇 살 되지 않아 요절했다.
또 몇 년이 지난 후 장영의 부친 꿈에 왕돈이 또 장 씨네 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장영의 부친은 “너는 과연 간신이로구나. 또 나를 속이려 들지만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왕돈이 말했다. “내가 강남의 많은 가정을 두루 관찰해보니 어느 집도 당신 장 씨 집안보다 복덕(福德)이 못하니 이번에 오면 다시는 가지 않겠습니다.”
얼마 후 장 씨 집안에 또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이 바로 장영으로 그의 자(字)가 돈복(敦復)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영은 강희(康熙) 6년에 진사(進士)가 되었고 관직이 문화전(文華殿) 대학사 겸 예부상서로 당시의 유명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장영의 아들 장정옥(張廷玉)도 청나라 3대에 걸친 원로 신하가 되었다.
그렇다면 왕돈은 왜 장씨 집안의 복덕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을까? 명(明)나라 때 장씨 집안은 아주 빈곤했고 그의 조상은 아들 둘을 낳아 책을 읽게 하고 덕을 닦게 했다. 하루는 노인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지하에 매장된 돈을 발견했는데 족히 100만 냥은 될 엄청난 거금이었다. 노인은 그 돈을 그대로 잘 묻어두고 이후 선한 일을 하려고 준비했다.
노인이 세상을 뜰 무렵 이 일을 자신의 두 아들에게 알려주었다. 노인은 아들들에게 앞으로 재난이 발생할 때 그 돈을 꺼내 이재민들을 구제하라고 말했다. 노인이 세상을 뜬 몇 년 후 대기근이 발생했다. 두 아들은 부친의 말씀에 따라 돈을 꺼내 보니 과연 백만 냥이 넘었다. 그들은 그 돈을 전부 이재민을 구제하는데 사용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덕을 보아 재난을 모면했다. 그 후 현령이 장씨 집안에 상을 주려고 했으나 두 아들은 단호하게 받지 않았다.
어느 날 어떤 마을 사람이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안개로 희미한 가운데 어떤 사람이 광주리를 이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 광주리 안에는 마치 산호(珊瑚), 청정(靑精), 수정(水晶) 등 보물이 있는 것 같았고 모두 살구 씨 크기의 구슬이었다. 어디로 이고 가는지 묻자 그 사람은 “장씨 집안에 보내는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청나라가 세워진 후 장씨 집안은 차츰 번성하기 시작했다. 장씨 집안의 자손 중에 장영과 장정옥은 관직이 대학사에 이르렀고 형제와 자식들도 모두 지위가 높았다. 사람들은 이전에 본 장씨 집안에 가져다 준 보물이 아마도 관(冠)에 붙인 주옥(珠玉)일 거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장씨 집안의 조상들이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 바꿔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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