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톈량(章天亮ㆍSOH특약 평론가)
[SOH] 얼마 전 한 미국인 친구가 휴가 때 항저우(杭州)에 가는데 가장 볼 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서호(西湖)와 악왕묘(岳王廟) 외에도 비래봉(飛來峰)을 꼭 가보라고 권했다.
그곳에는 내가 어릴 때 읽었던 다음과 같은 민간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날 제공(濟公) 스님이 영은사(靈隱寺) 앞을 지나는데 까닭 없는 의아함이 들었다. 천목(天目)으로 바라보니 산봉우리가 떨어져 내려 앞에 있는 한 마을을 덮치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란 제공은 마을을 찾아가 큰 소리로 마을 사람들에게 장차 닥칠 환란을 말해주며 빨리 대피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미친 중놈이 헛소리를 하는군!” 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다. 제공 스님이 아무리 좋은 말로 권고해도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가올 위험을 예감하고 마음이 초조해진 제공 앞에 마침 마을의 어느 집에서 새 신부를 맞는 행렬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에 한 가지 꾀를 낸 제공은 다짜고짜 행렬에 뛰어들어 신부를 들쳐 엎고는 줄행랑을 쳤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미치광이 승려가 신부를 빼앗아가는 것으로 오인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들은 온 마을 사람들을 다 동원해 제공을 추격했다. 제공을 쫓던 사람들이 마을 입구를 막 벗어날 무렵 갑자기 산이 무너지면서 산봉우리가 떨어져 내려 마을을 덮쳤다.
이때 마을에 살던 한 젊은 여인이 걸음이 느려 큰 바위에 깔리기 직전의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본 제공 스님이 신통력을 펼쳐 산봉우리를 밀쳐버렸다. 그러자 산봉우리가 약간 기울어지면서 구사일생으로 여인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제공의 기지에 의해 모두 위험한 고비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제공(濟公 1130-1209) 스님은 역사상 남송(南宋) 시대에 살았던 실존인물이다. 속명은 이수연(李修緣)이며 천태 영녕촌(永寧村)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조부는 송나라 태종 황제의 부마이자 절도사였으며 집안 대대로 독실하게 부처를 믿었다. 출가한 후의 법명은 도제(道濟)이며 선종(禪宗) 승려가 되었지만 앉아서 참선만 하기 보다는 각지를 떠돌며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길 좋아했다. 때로는 미친 듯이 행세해 미친 승려라는 뜻으로 제전(濟癲) 화상이라고도 불렸다.
그의 신통력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번은 쓰촨(四川)성에서 큰 목재를 운반해 항저우에 있는 사찰을 수리한 적이 있다. 이때 제공 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해 우물 안에서 쓰촨성 목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나중에 목재를 관리하는 승려가 이제는 충분하다고 말하자 마지막 목재 한 개는 끌어올리지 않았고 우물 속에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제공 스님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의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단순히 전설이라고만 여겼다. 1994년 말 항저우를 여행할 때 나는 비래봉에 가 본 적이 있다. 그곳 암석에는 거대한 손바닥 자국이 정말로 남아 있었다. 항저우 사람들은 이 손바닥 자국이 예전에 제공 스님이 한손으로 비래봉을 밀 때 남겨놓은 것이라고 여긴다. 손바닥 자국이 사람 키만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공 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우물 속에서 목재를 운반한 전설’은 지금까지도 항저우에 유적이 남아 있는데 제공이 운반하지 않은 목재 하나가 아직도 우물 속에 있다고 한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 우물에 정자를 세우고 ‘성심정(醒心井)’ 또는 ‘신운정(神運井)’이라 불렀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유명해지고, 물이 깊지 않아도 용만 있으면 영험하다.”는 속담이 있다. 항저우는 빼어난 경치뿐만 아니라 악비(岳飛)의 사당인 악왕묘(岳王廟)와 제공 스님의 유적이 남아 있기에 그 운치를 더해준다.
지난 주말에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션윈(神韻) 예술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 공연 프로그램 중에 ‘제공이 신부를 빼앗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여기서 이 공연의 아름답고 우아한 음악, 감동적인 연출과 아주 사실적인 3차원 스크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고 사회자의 대사 중에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누군가 듣기 싫은 예언을 말할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예언자가 확실히 선지자였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내 기억에 2006년 NTDTV 신년 스펙태큘러 중에 ‘붉은 눈의 돌사자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기서도 관음보살의 점화를 받은 한 선량한 노부인이 돌사자의 눈이 붉게 변할 때 대홍수가 닥침을 미리 알았다. 노부인은 진심으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이 놀라운 소식을 알려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었다. 막상 대홍수가 닥치자 노부인을 믿은 사람들은 겁난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녀를 믿지 않고 비웃던 자들은 모두 수장(水葬)됐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여호와의 계시를 받은 노아가 사막에서 방주를 만들 때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놀렸으며 그의 경고를 무시했다. 여호와가 40일 동안 폭우를 내린 후에는 사람들이 후회하고자 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이 왜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원인은 ‘오만(傲慢)’이란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오만은 자신의 신분, 지위, 재산 등에서 유래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성과 지식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제공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었을 것이며, 노부인의 말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그녀가 가난하고 신분이 낮기 때문에 무시했을 것이다.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인과응보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대개는 겉보기에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거나 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 오만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은 신을 믿지 않고 지나치게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오만이야말로 진상(眞相)을 알고 진실한 말을 듣는 최대의 장애이다.
과거 불가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부처 수련을 하는 데는 8가지 장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세변총명(世辯聰明)’이다.” 여기서 세변총명이란 속세의 작은 총명을 갖춘 것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과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불법진리(佛法眞理)에 대해서도 감히 함부로 평론하거나 틀렸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이 아무 조건 없이 불법(佛法) 수련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며 이들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에도 이런 유사한 말이 있다. 공자는 일찍이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唯上智與下愚不移)”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너무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하우(下愚)'와 자신이 가장 총명하다고 여겨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장 고명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그럼 설마 남들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말을 다 믿어야 한단 말인가? 만약 이렇게 하다가 사기꾼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사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다. 기본적인 도덕으로 가늠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중국대륙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공(중국공산당)을 탈당하고 공산당 관련 조직인 공청단과 소선대를 탈퇴하라고 권하는 일은 기본적인 도덕적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공은 사람을 죽이고 매국하며 도덕을 추락시키고 평화로운 수련자들을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단이 지극히 잔인하고 악독하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중공이란 사이비 종교에서 멀리 벗어나야 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은가.
하물며 파룬궁 수련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제공이나 노아처럼 지금 하는 일과 가정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명으로 중공 관련 조직을 ‘3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번 션윈 공연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진상을 아는 것이 구도 받을 희망”이란 큰 자막이 나타난다. 그렇다! 우리가 개방적이고 겸허한 자세로 진상을 알아보고 기본적인 도덕 판단에 근거해 판별해본다면 곧 자신의 살길을 찾을 수 있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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