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랑피트씨가 베이징에 주재하고 있는 동안, 가장 긴장할 때가 마을에 들어가 현장 가까이서 취재를 할 때다. 서양계인 그의 외모는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위험하다. 어떤 때는 마을에 몇 시간 밖에 있지 못하고, 한 집에서 취재가 끝나면 뒷문으로 몰래 나가 그 다음 집으로 들어간다. 한 집 당 취재시간은 45분을 넘어서면 안 된다. 왜냐하면 기자가 취재를 할 경우 재빨리 당국에 통보가 들어가며 공안요원이 즉시 잡으러 오기 때문이다.
현지 취재를 할 경우 중국측을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기자가 마을에 들어간 사실은 알었지만, 어떻게 나갔는지를 모를 경우이다. 프랭크씨는, 예민한 사안에 대해 취재를 할 때 항상 휴대폰의 전원을 꺼야 한다고 했다. 그의 동료 몇 사람은 전원을 끄지 않았다가 거처가 발각되어 잡혀가기도 했다.
프랭크씨는, "중국에서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모두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국가 안전부문의 사람들은 월급을 적게 받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은 취업을 기피하고, 또 일을 할 경우에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전부의 직원들은 별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자들이 그들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들을 어렵지 않게 따돌릴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휴대전화의 경우 그는 끊임없이 전화 카드를 바꾼다. 또 베이징 이외의 지역에서 취재할 때는 매일 호텔을 바꾸는데 늦게 체크인 하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했다. 이 시간대는 근무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당국에 통보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어 통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랭크씨는, 중국에서 취재활동 기간 동안 파룬궁을 취재하면서 가장 곤욕을 많이 치렀다고 했다. 다른 기자와 마찬가지로 천안문 광장에서 취재하다 공안에 잡힌 적도 여러 번 있었으며, 특히 민감한 사안이 발생한 며칠 간은 여러 기자들이 기자증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경우에는 없었던 일이다. 또 파룬궁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항상 공안에 미행당했으며, 심지어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에도 미행 당했다. 어떤 기자는 이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할 수 없이 휴가를 내는 경우까지 있었다.
프랭크씨는 중국의 경제 개혁은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지만, 정치체제 개혁은 정체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정부가 정보를 차단하고 제한하려는 시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에이즈나 SARS, 파룬궁에 관련된 정보는 당국에서 특히 숨기려고 시도하는 부문이다.
프랭크씨는, 중국 정부가 개방 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단히 외국 기자를 체포하고, 국외로 추방하며, 자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이 방면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프랭크씨는 "과거에 취재한 적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면, 강서성 초등학교 폭죽 폭발 사건 마을에 가서 그곳에서는 아직도 폭죽을 만들고 있는지, 학교는 다시 세웠는지, 당시의 학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마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제는 용이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프랭크씨는, "나는 중국어가 그다지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아직도 나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들은 암흑을 밝혀내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원 시보
2004년 03월 12일
기사전재 - 2005년 3월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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